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재롱 턱 등을 제외하곤 더치페이 식사와 티타임, 간혹 영화관람 같은 나들이까지 -디카시 <노년의 희희낙락>중국 국경절 연휴를 맞아 10여 일 고향 고성에서 보내고 있다. 고향 고성이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고성의 원로들 모임인 희락회에 막내멤버로 끼어 간혹 아울리는 것이다.
10월 1일 고성에 와서 운 좋게 두 번이나 희락회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10월 6일에는 함께 점심을 먹고 인근 통영으로 가서 영화 <남한산성>를 관람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며 약소민족의 설움을 체감했다. 병자호란 당시 주화론자 최명길과 주전론자 김상헌의 주장을 들으며 어느 것이 옳은 길인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았다. 최명길의 고뇌가 뼛속 깊이 와 닿았다.
영화를 보러 통영까지 가야하는 것도 참 서글픈 대목. 고성 읍내에는 영화관 하나 없다. 고성군이 인물의 고장이라고는 하나 아쉬운 대목도 많다. 박물관이나 체육시설 등은 규모를 갖추고 있지만 여타 문화예술 분야는 낙후한 편이다. 인근 타 시군에는 모두 있는 예술회관도 문학관도 없다. 영화라도 관람하려면 통영으로 가야 한다.
그건 그렇고, 고성 원로 모임인 희락회를 잠시 소개해 보자. 원래 희락회는 희희낙락이라 불리다가 겉으로 보기 좀 우스꽝스러우니 줄여 희락회라고 점잖케 부르지만 실상은 노년의 즐거움을 뜻하는 희희낙락회다.
희락회는 회칙도 없다. 그냥 몇몇 자연발생적으로 가끔 점심과 티타임을 가지며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오늘도 즐거운 모임을 가졌다. 오늘 참석자는 도충홍(고성문화원장, 희락회 좌장), 이상부(전 대기업 임원, 희락회 총무), 심진표(전 도의원), 정해룡(전 통영예총 회장), 최일순(전 교사), 정호용(전 군의원) 그리고 필자 7명이다. 평균 연령은 70대로 고성의 원로들이다.
오늘은 최일순 여사가 이 교수도 중국에서 오고 했으니 사천의 친정집도 볼 만하니 한번 들르고 삼천포(사천시로 통합)에서 가을 전어도 맛보고 바닷가 커피숍에서 티타임도 가지자고 해서 이루어졌다.
최일순 여사는 진주여고를 나와 교편도 잡으셨는데, 당시 시골에서 진주여고를 가는 것은 뛰어난 재원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재원이시라 고성의 군수집안으로 시집을 와 지금은 고성 사람으로 살고 있다.
최 여사의 친정집은 사천군 사남면인데, 집 뒤에 대밭도 있고 앞으로는 들이 펼쳐진 고색창연한 2층의 양옥집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지금은 비어 있다. 무슨 영화에 나오는 고성(古城) 같은 느낌도 들 만큼 참으로 탐나는 집이었다.
최 여사의 이종사촌(고 최진수)은 도충홍 원장(통영군수 직무대리 역임)과 같은 공직에 있으면서 절친으로, 60대 초반에 별세했다. 고인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며 인근에 있는 산소도 들러 간단한 추모 의식도 가졌다.
그리고는 곧바로 삼천포 바닷가 횟집으로 가서 가을 전어회를 맛보고는 해안가를 따라 바닷가 아름다운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삼천포에서 고성으로 오는 해안선은 드라이버 코스로도 최고였다.
유유자적하며 욕심 없는 노년 젊은 시절 다들 열심히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일가를 이루고 노년에 고향에서 유유자적하며 욕심 없이 지내는 원로들을 보며, 고향에서 노년을 지인들과 보내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지락이 아닌가 했다.
덧붙이는 글 | 지난해 3월 1일부터 중국 정주에 거주하며 디카시로 중국 대륙의 풍물들을 포착하고, 그 느낌을 사진 이미지와 함께 산문으로 풀어낸다.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감흥)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공감을 나누는 것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