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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사진상규명활동 대국민보고 및 제2기 보고서 출판기념회'가 지난 2004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한완상 과거청산범국민위 상임대표와 한상범 의문사위원장이 의문사위 보고서 <진실을 향한 험난한 여정>을 살펴보고 있다.
'의문사진상규명활동 대국민보고 및 제2기 보고서 출판기념회'가 지난 2004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한완상 과거청산범국민위 상임대표와 한상범 의문사위원장이 의문사위 보고서 <진실을 향한 험난한 여정>을 살펴보고 있다. ⓒ 권우성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한상범 전 동국대학교 교수님이 지난 10월 15일 운명하셨습니다. 부고 소식은 늘 갑작스러운 일이지만 한상범 위원장님의 부고 소식을 들으며 제 마음 한쪽에서 소슬바람이 일 듯 가슴이 일렁거렸습니다.

2002년 5월 3일. 이날은 제가 한상범 위원장님을 처음 뵌 날입니다.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한 후 뒤늦게 1기 위원회의 조사관으로 합류한 제가 한상범 위원장님으로부터 조사관 임명장을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여러 인권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면서 과거 한상범 위원장님이 쓰셨던 인권 관련 저서만 봐 왔는데 그런 분과 같은 기관에서 일하게 되어 매우 영광스러웠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큰아버지처럼 늘 다정했던 그분, 한상범

제가 느낀 한상범 위원장님의 참 모습은 '소탈한 학자', 그 자체였습니다. 고백하자면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관급인 한상범 위원장님을 처음 대면할 때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대학자로 널리 알려진 그런 분을 만났으니 처음엔 눈도 제대로 마주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먼저 풀어준 건 위원장님이었습니다. 이후 장준하 선생 사건의 조사 과정을 보고하고자 위원장실을 찾으면서 뵙게 된 위원장님의 모습은 마치 큰아버지처럼 푸근했습니다.

여느 기관의 '권위적인' 위원장과 달리 늘 조사관을 만나면 자상하셨습니다. 결재를 하면서도 혹여 조사관으로 일하며 어려운 점은 없는지 살펴 물어봐 주셨고 그 어투도 살가웠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이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담당 조사관을 따로 불러 의견을 물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위원장님의 모습은 담당 조사관 입장에서 그야말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건을 다루는 위원회의 장관급 위원장께서 구체적 사건에 대해 관심을 표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어떤 분들은 "장준하 선생 사건 정도 되니 그런 것 아니냐"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2기 위원회에서 장준하 선생 사건을 맡기 전인 1기 때는 군 의문사 사건을 맡아 조사한 적도 있는데 그때 역시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88년 외대 재학 중 군에 입대하여 의문사한 남현진씨 사건을 담당했을 때도 한상범 위원장님은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며 억울한 군 의문사 해결을 위한 업무를 늘 독려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조직의 최고 수장인 장관급 위원장께서 사건을 하나하나를 챙겨 확인해주시는 것은 사건을 맡고 있는 조사관 입장에서는 기쁜 일이었습니다. 이는 '신뢰'이며 능력에 대한 '인정'이기 때문입니다.

한상범 위원장과 제가 인연을 맺은 시간은 2002년 5월부터 2004년 7월 정도였습니다. 햇수로는 근 3년 정도 됩니다. 여러 기억이 납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역시 '장준하 선생님 사건'을 담당하던 때입니다.

저처럼 부족한 사람에게 이런 큰 사건을 맡겨주신 한상범 위원장님에게 각별하게 고마웠습니다. 저 역시 그런 위원장님의 마음에 보답하고자 장준하 선생 사건에 관련된 새로운 자료와 증거를 발굴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장준하 공원에 조성된 장준하 선생님 조각
장준하 공원에 조성된 장준하 선생님 조각 ⓒ 고상만

위원장이 아닌 또 한 명의 조사관이었던 한상범

회고해 보면 한상범 위원장님은 그냥 보고나 받으며 회전 자리나 지키는 위원장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현장을 뛰며 진실을 찾고자 노력한 분이었습니다. 그 분과 함께 장준하 선생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조사 과정에 참여했던 기억도, 그래서 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장준하 선생 의문사 사건에는 사건 인물의 비중만큼이나 관련된 인사들이 대단했습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대표할만한 분들이었습니다. 김준엽 총장님, 법정스님, 김동길 교수, 백기완 선생님과 전태일 열사 모친이신 이소선 어머니, 이해학 목사님, 그리고 9년 3개월간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김정렴씨 등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분들로부터 귀한 증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분, 정말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계셨는데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님과 생전 면담 조사를 했던 자리입니다. 이날 한상범 위원장님을 모시고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했던 건 제게 각별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면담을 시작하면서 한상범 위원장님은 김대중 전 대통령님과의 특별한 인연을 꺼내며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지난 1기와 2기 위원회 활동을 거치면서 밝혀낸 중요 사건에 대해 보고 드렸습니다. 예를 들어 인혁당 재건위 조작 사건 및 서울대 최종길 교수 타살 사건 등의 진실을 규명한 자료였습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자료를 김대중 도서관에 기증하시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 역시 이러한 한상범 위원장님의 선물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하며 비서에게 '이 자료를 김대중 도서관에 잘 비치해 놓도록' 특별히 지시하시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이와 같은 여러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정치적 환경을 만들어준 김대중 전 대통령님, 그리고 이에 보답하여 위원회를 잘 이끌어 주신 한상범 위원장님 덕분에 이뤄낸 성과였습니다.

그리고 그 확실한 증거가 바로 장준하 선생 사건의 조사가 종료된 후 한상범 위원장님이 직접 작성하신 이른바 '장준하 사건 인정 의견에 대한 소수 의견서'입니다.

장준하 타살, 끝까지 '소수의견' 남긴 한상범

많은 조사 결과물이 있었고 이에 따라 장준하 선생의 사인이 '공권력의 개입에 의한 사망'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히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당시 위원회는 장준하 선생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상범 위원장님은 이러한 '진상규명 불능 결정'에 대해 끝까지 반대하셨습니다. 훗날 밝혀진 것처럼 장준하 선생이 실족 추락사한 것이 아니라는 충분한 근거를 확인했기에 공권력에 의한 타살임을 인정해도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상규명 불능'이 아닌 '인정'으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을 소수 의견서로 공식 제출한 것입니다.

비록 일부의 반대로 장준하 선생님의 유골 감정이 실시되지 못한 점과 중정(현 국가정보원)과 보안사(현 기무사령부)가 존안하고 있는 관련 기록을 제출하지 않아 미진한 부분은 있지만,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타살 결론을 내려야 한다며 위원들을 설득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위원회는 이러한 한상범 위원장님의 강한 요구에 대해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게 됩니다. 따라서 차후 이 사건과 관련한 추가 조사가 이뤄질 경우 다시 재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다수 의견에 따라 '진상규명 불능'으로 최종 결정합니다.

그러자 한상범 위원장님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이 결정을 수용하면서 대신 이 사건의 역사적 기록을 위한 '소수 의견'을 남기셨습니다. 장준하 선생 사건이 왜 '공권력 개입에 의한 사망'으로 인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소상히 담아 문헌상의 기록을 남긴 겁니다. 그 기록에 과거 유신독재 아래서 장준하 선생이 죽임을 당한 이유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처럼 한상범 위원장님이 직접 작성한 이른바 '소수 의견'은 국가기록 문서인 '장준하 사건 결정문' 말미에 추가하여 이 지구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역사적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한 위원장님은 이것으로 장준하 선생의 사인이 '공권력 개입에 의한 사망'임을 말했습니다. 한상범 위원장님의 학자적 양심과 공직자로서 맡은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그 열정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평생 법학자로, 민족문제연구소 공동대표로, 그리고 시대에 앞서간 양심적 지식인으로, 반독재 민주주의 투사로, 그리고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대표하는 위원장으로 한상범 위원장님이 보여주신 그 모습을 저는 잊지 않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그 뜨거운 열정만큼은 영원히 잊지 않고 위원장님이 담당하셨던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얼마나 치열하게 그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자 노력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상범 위원장님이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 늘 증언하겠습니다.

지난 15일, 한상범 위원장님의 애석한 부고 소식을 들으며 제 마음에 소슬바람이 불었던 이유입니다. 부디 고이 가소서. 위원장님과 함께했던 그 고귀한 시간을 제 삶의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여기며 부끄럽지 않은 제자로서, 또 후배로서 그 뒤를 따르겠습니다. 영면하소서.


#한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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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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