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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미수습자로 남아있던 이영숙씨의 장례식이 열린 부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아들 박경태(31)씨가 어머니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이씨의 유해는 지난 5월 22일 목포 신항 세월호 선체 수색 과정에서 발견됐다.
세월호 미수습자로 남아있던 이영숙씨의 장례식이 열린 부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아들 박경태(31)씨가 어머니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이씨의 유해는 지난 5월 22일 목포 신항 세월호 선체 수색 과정에서 발견됐다. ⓒ 정민규

그날 그 배에 어머니가 타고 있을 줄 꿈에도 몰랐던 아들은 3년 반이 지나서야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고개를 숙였다.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던 모자는 제주도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 했다.

아들이 직장을 잡았던 제주도가 어머니는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인천 집을 정리하고 제주도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다짐했다. 바로 그 이삿짐이 실려 있던 배의 이름이 세월호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이영숙씨의 뒤늦은 장례식이 열린 13일 오후 부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들 박경태(31)씨는 피곤한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 밤을 뜬 눈으로 보냈다고 했다.

"다른 가족들처럼 2014년도에 (어머니를) 찾아서 장례를 일찍 치렀으면 그나마 저한테도 위로가 되고 어머니도 잘 보내드릴 수 있었는데, 3년이 넘어 보내 드리려 하니까 죄송스러운 마음밖에 없습니다."

이영숙씨는 다정다감했던 어머니였다고 했다. 그런 어머니와 함께 꿈꾸던 제주 생활이 어머니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보낸 것 같아 원망스러운 아들이었다.

"아직도 못 찾은 가족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플 것"

 세월호 미수습자로 남아있던 이영숙씨의 장례식이 13일 부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오는 15일 화장을 한 이씨의 유해는 인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서 영면에 든다.
세월호 미수습자로 남아있던 이영숙씨의 장례식이 13일 부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오는 15일 화장을 한 이씨의 유해는 인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서 영면에 든다. ⓒ 정민규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사고 그날, 진도로 가는 길은 멀었다고 했다. 속절없이 늘어지는 수색이었지만 이렇게 시간이 걸릴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304명 중 한 자릿수 미수습자 때까지 기다릴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남겨진 가족들은 피를 말리는 기분이었어요. 지금도 아직 못 찾은 가족들의 심경이 어떨까요. 그 심경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플 겁니다."

지난 5월 22일 어머니는 세월호 선체 수색 과정에서 발견됐다. 어머니를 찾을 수 있어 마음의 짐을 덜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가족을 기다리는 다른 미수습자 가족들이 떠올랐다.

다른 미수습자 가족들은 먼저 찾은 어머니라도 보내라고 박씨에게 권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했다.

"선체 수색 종료 시점이 다가오는데, 같이 찾아서 올라가자고 결정했는데 그 약속을 못 지킨 것 같아서 죄송스럽습니다... 저도 3년 동안 남겨진 자로 있어서 그 기분을 아니까 자주 찾아뵙고 힘을 보태드리려고요."

오는 15일까지 부산에서 장례식을 마친 뒤 이영숙씨는 인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서 영면에 든다. 박씨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수색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고, 시민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못 찾은 분들한테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세월호 참사 1277일, 아직도 5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이영숙#미수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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