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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국가 차원의 군트라우마센터를 만들자는 의미로 군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동시에 연재되는 다음 스토리펀딩(바로가기)에서 국가의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있는 '군피해치유센터 함께'를 후원할 수 있습니다. - 기자 말

▲ 엄마는 매미소리 없는 집을 찾아 헤맸다
ⓒ 안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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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이민욱(가명) 일병의 군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만든 서류철 표지에는 후반기 교육을 받으며 찍었던 아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바로 옆엔 입대 전 이 일병의 모습이다.
엄마가 이민욱(가명) 일병의 군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만든 서류철 표지에는 후반기 교육을 받으며 찍었던 아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바로 옆엔 입대 전 이 일병의 모습이다. ⓒ 이희훈

2015년 1월 30일, 아들이 전역했다. 입대한 지 7개월밖에 안 된 때였다. 건강히 입대했던 아들은 '군복무 부적응자(제2국민역)'가 돼 있었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1000일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고통을 겪고 있다.

이민욱 일병(가명)의 엄마 박경희씨(가명)를 만난 건 지난 8월 17일. 비가 내린 통에 안 그래도 습한 반지하방이 더욱 후텁지근했다. 뚜껑 없는 선풍기가 덜덜덜 소리를 내며 위태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곳곳엔 아들과 엄마의 이름이 적힌 두툼한 약봉지가 놓여 있었다.

엄마는 방 한편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보였다. 궁서체로 적힌 '표창장'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제독병이었던 아들이 육군화생방학교에서 받은 상이었다.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군대에서 이렇게 상까지 받았던 아이인데, 어떻게 군복무 부적응자가 될 수 있냐고요..."

아들 이름이 선명히 박힌 표창장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군인정신이 투철하고 솔선수범함으로써 교육여건 조성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이에 표창함. 2014년 8월 28일"

하지만 5개월 후 군대의 말은 달라졌다.

"돌발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이 나타날 것을 우려, 군사령부 현역복무 부적합 심의 후 제2국민역으로 전역한 자임."(2015년 1월 30일, 육군 25사단 공무 상병 인증서 중에서)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플 때 잘해주면 버릇 나빠져"

 군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얻고 전역한 이민욱(가명) 일병은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이 일병의 집에 그의 기억을 대신할 메모판이 놓여 있다.
군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얻고 전역한 이민욱(가명) 일병은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이 일병의 집에 그의 기억을 대신할 메모판이 놓여 있다. ⓒ 이희훈

2014년 9월 25일, 아들이 훈련 도중 쓰려졌다. 제독병이 자주 착용하는 보호의(화학적으로 방독 처리된 개인피복)를 입고 장시간 훈련에 임하다가 '열 피로' 증상이 생긴 것이다. 자대 배치를 받은 지 21일 만의 일이었다.

아들이 쓰러진 뒤 이송된 곳은 지원과장실이었다. 소대장과 분대장은 의무대가 아닌 간부 집무실로 아들을 옮겼다. 그곳에서 아들이 받은 조치는 음료수를 마시고 누워서 쉬는 것뿐이었다. 의무대는 다음 날에야 갈 수 있었다.

열 피로 증상을 겪었음에도 아들은 그날 밤 불침번 초번 근무에 투입됐다. 일보사항(소대별 인원 및 특이사항) 조사를 마친 아들은 불침번 근무 사수인 손 상병에게 "지금 일보사항 보여드립니까? 일보사항을 어디에 사용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물었다. 그런데 손 상병으로부터 돌아온 건 욕설이었다.

"씨X, 그걸 왜 지금 보여드려. 그거 언제 쓰는 거냐? 몰라? 돌았냐? 정신 안 차릴래?"

손 상병의 욕설은 여러 부대원들이 있는 곳에서 긴 시간 이어졌다. 지켜보던 김 상병이 "아픈 애한테 별것도 아닌 걸로 너무 심하지 않냐"라고 말렸지만, 손 상병은 "아플 때 잘해주면 버릇 나빠져"라며 폭언을 이어갔다.

손 상병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어디선가 죽은 매미를 가져와 아들에게 명령했다.

"야, 이거 먹어."

아들은 곧장 "안 될 것 같습니다"라고 거절했다. 그러자 손 상병은 매미를 아들의 입에 들이밀었다. 아들이 "먹기 싫습니다"라고 말하자, 다시 폭언이 이어졌다.

"씨X, 돌았냐? 미쳤어? 씨X 돌았냐고? 내가 만만하냐? 뒤지고 싶어? 말 그 따위로 할래?"

손 상병의 욕설은 약 20분 동안 이어졌다. 그 시간 동안 아들의 입가엔 계속해서 매미가 맴돌았다.

"미치도록 무서웠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는 군피해자 이민욱(가명) 일병이 복용하는 약들.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는 군피해자 이민욱(가명) 일병이 복용하는 약들. ⓒ 이희훈

아들이 당한 가혹행위와 관련해, 군에서 인정한 것이 딱 이 정도다. 이대로라면 상병 한 명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으로 아들이 정신질환을 앓게 됐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다고 호소한다.

엄마는 아들이 어릴 적 남편과 이혼했다. 그럼에도 아들의 두 형을 비롯해 세 아들을 반듯하게 키워냈다. 하지만 군대는 한부모가정에서 자란 병사를 무조건 'B급 관심병사'로 분류했다(현재는 사라진 제도다). 그것도 '결손가정'이란 부정적 용어를 사용해가면서.

"한부모가정이 죄는 아니잖아요. 누구 맘대로 급수를 매겨서 낙인을 찍는 건데요. 행여 그렇다고 하면, 특별 관리라도 제대로 하던가요. 낙인은 찍고, 관리는 안 하고..."

엄마는 아들이 한부모가정이라는 사실이 노출돼 편견의 표적이 됐다고 주장한다. 매미 사건이 벌어지기 전부터 손 상병을 비롯한 몇몇 선임들이 소위 말하는 '갈굼'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당시 아들은 이렇게 진술했다.

"처음 (자대에 배치받고) 생활관에 갔을 때 분위기가 무서웠다. 생활하면서 선임들의 끝없는 갈굼이 시작됐다. 또 혼날까 봐 항상 무서웠다."

"2주 대기가 풀린 날 실수를 했다. 그때 손 상병이 불러서 사람들 보는 앞에서 오랫동안 '죽고싶냐'고, '미쳤냐'고 계속 욕을 했는데 그때는 정말 미치도록 무서웠다."

"식사를 할 때 막내라서 밥을 가장 늦게 받았는데 먼저 받은 선임들이 일찍 식사를 마치는 바람에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버리기 일쑤였다. 많이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서 선임에게 생활하면서 힘든 점도 말해보긴 했지만, (선임은) 꾀병이라고 말하곤 했다."

매미 사건 이후 상황은 악화됐다. 사건이 알려지자 아들은 졸지에 '선임을 간부들에게 찌른 놈'이 돼 있었고, 이후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됐다. 아래는 당시 아들의 진술이다.

"(의무대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부소대장님이 요즘 '힘든 일 없냐'고 물으시길래 '없다'고 했는데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해서 어제 있었던 일을 울면서 말하게 됐습니다. 부소대장님께 '바로 조취를 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부소대장님은 '그러면 간부들끼리만 알고 있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부대에 도착했는데 소대장님이 저를 따로 불러내서 '뭔 일 있냐'며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없다'고 했더니 '솔직하게 대답 안 할 거냐'고 하시길래 어제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아직 조치는 취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소대장님이 '왜 조치를 안 취하냐'며 '그러면 다음에 이런 일 또 당하면 어쩔 거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생활관으로 돌아갔는데 소대원들이 모두 진술서를 쓰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부대 전체에 제가 간부에게 찔렀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생활관 내에서도 다들 저를 싫어했습니다. 제가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제 얘기를 하고, 저를 쳐다보고 하는 것이 진짜 미치도록 힘들었습니다."

"아깝다, 저런 새끼는 죽었어야 했는데"

 이민욱(가명) 일병은 군대 내 괴롭힘으로 '군복무 부적응자(제2국민역)'로 제대 했다.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는 아들을 위해 엄마 박경희(가명)씨는 직접 발로 뛰며 아들의 피해 사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박씨도 함께 병을 얻었다.
이민욱(가명) 일병은 군대 내 괴롭힘으로 '군복무 부적응자(제2국민역)'로 제대 했다.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는 아들을 위해 엄마 박경희(가명)씨는 직접 발로 뛰며 아들의 피해 사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박씨도 함께 병을 얻었다. ⓒ 이희훈

손 상병은 영창 15일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아들의 귓전엔 이런 이야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고발자 새끼, 왕따시켜라."
"병X 같은 새끼가 우리 부대에 왔다."
"저 새끼 때문에 손 상병이 고생했다."

이후 아들은 우울증 약을 복용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약의 졸림 성분 때문에 일과 도중 차량 사고가 날 뻔 했는데, 그때 주변에서 들렸던 말이 아들의 가슴을 쿡쿡 찔러댔다.

"아깝다. 저런 새끼는 죽었어야 했는데."
"야! 넌 죽으면 끝이지만 운전병 쟤는 뭐가 되냐?"

아들은 소대장에게 "약의 졸림 성분이 너무 강해서 저도 모르게 계속 졸게 됩니다. 그것 때문에 선임들이 저를 안 좋게 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대장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아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새벽에 화장실에 들어가 가위로 배를 찌르려고 했고, 소총을 자신에게 쏘려고 안전장치를 풀기도 했다. 또 엔진오일을 마시려고도 했다. 2014년 12월 2일, 결국 엄마는 부대로부터 아들을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부대에 아들을 찾으러 갔을 때, 엄마가 본 아들은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너 많이 이상하다"라고 물었다. 아들의 대답 대신, 당직 사관의 무미건조한 말이 돌아왔다.

"어머니, 자다 일어나서 그럽니다."

그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이미 아들은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씩씩거리며 자꾸 "죽이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집에 와서도 음식만 먹으면 토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아들에게 정신병이 생겼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들의 고통은 갈수록 심해졌다.

"자다가 일어나서 갑자기 담요를 털더라고요. 누가 자기를 본다고 자꾸 커튼을 치고요. 그래도 저는 아들이 정신병에 걸렸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어요. 토하고, 음식을 못 먹고 그래서 자꾸 내과에 데리고 갔죠. 첫 번째로 간 내과에서 의사 선생님이 '정신과로 가야 합니다. 이대로 두면 놓칩니다'라고 말하더라고요. 믿을 수 없어서 다른 내과로 갔어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똑같았습니다.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엄마는 매미소리 안 들리는 집을 찾아 헤멨다

 엄마는 아들의 군피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자료들을 바닥에 펼쳐 놓았다. 펼쳐 놓은 자료들로 한 방이 가득 찼다.
엄마는 아들의 군피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자료들을 바닥에 펼쳐 놓았다. 펼쳐 놓은 자료들로 한 방이 가득 찼다. ⓒ 이희훈

아들의 병명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정서불안·수면장애·초조함·회피·사회적 위축 등의 증상이 계속됐다. 또 구토와 설사뿐만 아니라, 일자목·거북목 증후군·팔저림 등 신체적 문제까지 동반됐다. 엄마는 밤낮으로 아들 곁에 붙어 있어야 했다.

그 와중에 엄마가 받아든 아들의 '전·공상 심의 의결서'에는 황당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군이 작성한 발병경위 란에는 매미 사건과 함께 "어릴 적과 학창시절의 따돌림, 괴롭힘, 놀림 등 잠재적인 문제가 있었으며"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들의 발병을 개인 탓으로 돌리려는 내용이었다. 사실과 다른 내용에 엄마는 분통을 터뜨렸고, 그제야 군은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

돌아온 여름, 엄마는 이사할 집을 알아봐야 했다. 집 앞 나무에서 매미가 울어대기 시작하자 아들의 상태가 더욱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에서 맴돌던 매미가 여전히 아들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했다.

"6개월 정도 치료를 하면서 조금 상태가 좋아졌었어요. 근데 여름에 집 앞에서 매미가 우니까 아들이 또 이상해지는 거예요. 몸에서 노란 땀과 끈적끈적한 진액이 흘러나왔어요.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약을 먹어도 가슴이 뛰어서 잠을 못 잤죠. 부랴부랴 이사한 집이 지금 이 반지하방이에요. 이 집도 겨우 찾았죠. 근데 대한민국에 매미소리 안 들리는 집이 있나요? 지금도 여름만 되면..."

 박경희(가명)씨는 우울증, 불면증 등 증상으로 오랜기간 약을 복용해 간질환이 생겼다. 병원에 입원한 박씨와 목사가 기도를 하고 있다. 박씨는 아들이 입대 전처럼 건강을 되찾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박경희(가명)씨는 우울증, 불면증 등 증상으로 오랜기간 약을 복용해 간질환이 생겼다. 병원에 입원한 박씨와 목사가 기도를 하고 있다. 박씨는 아들이 입대 전처럼 건강을 되찾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 이희훈

엄마의 몸과 마음 역시 함께 무너졌다. 우울증과 불면증이 일상이 됐고, 대상포진까지 앓았다. 아들과 함께 엄마도 약봉지를 달고 살다보니 간에 이상이 생겨 입원하는 일도 잦아졌다. 2015년 9월에는 길을 걷다 갑자기 쓰러져 구급차 신세를 졌고, 기립성 저혈압(일어서 있을 때 혈압이 낮아져 어지럽고 때로는 실신하게 되는 상태) 진단을 받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집안 형편도 더욱 어려워졌다. 노점상까지 해가며 홀로 세 아들을 키웠던 엄마는 이제 "다른 일은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요. 제가 이 정도 바보는 아니었는데, 항상 무기력증에 빠져 있어요"라고 고백했다. 생활비와 각종 병원비, 재판 비용으로 빚은 점점 쌓여갔고, 한 달 30만 원인 월세도 몇 개월씩 밀리는 상황이 반복됐다. 아들의 두 형도 꿈을 모두 접어야 했다.

국가보훈처가 아들을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하면서 한 달에 82만6000원씩 받게 됐지만, 엄마는 구청으로부터 당혹스러운 안내문을 받기도 했다. 구청은 기존 받아오던 기초생계급여에서 82만6000원을 제외한 금액만 지급하겠다고 통보했다. 그게 규정이라고 하지만, 국가로부터 받은 엄마의 상처는 더욱 깊어졌다.

무엇보다 엄마가 두려운 것은 사회의 시선이다. 그래서 엄마는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다.

 엄마는 아들의 군피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자료들을 바닥에 펼쳐 놓았다. 펼쳐 놓은 자료들로 한 방이 가득 찼다.
엄마는 아들의 군피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자료들을 바닥에 펼쳐 놓았다. 펼쳐 놓은 자료들로 한 방이 가득 찼다. ⓒ 이희훈

"'남들은 다 갔다 오는데 왜 당신 아들만?' 제 주변 사람들도 은연중에 이런 생각을 하더라고요. 군 피해자들이 가장 상처받는 게 이런 시선이에요. 그래서 어디 가서 말도 못하죠. 우리 아들도 이런 이야기를 자주했어요. '엄마,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인 줄 몰랐어. 내가 이렇게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인가봐.' 저는 '아니야, 네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데'라고 말하지만, 돌아서면 미쳐버리는 거죠.

군대가 아픈 사람 데려가는 거 아니잖아요. 멀쩡한 사람 데려가는 거잖아요. 그래요, 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신 그로 인해 멀쩡한 사람이 다치면 국가가 제대로 책임져야죠."

엄마의 군대 밖 전쟁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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