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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의 뷔페식. 꼭 한 번은 경험해 볼 만하다. 여러 식당을 기웃거리고서야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편리함. 누려볼 만한다. 그래서 리조트 숙소에서 조식을 신청했다. 덕분에 아침부터 과식을 하게 됐다. 많이 먹기는 했는데 무얼 먹었는지 뭐가 맛있었는지는 기억은 나지 않는다. 먹을 때는 즐겁고 배불렀으나 특별함은 없었다. 무엇보다 줄이 길다. 소중한 여행 시간을 빼앗긴다. 호텔 조식이 유명하다면 기다림은 필히 고민해봐야겠다.

어제가 바다 테마였다면 오늘은 산책 테마다. 요미탄 마을(도자기), 류큐무라(민속촌), 비오스(수목원) 순서로 돌기로 했고 그렇게 했다. 산책 여행이라 날씨가 관건이었는데 류쿠무라까지는 쨍쨍하던 하늘이 비오스에 들어서는 순간 비를 뿌려 비오스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날씨야 그렇다 쳐도 지도를 한 번이라도 봤으면 순서가 역순이어야 이동 거리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실수였다. 뭐 괜찮다. 풍경은 놓쳤으나 진짜 맛있는 맛은 보았으므로.

도자기 마을은 도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 볼 만하다. 그런 쪽이 아니라면 메인 코스로는 피하는 게 좋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 깊이 살필 끈기나 심미안이 없다면 도자기 공방집합소. 이걸로 끝이 난다. 도자기에 대한 식견이나 애정을 채워 가야 즐길 수 있다.

류큐무라 역시 마찬가지다. 전통과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즐거울 거고 그렇지 않다면 혼잡한 유원지에 불과하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어딘들 안 그렇겠는가. 받아들이고 느끼고 해석하지 않으면 여행지란 그저 지나가는 색다른 풍경에 불과할 것이다.

한편 생각을 바꿔보면 여행지에서 내 취향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된다. 이를테면 나는 류큐무라를 돌고 나서 오키나와의 예술과 전통보다는 간이매점에서 파는 블루씰 아이스크림과 가마보코를 더 기억한다. 그럼 나는 역사와 정신보다는 먹는 데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 사람이다. 여행을 두고 자아찾기라고도 하는데 아마도 이런 깨달음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내 자아는 위장과 혀에 확실히 묶여 있다.

그런 탓에 류큐무라를 빠져나오자마자 신속하게 점심 먹을 식당으로 돌진했다. 항구 쪽 식당이었는데 거리가 있어서 여행계획을 빠듯하게 만든 요소이기는 했으나 가보고 싶었다. 어부들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라는데 구미가 당기지 않을 도리가 있나. 오키나와의 항구도 보고 싶었고.

*도야항 이유노미세

세계 3대 미항 따위로 이름에 멋을 부리지 않은 생활인의 항구에 붙어 있는 작은 가게다. 식당과 해산물 판매점을 겸한다. 생각보다 좁고 야외 테이블은 투박하다. 탁 트인 뷰 따위는 없다. 그저 배가 출렁이는 바다가 덜렁 놓여 있다. 해물 덮밥, 참치회 덮밥, 생선탕을 시켰더니 가게 모양새처럼 꾸밈없이 쟁반에 음식을 담아놓고는 와서 가져가라고 내 이름을 부른다. 그것도 이름 석 자 중 부르기 좋은 쪽의 한 음절로만.

이유노미세의 해물덮밥 화려한 색감에 끌려서 가면 밍밍한 해산물에 실망할 수도 있다
이유노미세의 해물덮밥화려한 색감에 끌려서 가면 밍밍한 해산물에 실망할 수도 있다 ⓒ 강현호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맛. 맛까지 투박하면 어쩌자는 거냐. 조리하지 않은 해물은 죄다 밍밍하다. 일행 중 누구는 괜찮다고도 했으나 난 반대다. 영 내 입에 맞지 않았다. 주당에게 술 생각이 나지 않거나 해장이 안 되는 음식을 어디다 쓸 건가. 물론 생선탕은 살짝 시원한 청주가 생각나게 하긴 했지만. 그래서 이 식당에 마음속 낙제점을 주고 돌아설까하다가 음식주문할 때 주방에서 뭘 열심히 튀겨서 현지인들에게 건네주는 게 기억이 났다. 덴뿌라. 튀김이다.

이유노미세의 튀김 덴뿌라. 이건 꼭 먹어야 한다. 시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다 먹어치우는 게 최선.
이유노미세의 튀김덴뿌라. 이건 꼭 먹어야 한다. 시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다 먹어치우는 게 최선. ⓒ 강현호

온 길도 아깝고 마침 일본에 와서 튀김 한 번 제대로 못 먹었구나 싶어 튀김을 추가했다. 그랬더니 이거이거 대단한 걸 준다. 반으로 쫙 쪼개면 제대로 반죽옷이 되지 않아 오징어 살이 그대로 드러나는 초보 수준의 튀김인데 김이 모락 나면서 절로 맥주 한 잔 생각나게 한다. 한 입 씹으면 육즙이 달달하다. 기술보다는 재료, 재료보다는 갓 만든 타이밍이 생명 아니겠나. 갓 만든 뜨거운 튀김보다 맛있는 게 또 있을까.

이 튀김이 정말 어마어마했던 건 나중에 한 번 더 밝혀졌다. 한나절이 지나 저녁까지 다 먹고 다 식어 빠진 튀김을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종일 먹었던 모든 음식이 생각나지 않게 맛있는 거다. 아 어쩌자는 거냐. 현지조달, 즉시 조리의 위대함이 아닐까 싶다.

밥 쟁반을 물리고 한가롭게 항구를 배회했다. (기형도의 시에서처럼) 할 일 없는 그 동네 개인양 낮게 깔린 하늘 아래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이때부터 날이 흐려지고 바람이 축축했다. 위장이 꽉 차 그리 춥지는 않았으나 유람갔던 배들도 돌아오고 먼바다에서는 하얀 파도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바람은 묵직했고 내 기분은 차분해져서 발걸음은 자꾸 느려졌다. 깨끗하고 한가로운 항구였다. 우리네 항구도 대낮에 찾아가면 이러더라 마는 매한가지로 쓸쓸하다. 새벽과 밤에 한껏 몸살을 앓았을 공간이 에너지를 다 흘려버리고 방전이 돼서 그런 걸까. 회색 하늘과 무거운 바람에 여행자의 마음이 쓸데없는 곳으로 뻗어간다. 그래도 좋다. 이 또한 여행자만의 자유이고 혜택이려니.   

도야항 작고 평온한 항구.
도야항작고 평온한 항구. ⓒ 강현호

이 곳 식당 요주의사항 몇 가지.

1. 엉뚱한 화장실에서 고생하지 말자. 식당 뒤편에 간이 화장실이 한 개 있었다. 급한 마음에 일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일본은 간이 화장실도 편리하구나. 그러고 한참 뒤에 식당 옆에 붙어 있는 안내판에 화장실은 다른 건물을 이용하라고 친절하게 써 붙은 안내문을 봤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간이 화장실 문짝만큼 크게 써 붙어 있었다. 여행지에서 보이는 안내문은 허투루 봐서는 안 된다.

2. 들고양이를 내려다보지 말자. 음식을 탐하는 고양이 2마리가 테이블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꽤나 고생한 녀석들인지 온몸에 흔적이 남아 있다. 불쌍하지만 밥 먹으면서 볼 만한 상태는 아니다.

3. 화장실이 있는 그 건물에서 뽑기를 해보자. 사실 전날 츄라우미 수족관에서 싸고 괜찮은 오키나와 기념품을 못 찾았는데 여기서 찾을 줄이야. 뽑기 한 번에 몇천 원이라 가격이 세다 싶었는데 내용물이 실하다. 잘 만든 시샤(오키나와 수호신) 2마리에 1000원이었나 2,000원인가 했다. 거기가 아니더라도 오키나와에 가면 뽑기는 더 해 보리라. 그만큼 가성비가 좋았다.

점심을 느긋하게 먹고 간 비오스에서 비만 맞고서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지의 마지막 저녁. 이날은 무조건 만찬이다. 조촐하게 보내서는 억울하다. 돈이 부족하면 카드를 써서라도 전 오키나와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저녁을 먹어주어야 한다. 이날이 아니면 언제 또 오키나와의 맛을 보겠나.

그래서 일본 가정식을 판다는 식당과 이온몰(대형마트)을 두고 옥식각신하다 결국 이온몰을 선택했다. 시간이 너무 늦은 데다 식당이 워낙 외진데 있어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을 걸을 우려했다.

아내와 같이 보무도 당당히 이온몰에 들어가 카트가 잘 밀리지 않을 빠질 만큼 그득하게 식료품을 쓸어 담았다. 우리가 생각해도 과했다. 카트에 담으면서도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우리는 배가 고팠고 비 때문에 제대로 구경 못 한 분을 풀 데가 필요했다. 초밥, 아구 돼지고기를 중심으로 정신없이 주워 담아 결제를 한 뒤 이온몰을 빠져나왔다.

여기서 신기했던 모습 한 가지. 계산원이 50대 중년 남성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그리고 이 분 너무도 차분하시다. 여행지의 남은 동전을 쓰느라 다양한 액면가의 동전을 한 주먹 내밀었는데도 당황하거나 서두르는 기색 없이 능숙한 움직임으로 계산을 마무리 지으셨다. 알고 보니 계산대 구멍에 동전을 또르르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계산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별거 아닌 듯하나 그 기술과 그 정밀함이 신기했다. 우리네 마트에서는 외국인이 그렇게 동전을 내밀었으면 어떤 반응이 터져 나왔을까? 휴...

비를 뚫고 숙소인 마하이나 웰니스 리조트에 도착하니 몸은 천근이고 마음은 만근이다. 마지막 밤이니까. 이럴 때 온천만 한 게 또 있을까. 숙소에 조성된 온천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본다. 평소에 온천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비가 오는 밤에 온천에 몸을 담그면 심신이 풀리는 게 느껴진다. 다만 고풍스럽지도 그렇다고 세련되지도 않은 온천장에 실망을 했다. 어느 쪽이든 노선을 정해서 리모델링을 해 주면 좋겠지만 다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리조트 직원에게 간곡한 부탁은 드리지 않고 속으로만 기록해 두었다. 어쨌든 번창하시라.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만찬을 차리고 술잔을 채운다. 그리고 창문을 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숙소 앞의 바다는 경치도 경치지만 기분 좋은 바람을 몰고 와준다. 비가 그쳐가는 바다에서 부는 바람은 또 그렇게 싱그럽다. 한국에서는 미세먼지 그득한 공기로 다들 마스크 쓰고 콜록거리던 때다. 이 싱싱함 가득한 깨끗한 공기를 담아가 판다면 누구라도 지갑을 열 테지. 내 직업이 아니니 더 이상 궁리는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그 느낌을 더 간직하려고 기분 좋게 술 한 잔을 더 곁들인다.

마트표 초밥은 한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달콤한 술은 어디선가 먹어본 듯한 맛이다. 아구는 머피포트에 열심히 물을 끓여 데쳐 먹었는데 아삭거리는 독특한 식감이 좋으나 어제의 구이보다는 못하다. 그래도 이 모든 것을 가족과 바람과 함께 누리고 있자니 더할 나위 없다. 그렇게 은근하게 올라오는 취기에 못 이겨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캠핑 블러그에도 개제했습니다.



#비오스#이유노미세#덴뿌라#류큐무라#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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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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