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지지기반인 러스트 벨트(철강 자동차 등 중공업지역)를 의식해서 말을 그렇게 하지만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근간이 흔들리면 거기 영향 받는 미국 산업들이 가만히 안 있죠. 당장 한국에 쇠고기 수출하는 몬태나주부터 시작해서 지적재산권 관련 콘텐츠 산업들, 한국에 있는 미상공회의소(암참)도 굉장히 반대할 겁니다."노무현 정부에서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을 지내고,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정책자문단 '10년의 힘 위원회'를 이끌었던 윤대희(68) 전 장관이 28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 폐기' 발언은 (진심이 아니라) 협상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만난 암참(주한미국상공회의소) 사람들도 미국 대통령이 저러는 건 협상의 일환이라고 하더라"며 "우리 정부는 진지하게 협상하되 당당히 임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무역적자가 커졌다고 하지만 한미 FTA가 없었으면 적자가 더 컸을 것"이라며 재협상 과정에서 이런 부분을 강조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현종 "트럼프 폐기 위협은 실재적" 발언과 대비
윤 전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최근 미국을 방문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트럼프 정부의 한미 FTA 폐기 위협은 실재적이며 앞으로 현실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과 대비된다.
윤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 협상을 추진할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으며, 김현종 본부장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 협상 실무를 담당했다. 윤 전 장관은 향후 한미 FTA 재협상 과정에서 한미 FTA 반대자들이 제기하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등 '독소조항'의 개정 전망에 대해 "양쪽의 이익 균형이 맞는 상태에서 협정이 체결됐으므로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참여정부에서 남북협상 실무를 맡았고 안보관계장관회의 멤버이기도 했던 윤 전 장관은 북핵 위기와 관련 "과거에는 동북아의 문제였으나 이제는 대륙간탄도탄(ICBM)으로 미국 본토가 위협받는 상황이라 미국의 국내 문제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미국의 선제공격까지 거론되는 민감한 상황이 된 만큼, 전쟁을 막기 위해 진보와 보수를 떠나 여·야·정이 함께 국민을 안심시킬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한·미·일 3국의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전 장관은 우리 경제 현안과 관련, "잠재성장률 하락과 양극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저출산·고령화 추세로 인해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자본의 한계효율과 생산성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어 현재 3% 내외인 잠재성장률이 10년 후에는 0%대가 된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말했다. 따라서 구매력 유지라는 차원에서도 저출산 해결에 국가적인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3년 전 '송파 세모녀 사건'이 보여준 것처럼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이라며 "복지 확대를 통해 양극화를 예방하는 것이 나중에 이를 치유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적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복지재정 확대와 증세가 불가피한데, 지금은 어떤 세금을 얼마나 올릴 것인지 논의하기 전에 '어느 수준의 복지를 지향할 것인가'하는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게 더 급하다고 지적했다.
'코리안 미러클' 경험 개도국과 나누는 데 앞장 윤 전 장관은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재경회(기획재정부 퇴직자모임)가 우리나라 경제개발역사를 <코리안 미러클>이란 기록물로 만드는 사업에 편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의 경제개발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는 지식공유사업(KSP, Knowledge Sharing Program)의 대표단장도 맡고 있다.
그는 "코리안 미러클은 케임브리지대 교수 조앤 로빈슨이 1960년대 북한의 경제발전에 경탄하는 의미에서 쓴 말인데, 이제는 우리가 그 말을 당당히 찾아오자는 뜻에서 책이름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프리카의 가나 등 개도국들이 경제개발자금 조달 등 '실행 방안'을 궁금해 하기 때문에 외국인투자유치제도와 '역금리'까지 동원한 예금장려 등 생생한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정부 수립 후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부터 받은 원조를 실질금액으로 환산하면 1000억 달러(약 120조원)를 넘을 것"이라며 "이제는 우리도 공적개발원조(ODA)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개도국을 도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아무나 찌르고 싶던' 소년에게 감사를 가르쳐 준 '씨드 스쿨' 윤 전 장관은 지난 2009년부터 뜻을 함께 하는 인사들과 함께 '씨드 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명문대생들이 빈민가 공립학교 교사로 자원봉사하는 티에프에이(TFA, Teach For America) 프로그램을 본 따 어려운 지역의 중2 학생들과 대학생을 연결한 멘토링(상담지도) 프로그램이다.
현재 전국 12개 학교에서 수백 명의 중학생이 참여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꿈 찾아 주기'를 목표로 한다. 축구선수를 꿈꾸는 중학생이 대학생의 도움으로 박지성 선수를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한 1년 정도 멘토링을 하면 변화가 생깁니다. 제가 한 대학생에게 들은 사연인데요, 어린아이가 부모랑 중국에 갔다가 버림을 받습니다. 할머니가 어찌어찌 수소문해서 찾았어요. 상상이 안가는 얘기죠. 그 애는 자라면서 '아무나 보면 찌르고 싶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 아이가 '형을 만난 후 나도 형처럼 커서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편지를 보냈대요." 윤 전 장관은 "요즘은 교육이 양극화를 더 촉진한다"며 "어려운 사람들을 정책적으로 더 많이 배려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