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에서 맞는 하루하루는 언제나 신선함과 경이감을 준다. 여명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태양이 머리 위에 와있다. 태양이 뜨겁다. 숙소로부터 20여분쯤 지나 바르셀로나의 중심 까딸루냐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서 낯선 이방인을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광장바닥에 떨어진 모이를 쪼아 먹던 '평화의 상징' 비둘기들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둘레에 서 있는 한 점포에서 비둘기 모이를 하나 샀다. 반기는 비둘기들이 고마워서, 또 이국에서 이렇게 많은 비둘기들을 볼 수 있는 일이 흔하지 않기에 모이를 주고 싶었다. 모이 값은 2유로였다.
손바닥에 모이를 올려놓자 비둘기들이 서로 밀치며 몰려왔다. 곧 봉지에 모이가 바닥이 났다. 바닥을 가득 메운 비둘기와는 대조적으로 중앙 분수대에서는 하얀 물줄기가 위로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장난 삼아 팔을 뻗어 물줄기에 손에 대어보자 물이 손바닥에 닿자마자 주르륵 흘러 내렸다. 시원했다. 광장에는 벤치에 앉아 쉬거나, 광장을 거닐거나, 돌계단에 앉아 간식을 먹는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붐볐다.
비둘기와의 만남을 뒤로 하고 자리를 떴다. 몇몇 비둘기가 따라왔다. 아마도 모이를 더 달라는 것 같았다. 광장을 벗어나 람블라스 거리를 따라 걸었다. 마주치는 낯선 풍경들이 발길을 자꾸 멈추게 한다. 거리에는 숱한 낯익은 브랜드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라, H&M 등 늘 즐겨 입던 브랜드들이 세일 안내판을 걸고 들어오라고 유혹했다. 급기야 '자라'에서 자켓 하나를 반값에 구입했다.
거리를 지나며 스페인 사람들의 일상을 엿본다. 환하게 붉을 밝힌 상점들과 카페. 다양한 옷차림을 하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떠들썩한 이벤트 현장, 일상의 거리로서 만나는 바르셀로나의 도시는 다양하며 무수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우연히 한 아이가 식수대에서 물을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까치발을 하고 식수대 가장자리를 잡고 물을 먹는 모습이 너무 앙증스럽다. 어머니는 그냥 조용히 아이를 지켜보고 있다. 세상 어디나 엄마가 자녀를 사랑하는 모습은, 어디나 사람 사는 모습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 언어, 생활방식이 잘 어우러진 바르셀로나그러다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거리 전체가 모두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진 느낌이 다. 바르셀로나! 그래 바로 가우디의 거리, 가우디의 건물, 가우디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의 표면을 통해 도시를 느낄 수 있었다. 보이는 건축의 외면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보고 느끼는 모든 순간을 가치 내면화하는 데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고 확인했다.
거리를 따라 걷다가 고개만 들기만 하면 그저 눈에 들어오는 공공기념물에서 가우디의 철학과 숨결을 느껴졌다. 채석장이라는 뜻의 '라 페드레라'라고도 불리는 '카사밀라' 주거 공간으로 만들어진 이 주택은 건물전체가 파도를 치는 느낌이다.
거기에다 카사밀라와 마주보고 있는 '카사바드요'는 바다를 형상화한 건축으로서 마치 살아 있는 생명이 숨을 쉬는 것 같다. 그런 의미로 카사 델스 오소스(Casa dels ossos)는 '인체의 집'이라고도 불린다. 새삼 가우디에게 가장 특별했던 장소는 어디였을까 생각해 본다. 가우디가 자신의 모든 건축 중 단 하나를 지적하며 '이게 바로 나다' 할 수 있는 자신의 가치와 삶의 철학을 가시화 한 건물은 정말 어떤 건축물일까 너무 궁금했다.
바르셀로나는 도시 자체의 공간에 다면성이 집중되어 있었다. 스페인의 문화, 언어, 생활방식이 모두 그 공간 안에 어우러져 있다. 한 여자가 눈에 띠었다. 조깅하러 나왔는지 트레이닝복 차림이다. 걸음걸이가 아주 힘차다. 건강한 그녀의 걸음걸이를 한참 지켜보았다. 도시의 현재성을 느끼게 해준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좋았다.
다시 길을 걷다. 길을 건너려고 건널목 앞에 섰다. 순간 너무 놀라서 두리번거렸다. 교차로 하얀 실선이, 짧게 단지 한 점으로 연결한 점선이 쭉 한 줄로 뻗어있다. 그게 교차로였다. 다른 곳도 같은지 확인을 하고 싶었다. 역시 모든 곳의 교차로도 다 같았다.
모두가 다 알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고,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인데, 왜 굳이 길게 그려 페인트 값을 낭비하느냐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의 실용성과 삶을 사는 철학이 교차로 선 하나에도 여실히 보인다. 검소를 실천하여 미덕으로 만든 진정한 그들의 삶의 가치와 철학에 다시 놀랐다. 바르셀로나는 가치와 철학에 깊이 조우해 형성된 실용성이 빛나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바르셀로나가 준 다채로운 경험, 큰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천둥처럼 울려대는 폭음과 그에 잇따르는 불길이 도시를 뒤덮는다. 건물들이 주저앉고 사람들은 이리저리 살길을 찾아 헤맨다. 흡사 제2차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테러가 바르셀로나를 거칠게 훑고 지나갔다.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에 테러라니... 살면서 의도 했든 의도하지 않았던 살며 맺어온 관계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가능할까? 대답은 미완이고, 그 미완의 답은 오히려 대답을 할 수 없기에 더욱 숨을 죽이게 한다.
사람의 목숨을, 생명의 중요성을 망각하는 테러에서 오래전 마음에 품었던 의문 한 자락을 끄집어낸다.
목숨을 너무나도 하찮게 여기는 후작이 있었다. 코코아 한 잔을 마시려면, 뜨거운 차를 만들기 위한 요리사는 물론이고, 네 명이나 되는 하인이 더 필요하다. 초콜릿을 저어 거품을 낼 사람, 탄 차 주전자를 방으로 들고 갈 사람, 귀족 나리께 냅킨을 건네 줄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코아를 따라 줄 사람이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 고귀하신 분이 어느 추운 겨울날 전 속력으로 마차를 몰고 가다 한 아이를 거리에서 친다. 요란한 바퀴 소리를 내면서 질주하던 마차가 서고, 어둠을 타고 비명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후작에게 마부가 '아이가 치었습니다' 답한다. 마차에 친 아이의 아버지가 울부짖자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에브레몽드 후작은 그저 금화 한 닢을 던진다.
"하잘 것 없는 물건 하나를 어쩌다 실수로 깨뜨렸으니 보상해주면 그만 아니겠다는 투였다."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중요한 원리를 잃어 가고 있는지 모른다. 말할 수 없는 죽음의 세계와 말할 수 있는 생존의 공간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현재 삶의 진정성을 느끼게 하는 도시일거라는 생각을 한다. 바르셀로나는 현재를 이야기하는 도시, 이야기를 가진 도시, 이야기를 하는 도시이다. 그곳에서 현재의 삶을 직시하며, 그 도시가 주는 다채로운 경험을 얻게 된 것은 남아있는 나날에 큰 위안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