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의 일입니다. 그날 저는 아내와 산책을 하며 제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군의문사 문제를 국민들 마음속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은데 그 적절한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스럽다고 했습니다.
한해 평균 27만여 명의 청년들이 군에 입대하고 그중 평균 100여 명이 매년 그들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며 그 2/3가 자살로 처리되는 이 나라 군 인권 현실에서 '이것이 절대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의 일임을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때 아내가 권한 방법이 '연극'이었습니다. "군의문사 유족 어머니들이 직접 배우로 출연하여 이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무대 위에서 표현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떠냐"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유족 어머니들에게는 치유를, 국민에게는 공감을, 그리고 군 당국에게는 정책적 해결 방안을 촉구하는 연극을 만들어 보라는 조언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2016년 11월 1일. 그날 저는 다음 스토리펀딩과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을 통해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만들어주세요'라는 제목의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72일에 걸친 캠페인을 통해 만들어진 연극 <이등병의 엄마>.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찾아와 준 '공감'2017년 5월 18일. 그날 저는 서울 대학로에서 꿈만 같았던 그 일의 첫 공연을 올렸습니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 언론 시사회.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수없는 밤을 자문하며 애달 복달 매달렸던 그 연극이 마침내 현실에서 막을 올린 것입니다. 취재 기자들의 반응 역시 대단했습니다. 연극이 끝난 후 시사회에 참여했던 기자들이 너무나 많이 울어서 모두가 두 눈이 다 퉁퉁 부어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때 이 연극의 대본을 썼고 총괄 제작을 맡은 저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아주 잠깐 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래서 드린 말씀입니다.
"이 연극을 꼭 보셨으면 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여기로 오실 수 있도록 기자 여러분들이 도와주십시오. 바로 (문재인 대통령 부인이신) 김정숙 여사님입니다. 다른 요구 없습니다. 그냥 아들을 키우는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오셔서 이들 군의문사 피해 유족의 엄마들 마음에 위로를 전해 주시면 그것으로 우리는 만족하겠습니다."그날 시사회에 온 기자들은 제 부탁을 들어주셨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 <고상만 인권운동가 "김정숙 여사, 연극 '이등병의 엄마' 관람 후 손잡아 줬으면>이라는 긴 제목으로 제 부탁을 청와대와 김정숙 여사님께 전해 주신 겁니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그러니까 언론 시사회가 있던 5월 18일 당일 밤이었습니다. 모처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정말 고마운 몇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김정숙 여사께서 이 연극을 보러 오시기로 결정했다며 이를 위해 일정 조정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반신반의하며 믿기지 않았던 그때, 정말로 와 주실까 싶었던 공연 마지막 날 3일을 앞둔 그날이었습니다. 김정숙 여사가 연극에 와 주셨습니다. 기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이 아닐까요? 높기 만한 그 벽이 현실 가능한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군에서 자살로 처리된' 군인을 대하는 태도는 냉정했습니다. "자살한 군인을 왜 국가와 군이 책임져야 하냐"며 "안 됐지만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이 그동안 책임있는 당국의 태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연극에 대통령 부인께서 오셔서 함께 공감해 주셨으니 '이는 군의문사 유족이 받은 최초의 국가적 위로'라며 제가 페이스북에 쓴 이유입니다. 이런 기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9월 29일과 30일, 또 한번의 기적이 이어졌습니다.
'현직 국방장관 자격으로' 약속 지킨 송영무 장관지난 5월 대학로에서 있었던 11일간 총 14번의 연극 공연이 모두 끝난 후 7월의 일이었습니다. 연극에 출연했던 70대 유족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듣게 된 말씀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요즘 어찌 지내시냐"며 의례적으로 여쭙는데 "아침에 연극 대사 연습을 했어요"라고 하시는 것 아닌가요?
"아니, 어머니. 공연도 이미 끝났는데 왜 아침에 대사 연습을 하셨다는 건가요?"
그러자 어머니는 "언젠가는 다시 또 저를 연극에 불러주시지 않을까 싶어서 그동안 내내 연습을 했어요. 이젠 나이가 많아서 자꾸만 잊어먹어서요"라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저는 다시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만들어 어머니의 마음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29일, 꿈은 또 이뤄졌습니다. 이번에는 서울 금천문화재단이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창립 작품으로 초청하여 무대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어머니들은 다시 무대에 섰습니다. 다시금 생기를 얻고 기뻐하는 어머니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진 것은 그때였습니다.
이번 공연에도 귀한 두 분이 연극을 관람하러 오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바로 문재인 정부 하에서 임명된 송영무 국방부장관님과 서주석 국방부차관님이 공연 기간 중인 9월 29일과 30일 관람을 각각 오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꼭 남기고 싶은 사연은 송영무 국방 장관의 약속입니다. 지난 6월 26일의 일입니다. 전날 밤, 저는 아주 뜻밖의 연락을 받게 됩니다. 다름 아닌 당시 송영무 국방장관 내정자가 '군의문사 유족을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만나고 싶다'며 가능한지 여부를 타진하는 연락이었습니다. 의문사한 군인 시신이 안치된 그곳에서 유족을 만나 위로와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연극 <이등병의 엄마>에 출연했던 군의문사 유족 어머니들을 모시고 수도통합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난 자리에서 국방부장관 내정자 신분이었던 당시 송영무 후보자에게 유족 어머니들은 몇 가지 약속을 건의하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내정자께서 차후 정식으로 국방장관에 임명되시면 현직 국방부장관 자격으로 우리가 만든 연극 <이등병의 엄마> 공연을 보러 와 주시면 고맙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를 하면서도 어머니들은 그리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국방부장관 자격으로 연극을 보러 온다는 것은 군의문사 문제 해결에 대한 약속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의외였습니다. 당시 송 후보자는 어머니들에게 "장관이 되면 꼭 연극을 보러 꼭 가겠다"며 약속하시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마침내 그때 말한 연극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9월 29일이었습니다. 정말 송영무 장관은 약속을 지킬까요? 그렇습니다. 이날 송영무 국방장관은 어머니들과 석 달 전 했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국방부 주요 관계자들과 함께 연극 <이등병의 엄마> 공연장을 찾아와 함께 공감해 주셨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자격으로는 처음입니다. 1948년 군 창설 이래 국방부 철문 앞에서 "우리 아들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한번만 들어봐 달라"고 호소했던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국방부장관이 스스로 찾아와 그 아픔에 공감해 준 일은 그야말로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는 일입니다.
이후 송영무 국방장관은 공연이 끝난 후 군의문사 유족 분들의 손을 한 분 한 분 잡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군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약속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셨습니다. 유족 분들은 그 자리에서 송영무 장관에게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비난과 욕설로 가득했던 그동안의 불신 대신 국방부장관을 향한 박수가 이어진 이유입니다.
다음날 따로 공연장을 찾아온 서주석 국방차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일이었습니다. 관람 내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던 서주석 차관께서 연극이 끝나자마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다음 일정이 바빠서 그만 극장을 나가기 위해 일어섰나 싶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서주석 차관은 이후 내내 서서 연극에 참여한 배우와 어머니들을 향해 기립 박수를 치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주변에 같이 관람하던 이들도 따라서 일어나 기립 박수로 어머니들의 마음에 깊은 위로를 전해 주셨습니다. 정말이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기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계룡대로 갑니다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기적이 이뤄집니다. 이번엔 대한민국 군의 정점인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이어지는 연극 <이등병의 엄마> 초청 공연입니다. 돌이켜보면 이 기적의 시작은 1999년 6월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때 군의문사 유족 엄마들은 관 3개를 끌고 국방부 앞으로 모였습니다.
이들 어머니들은 아들의 억울한 의문사를 밝혀달라고, '그러지 않으면 이 엄마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단식을 멈추지 않겠다'며 국방부 앞에서 절규했습니다. 이날 초로의 엄마들이 상복을 입고 군인들처럼 빡빡머리 삭발을 했습니다.
무섭게 내려쬐는 6월의 햇살에 얼굴은 새까맣게 탔고, 그렇게 탄 얼굴보다 더 새까맣게 탄 가슴 속 응어리로 모여 "국가가 데려가서 돌려주지 않은 않은 내 아들의 억울함을 밝혀달라"며 그렇게 수십 일을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하지만 굳게 닫힌 국방부 철문은 엄마들의 외침을 거부했습니다. 그저 자식 잃고 떼쓰는 사람으로만 치부되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이어진 지난 세월, 아들의 진상규명을 외치며 싸워왔던 어머니들의 지난 세월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래서 만든 연극이 <이등병의 엄마>였습니다. 군의문사 유족 엄마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가 자식 잃은 사연을 '연기가 아닌 진심을 담아' 국민에게 호소했습니다. 이 모두가 다 2800여 후원자 분들의 도움으로 연극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기적같은 행보를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힘으로 굳게 닫힌 국방부의 철문이 열립니다. 10월 10일 낮 3시,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주관하여 초청된 이날 공연에는 육해공군 소속 영관급 장교 700여 명이 관람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군인 인권과 그 피해 유족의 입장에 대해 군이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러한 공연 초청 소식에 배우로 참여하고 있는 일곱 분의 유족 어머니들은 눈물부터 쏟았습니다. 이런 날이 오리라 믿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연극이 연극으로만 끝나지 않은' 기적 앞에서 그날을 기다리며 공연을 더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날 계룡대 육군본부 대강당에서 공연될 100분간의 연극을 통해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가고 싶은 진짜 강군 만들기'입니다. 그렇습니다. 강군은 총이나 대포에서 나오는 힘이 아닙니다. 바로 신뢰입니다.
의무복무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국민이 군을 믿고 소중한 자식을 맡기는 신뢰, 사병이 지휘관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신뢰,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맡긴 아들이 만약 다시 부모에게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 명예만은 이 나라와 군이 부모와 자신에게 돌려주리라 믿는 신뢰.
아프면 치료해 주고, 괴로우면 위로해 주며, 또한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사병에게 그에 맞는 자기 역할을 맡기는 상식적인 군대로 대한민국 군대가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억울한 죽음에 대해 진실을 밝혀 그 억울함을 풀어주는 군대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적어도 이것이 제가 꿈꾸는 '진짜 대한민국 인권 군대'입니다. 이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저는 만인과 함께 꿈꿀 것이고 그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 앞으로도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모든 군인은 우리의 아들'입니다. 국가가 데려간 아들은 국가 책임입니다. 이 당연한 상식을 국가가 인정할 때 우리 군은 진짜 강군이 됩니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 기적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이를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