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20일 오전 '건설 공사 재개 59.5%', '건설 공사 중단 40.5%'로 대정부 최종 권고안을 발표하자, 해당 지역인 울산의 민주·진보·시민사회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위기다. 보수정당과 찬핵단체와 원전 지역 주민단체들이 축제 분위기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210여 개 크고 작은 지역 단체들로 구성된 신고리5·6호기백지화울산시민운동본부(아래 시민운동본부)는 당초 이날 오전 11시 10분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지만 오후 2시가 돼서야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내용은 '문재인 대통령의 신고리5·6호기 백지화 공약 포기에 유감을 표한다. 시민운동본부는 탈핵운동 지속해 나갈 것'이라는 수준에 그쳤다.
이는 "공론화위 발표를 인정하지 말고 신고리5·6호기의 백지화를 요구하자"는 단체와 "민주적 절차니 공론화위 결정을 수용하자"는 단체 간의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지 못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탈핵단체와 진보정당 등은 백지화 운동을 벌이자고 주장한 반면, 더불어민주당 등 민주진영 일각에서는 수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시민운동본부는 향후 각 단체의 의견을 더 조율해 내주 초쯤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최종 대응 방향을 결정해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백지화 운동이냐 수긍이냐'를 두고 민주·진보진영 내의 입장이 통일되지 않고 계속 대치된다면 자칫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진영에 이득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울산시민운동본부 "보수정당, 시민안전 우선 않는 행태 보여"시민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2시 울산시청 정문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론화위 권고안과 정부 발표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면서 "신고리 5·6호기를 지진대 위에 건설하는 점, 다수 호기와 인구밀집도에 따른 안전성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했으나, 이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공사 재개 권고안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백지화를 약속했지만 공론화 과정은 정부의 후속대책 없이 찬반단체 논리와 토론에만 맡겨졌고, 정부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서 "더욱이 신고리 5·6호기 직접 영향권에 있는 부산, 울산, 경남 시민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미래세대 목소리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결과물"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번 공론조사 결과나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원자력발전이 축소돼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강하게 나타났지만 이번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은 울산 인근에 16개나 되는 가장 많은 핵발전소를 낳게 되는 모순된 상황이 돼버렸다"면서 "정부는 탈원전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뚜렷하다는 것을 직시하고, 원전 축소를 중심으로 탈핵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아직 완공되지 않은 신고리 4호기에 대해서는 완벽한 안전성이 담보되는 평가를 실시하고 나서 운영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면서 "모든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보루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상과 구조를 안전을 중심으로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우리는 앞으로 핵발전을 둘러싼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더욱 열심히 활동할 것"이라면서 "정부의 권고안도 문제지만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정당은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일제히 내면서 정치권이 울산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는 행태를 보였다. 시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려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탈핵정신 후퇴" "공론화에 공 넘긴 정부 책임"노동당 울산시당은 성명을 내고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재개는 핵발전 정책을 축소하고 탈핵으로 나아가자는 권고안과 배치되는 것으로, 탈핵의 정신을 경제논리로 후퇴시킨 것과 다른 바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공론화위원회는 구성에서부터 당사자 지역인 부산, 울산, 경남이 배제됐고 '핵마피아'들의 거짓 정보들이 넘쳐났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후보 시절 탈핵 의지를 표명하며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공약한 바 있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한 공론화위원회에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검토를 넘긴 것은 탈핵 의지를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당 울산시당도 논평을 내고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이라는 정부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공론화에 부쳤는데 막상 공론화할 정부 정책과 후속 대책은 듣지 못하고, 팽팽하게 맞서는 찬반단체 논리와 토론에만 맡겨 공론화를 서둘러 마무리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라고 평했다.
이어 "안정적인 전력수급, 일자리, 원전산업, 지역경제 및 주민보상, 재생에너지 대책 등 국민이 걱정하는 현실적인 우려에 대한 정부 대책이 공론화의 장에 오르지 않았는데, 왜 정부가 공론화를 하려고 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공론화에 공을 넘긴 것이나, 정부 없는 공론화와 공정성 논란을 방치한 정부의 책임을 지나칠 수 없다"고 밝혔다.
민중당 울산시당 역시 논평을 통해 "숙의 기간 동안 생업을 마다하고 참여한 시민참여단의 결정을 존중하며 결과를 떠나 공론화가 민중 직접 정치를 확대하는 새로운 발판이 되기를 희망한다"면서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정부 결정과는 무관하게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과정에서 확인된 부실심사 등의 문제는 반드시 되짚어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는 탈핵·에너지전환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면서 "불안하고 위험한 노후 원전 조기 폐로부터 당장 검토해야 하며 신재생에너지 비중확대와 국가 차원의 지원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