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10일) 방이동에 위치한 '소마미술관'을 찾았다. '영국 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 - NUDE'를 감상하기 위해서 시간을 냈다. '누드'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와 같은 콘셉트로 전시를 꾸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어떤 작품들이, 어떤 테마로 묶여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또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 드가 등 거장들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소마미술관은 올림픽 공원 내에 있는데, 1998년 올림픽 공원의 개원과 함께 그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에는 야외 조각공원이 전부였지만, 1998년 미술관으로 등록하고 2004년에 서울 올림픽 미술관(Seoul Olympic Museum of Art)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그 이름이 올드한 느낌이라 촌스럽게 느껴졌던 걸까. 2006년에 소마미술관으로 명칭을 개명했다. 영어 이니셜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몽촌토성 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눈앞에 세계평화의 문이 펼쳐지고, 오른편의 널찍한 위례성대로가 시야와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가로수가 조성된 인도는 깨끗하고 분위기가 좋아 걷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다. 현재 소마미술관 외곽 지역은 지하철 관련 공사 중이라 어수선한데, 그 부근만 지나가면 아주 평화롭고 여유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한쪽엔 도심의 풍경이, 다른 한쪽엔 자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공존이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롭다. 몽촌호를 둘러싼 경관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다. 미술관 옆의 산책로를 따라 걷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평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듯 한 광경이다. 한참동안 호수와 공원에 시선을 빼앗긴 후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역시 자연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 전시기간 : 8월 11일~12월 25일- 관람요금 : 1만3000원(성인 기준)'영국 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 - NUDE'는 역사적 누드, 사적인 누드, 모더니즘 누드,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 누드, 표현주의 누드, 에로틱 누드, 몸의 정치학, 연약함 몸 이렇게 8개의 테마로 구성돼 있다. 이를 위해 소마미술관은 테이트 미술관의 소장품(약 7만 점) 가운데 18세기 후반부터 현대까지 총 122점을 엄선해 가져왔다. 미술관 내에는 총 6개의 전시실이 마련돼 있는데, 2층에 1~5전시관, 1층에 6전시실이 있다.
전시의 첫 출발점인 18~19세기의 누드화는 역사화의 고전적 소재로 쓰였다. 윌리엄 스트랭의 <유혹>, 허버트 드레이퍼의 <이카루스를 위한 애도>가 대표적인 작품인데, 당시의 '누드'는 신화, 성경, 문학의 주제 속에서만 존재했다. 화폭에 담긴 나신은 매끈하고, 육감적이었다. 성(聖)스러운 주제의 뒷받침 때문일까.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깃든 저 나신들은 '포르노'로 천시받는 게 아니라 '고급예술'로 추앙받고 있다.
20세기에 접어들면 누드화는 실제의 여성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앙리 마티스의 <옷을 걸친 누드>처럼 여성의 부드러운 곡선을 탐미하기 시작한다. 신화에서 현실로 눈길을 돌린 셈이다. 사실주의의 영향일 것이다. 만약 테이트가 아니라 오르세 미술관에서 한 작품만 빌려올 수 있었다면 귀스타브 쿠르베의 <생명의 기원>을 고르지 않았을까. 성(聖)스러운 지위를 상실한 누드는 천박한 것으로 여겨져 비난의 대상이 된다.
모더이즘 누드 조각들이 전시된 3전시실과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 누드, 표현주의 누드가 전시된 5전시실에선 관심이 급격히 떨어졌다. 인상주의 이후부턴 그저 '난해하다'로만 인식하는 예술적 감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귀스트 로댕의 '키스(The Kiss)' 원본 조각이 전시된 6전시관에서도 큰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파리를 여행할 때도 코앞에 '로댕 미술관'이 있었지만 패스할 정도로 조각엔 큰 관심이 없었다.
다만, 시대의 전진(前進) 속에서 누드를 대하는, 혹은 누드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는 의미있게 다가왔다. 20세기 중반 이후가 되면 예술계에도 페미니즘이 대두하기 시작한다. 여성의 몸을 대하던 기존의 관점, 다시 말해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성적인 대상으로 여겼던 시선들에 반기를 드는 활동들이 두드러진다. 여성이 피사체가 되고, 남성이 붓을 휘두르는 권력관계를 전복시키는 작품들이 소개돼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끌었지만, 가장 실망스러웠던 테마는 '19금(禁)' 표시가 돼 있었던 4전시실이었다. '에로틱 누드-드로잉'이라는 이름으로 커다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그곳에는 어떤 작품들이 들어있는 걸까. 막상 들어가 보니 엄청난 수위(?)의 작품들은 없었다. '낚시'였던 걸까. 그런 이유는 아니었을 게다. 수마미술관에서 4전시실을 '19금'으로 정하고, 미성년자의 관람에 유의를 요하는 까닭은 '동성애'를 그린 작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4전시실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동성애 드로잉과 파블로 피카소의 관음증 묘사 판화 등이 있는데, 소마미술관 측은 이 작품들을 '선정적'이라 생각하고 따로 전시실을 나눠 놓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책임큐레이터인 체이버스는 "해당 섹션 작품들이 한국 국민 정서상 불편할 수 있다고 판단해 따로 구역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투데이신문>, 소마미술관 테이트 명작展, 동성애 작품 선정성 분류 논란)
물론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에로틱 누드'라는 섹션을 만들어 굳이 따로 빼놓을 필요까지 있었을까. 이것이 사실상 '격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애시당초 누드의 역사적인 맥락에 따라 전시의 구색을 맞췄던 취지와도 어긋난다. 어쩌면 원작자들의 창작 목적이나 의도와는 무관하게 '에로틱'이라는 묶음으로 엮어 본래의 뜻을 훼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 작품들을 전시 목록에 포함시키고 관람에 제한을 두진 않았지만, 지금처럼 별개의 테마로 빼기보다 자연스럽게 맥락 속에 포함시키는 편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사회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 정도의 성숙함은 갖췄다고 생각한다. '국민 정서를 고려한다'든지 '미성년자를 보호한다'는 호들갑 속에 예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편협한 시각이 노출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