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올리려면 땅밑으로 깊게 기둥을 박습니다. 높이려는 층수에 맞추어 땅밑에서 단단히 받쳐 주어야 하거든요. 자동차가 다니려면 찻길이 될 자리도 다져 놓습니다.
자동차가 다니다가 움푹 꺼지면 안 될 테니까요. 기차가 다니는 자리도 그렇고, 지하상가 있는 자리도 그래요. 도시에서는 이래저래 거의 물샐 틈이 없다시피 하도록 땅을 메꿉니다.
싱그럽거나 맑은 냇물이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기는 만만하지 않아요. 그러나 도시에는 공원이나 분수가 있어요. 숲을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더라도 사람이 살아가려면 밥뿐 아니라 바람하고 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하고 볕을 쪼일 수 있어야 해요.
아이들은 도시에서 공원이나 분수대 둘레가 더없이 좋은 쉼터이자 놀이터가 됩니다. 마음껏 달릴 수 있고, 신나게 물을 누릴 수 있어요. 마음껏 뛰면서 노래할 수 있고, 물밭에서 까르르 웃음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 분수는 어떤 분수일까요? 도시에 있는 분수는 그냥 분수일까요, 아니면 어쩌면 설마 고래 등판은 아닐까요?
그림책 <파란 분수>(사계절 펴냄)는 도시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아이가 늘 꿈을 꾸던 고래를 분수대에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말 한 마디 없이 오직 그림으로 이야기를 꾸려요.
아무래도 군말은 없을 만합니다. 아이는 분수대 가장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꿈을 생각해요. 겉으로 보기에 온통 시멘트하고 아스팔트만 있는 듯한 도시입니다만, 아이 마음에는 '이 도시 껍데기'를 뚫고 나올 무언가 재미나며 놀라운 일이 있으리라 여깁니다.
이러던 어느 날 참말 대단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요. 모두 잠든 밤에 아이는 홀로 분수대에 앉아요. 달빛이 밝고 사람이 아무도 없는 분수대인데, 갑자기 땅이 갈라지더니 커다란 눈알이 땅밑에서 솟아나오지요.
아이는 처음에는 두려워서 깜짝 놀라다가 이내 깨닫고 웃어요. 아하, 분수대라는 겉모습으로 몸을 숨긴 고래가 드디어 깨어났네!
고래는 하늘을 날아오릅니다. 고래가 하늘을 난다니? 그렇지만 아이 빼고는 아무도 이 모습을 못 봐요. 그래서 아이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바로 '고래가 하늘을 날 줄 안다'는 대목을 다른 사람들은 알 길이 없어요.
고래는 아이를 이끌고 하늘을 날고 바다를 가릅니다. 무지개를 물방울로 뿜어 주면서 신나게 놀이판을 벌입니다. 이러다가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데요, 온몸이 '빗물' 아닌 '짠물'로 흠뻑 젖은 데다가 불가사리까지 한 마리 옷에 들러붙은 채 돌아온 아이를 아이 어머니나 아버지가 어떻게 바라볼까요?
아이 어버이는 아이가 '고래하고 바다를 가르며 놀았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아이 어버이는 아이가 고래를 타고 하늘을 날았다고 하는 말을 그저 '생각으로 지어낸 이야기'라고 여길까요?
그림책 끝자락을 보면 아이 방이 살짝 나와요. 아이는 책상맡에 고래 그림을 멋지고 크게 그려서 붙였군요. 늘 고래를 바라보면서 꿈을 꾸었네요. 방바닥에는 분수를 그린 종이가 있어요. 티없는 마음으로 꿈을 짓고 바라기에 아이 나름대로 이룬 자그마한 "파란 분수"예요. 아이는 이날 만난 "파란 분수"를 두고두고 가슴에 담으면서 새롭고 아름다운 꿈길을 걸어가는 씩씩한 어른으로 자리리라 봅니다.
덧붙이는 글 | <파란 분수>(최경식 그림 / 사계절 / 2017.7.25. /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