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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둘째 날 반나절동안 타고 다닌 하롱베이 유람선.
우리가 둘째 날 반나절동안 타고 다닌 하롱베이 유람선. ⓒ 임은경

분명히 '선택'할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던 선택 관광은 사실상 '선택'이 아니었다. 하롱베이의 나룻배 추가 관광, 선상에서의 해산물 식사, 하롱파크, 전신마사지, 뷔페 레스토랑, 야간 시클로 투어 등 가이드가 짜놓은 선택 관광 전체에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사실상 반 강제적인 강요였다. 가이드는 "한 분이라도 빠지면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긴다"며 읍소했다.

우리가 망설이자 가이드는 밤에 방까지 찾아와서 관광 참여를 종용했다. 우리만 빠지면 다른 분들이 불편해한다고 했다. 사흘간의 여행에 원만하게 함께하기 위해서는 피할 도리가 없어 보였다. 결국 '전체를 위해' 우리는 1인당 230불짜리 선택 관광 일정표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첫날 도착하자마자 걷은 가이드 팁 50불에 선택 관광 230불까지 1인당 총 280불의 추가비용이 발생한 것이다. 여행비용은 처음에 한국에서 결제했던 24만 9천원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사흘 동안 가이드는 총 네 군데의 쇼핑센터로 우리를 끌고 다녔다. 위즐 커피, 노니, 라텍스, 이런저런 잡화를 파는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이것도 그나마 히노끼 샵 한 군데를 뺀 것이란다. 모두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밀폐된 공간에 모아 앉혀놓고 한 시간 이상씩 구매를 종용해대니 안 살 도리가 있나. 우리 부부는 끝까지 아무것도 사지 않았지만, 가는 곳마다 몇몇 사람들이 물건을 샀다. 물건을 구매해줘야 가이드에게도 수익이 돌아간다는 것 정도는 물론 우리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뭘 좀 사주고 싶어도 시중가보다 너무 비싸서 도저히 그 값을 주고 살 수가 없었다.

심지어 노니 가루는 베트남 현지 가격보다 스무 배 이상 비쌌다. 속는다는 것을 모르는 몇몇 노인들만 물건을 샀다. 그렇다고 가이드가 보는 앞에서 그분들에게 "바가지가 심하니 사지 말라"고 얘기해줄 수도 없었다.

강제에 가까운 선택관광, 바가지 씌우는 쇼핑센터

둘째 날과 셋째 날은 하롱베이에 있는 호텔에서 묵었다. 하롱베이 크루즈 여객선 터미널이 있는 뚜언쩌우(Tuan Chau) 섬의 모닝스타 호텔. 푸르른 오션뷰가 펼쳐지는 객실과 8층 조식당은 좋았지만,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주변에 볼 것이 하나도 없었다. 밤에 짧게라도 거리 구경을 나가고 싶었던 우리는 이 점이 너무도 아쉬웠다.

이튿날은 베트남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하롱베이 관광을 나섰다. 이날도 역시 조식으로 쌀국수를 한 사발 먹고 여객선 터미널로 가서 배에 올랐다. 말로만 듣던 하롱베이. TV에서나 보던 하롱베이. 내가 상상했던 울창한 기암괴석 숲(?)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정말 좋았다.

 티톱섬 전망대에서 바라본 하롱베이.
티톱섬 전망대에서 바라본 하롱베이. ⓒ 임은경

우리 팀 22명을 태운 여객선은 하늘의 용이 내려와 만들어졌다는 3천 개의 섬 사이를 천천히 누비고 나아갔다. 때마침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서 전날만 해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이날만큼은 날씨가 화창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가 하롱베이를 관광한 바로 다음날, 태풍 때문에 모든 여객선 출항이 금지되었다. 우리가 정말로 운이 좋았던 것이다.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 위로 솟아오른 갖가지 기암괴석들. 지상의 풍경이 아닌 듯한 모습에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베트남 20만동 지폐 뒷면에 등장하는 유명한 향로섬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키스 바위로 더 유명하다는 닭싸움 바위도 구경했다. 닭싸움 바위는 배가 도는 방향에 따라 힘차게 유영하는 잉어로도 보였다. 자연의 놀라운 아름다움 앞에 그저 할 말을 잃을 뿐이었다.

태풍 직전 딱 하루, 하늘이 내린 날씨의 하롱베이

나룻배 선착장에서 배를 갈아타고 원숭이섬으로 알려진 항루언으로 들어갔다. 가슴에 젖먹이 새끼를 매달고 바나나를 받아먹는 원숭이도 구경거리였지만, 단 하나의 출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사방이 높게 둘러싸여 완전히 막힌 공간이 바다 한복판에 있다는 것 자체가 더욱 신기했다. 이곳이 007 등 영화 촬영지로 이름난 이유를 알만했다.

모터보트로 갈아타고 즐긴 아슬아슬한 쾌속 질주와 석회 동굴 투어까지 마치고 다시 원래 탔던 배로 돌아왔다. 싱싱한 회와 온갖 해산물 요리가 차려진 그럴싸한 점심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도미찜, 새우튀김, 키조개 구이, 꽃게찜, 갑오징어 숙회, 낙지볶음 등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미각을 자극했다. 화려한 선상식을 즐기며 처음 출발했던 뚜언쩌우 섬의 터미널로 돌아왔다. 

 유람선 안에서 즐긴 싱싱한 해산물 점심은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유람선 안에서 즐긴 싱싱한 해산물 점심은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 임은경

 석회암 지대인 하롱베이의 섬들 안쪽에는 곳곳에 신비한 석회동굴 지형이 펼쳐진다.
석회암 지대인 하롱베이의 섬들 안쪽에는 곳곳에 신비한 석회동굴 지형이 펼쳐진다. ⓒ 임은경

오후에는 마사지숍에 들러 단체 마사지를 받고, 베트남 전통의 수상인형극을 보러 갔다. 1년에 4모작까지도 가능한 베트남은 논농사의 나라다. 도시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어디서나 푸르른 모가 자라는 논을 볼 수 있다. 천 년 전통의 베트남 수상인형극은 수확이 끝난 논에서 벌이던 마을 축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키가 1미터 정도 되는 목제 인형에 방수를 위한 옻칠을 하고, 아래에 긴 나무 장대를 달아 뒤에서 사람이 잡고 조종한다. 인형도 사람도 물에 몸을 잠그고 공연하는데, 인형을 조종하는 특별한 기술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다고 한다. 가운데 무대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이, 오른쪽에는 베트남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악단이 자리했다.

30분 남짓한 공연은 기대 이상이었다. 천생 광대라고 해야 할까. 연기와 노래가 뛰어난 배우들은 인형의 움직임에 맞춰 농사와 어업, 아이들의 물장구 등 인생사의 희로애락을 유려한 노래로 풀어냈다. 이에 맞춰 연주하는 악단의 반주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베트남 수상인형극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사전조사를 조금 해간 것도 관람에 큰 도움이 되었다.

▲ 천 년 전통의 베트남 수상인형극은 수준 높은 공연으로 인상에 남았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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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통의 수상인형극, 기네스북에 오른 케이블카

저녁에는 동남아 최대의 테마파크라는 하롱파크에서 케이블카와 대관람차를 탔다. 하롱파크 케이블카는 세계 최대의 수용인원과 세계에서 제일 높은 케이블카 기둥, 두 가지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단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하롱파크와 항구 도시의 야경은 참 아름다웠다.

그날 저녁은 한식당에서 삼겹살로 저녁을 먹고 하롱베이 야시장 구경을 갔다. 그런데 이 야시장이란 것이 창고 같은 건물 안에 조잡한 상품점 수십 개가 입점해 오직 관광객만을 상대로 장사하는 곳이었다. 시장이라고 하기에는 규모도 너무 작고, 지역 사람들의 삶이나 문화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급조된 곳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 푹 고아낸 장국을 기대했는데, 막상 테이블에는 플라스틱 모형 음식이 올라온 상황이라고나 할까. 패키지 관광이란 이런 것이구나,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호텔로 향했다. 가면서 내내 생각했다. 저 섬 너머 하롱베이 시내의 밤거리 풍경은 어떨까. 만약 쇼핑센터를 가지 않았다면 그 시간에 뭘 할 수 있었을까.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본 세계에서 제일 높은 케이블카 기둥(188.88m)과 하롱파크 대관람차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본 세계에서 제일 높은 케이블카 기둥(188.88m)과 하롱파크 대관람차 ⓒ 임은경

 일본기술로 만들었다는 하롱파크 대관람차. 지름 200미터가 넘는 거대한 대관람차에 오르면 아름다운 항구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본기술로 만들었다는 하롱파크 대관람차. 지름 200미터가 넘는 거대한 대관람차에 오르면 아름다운 항구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임은경



#베트남여행#하롱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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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을 무의식적인 소비의 노예로 만드는 산업화된 시스템에 휩쓸리지 않는 깨어있는 삶을 꿈꿉니다. 민중의소리, 월간 말 기자, 농정신문 객원기자, 국제슬로푸드한국위원회 국제팀장으로 일했고 현재 계간지 선구자(김상진기념사업회 발행) 편집장, 식량닷컴 객원기자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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