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는 사람', '아는 분' 하면 될 것을 꼭 '지인'이라 한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정말 듣기 싫다. 아주 귀에 거슬린다. 요즘엔 '아는 지인'도 많이 들린다. 이게 다 방송 때문이다.
'출산'도 마찬가지. 사람과 동물 모두의 새끼 낳는 행위를 '출산'이라 하고 사람이 애 낳는 것은 '해산'이라 한다. 좋은 말 놔두고 굳이 우리가 동물과 같은 급이 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그런데 왜 요즘에 '해산'이란 말을 안 쓰고 다들 '출산'이라고만 할까? 방송 때문이다.
일본 예능 프로그램 자막에 한자로 '출산'이라 쓰여 있으니 그걸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즉, 출산은 일본말이다. 일본 방송 베껴와 그대로 틀어대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거를 건 좀 걸러서 했으면 좋겠다.
공항에는 아예 '수하물'이라고 버젓이 써 놓았다. 지적을 하면 "그 말이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되묻는다. '수하물'이 뭔 뜻일고? 들고 다닐 수 있는 손짐? 그럼 '수화물'이지 왜 수하물? '수하물' 역시 출산과 마찬가지로 일본식 한자를 그대로 들여온 것이다. (手荷物, てにもつ) : [일본어 투] 손짐. 그들이 '데니모츠'라고 읽는 걸 그대로 들여와 우리는 한자가 쓰여 있는 대로 수하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젠 사람들이 하도 많이 쓰고 있으니 수하물과 수화물을 같이 써도 된단다.
이런 거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 딱 들어서 뭔 뜻인지 한 방에 감이 오지 않으면 다 일본어에서 온 것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너무 많다.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말 대신 조식, 중식, 석식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식당 메뉴판에도 그리 쓰여 있다. 방송이 가장 큰 범인이다. 인기 있는 연예인이 방송에서 한번 말하고 자막에 흐르고 나면 그게 곧 표준어처럼 돼 버리기 때문이다.
언어도 사회성이 있으니 변할 수 있다. 세계화 시대에 꼭 우리 것만을 고집하자는 것도 아니다. 근대문물이 일본을 통해 들어 왔으니 그때 함께 들어온 새로운 개념, 즉 '철학'과 같은 말까지 전부 다 바꾸고 고쳐 쓰자는 '억지'도 아니다. 다만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문화와 정서를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는, 잘 쓰고 있는 우리말을 죽여 가면서까지 굳이 남의 말을 써야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그런 이야기.
한글날이라는 기념일까지 들어 있는 달, 회사 아침 방송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도 외국어를 써 대기에 답답한 마음에 몇 자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