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우리들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나요?"
덴마크와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서울에 모였다. 덴마크 선생님이 질문을 받는 순서에 한 덴마크 학생이 손을 들고 이같은 질문을 던졌다.
모르텐슨 선생님은 "친구로 보지 않는다. 선생님이 학생들의 성적을 매기는 한 진짜로 친구가 되긴 힘들다"면서도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평소 친구라고 생각했던 선생님이 '친구처럼'에 그칠 뿐 진짜 친구는 아니었다는 것에 이 학생은 적잖이 실망한 듯했다.
26일 서울 성산동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2017 오마이뉴스 글로벌 행복교육포럼'에는 덴마크 코펜하겐 류슨스틴 고등학교 (Rysensteen Gymnasium) 학생들과 교사 30여명이 참석했다. 방문한 학생들에게 홈스테이를 제공하고 있는 상암고 학생들과 덴마크 교육에 관심 있는 전국 각지의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 300여명이 열심히 묻고 열심히 답했다.
멀리 '행복의 나라' 덴마크에서 온 선생님에게 함께 온 덴마크 학생들이 질문할 거리가 있냐 싶겠지만, 덴마크 학생들은 거침없이 질문을 던졌다. 세 명의 덴마크 학생들이 한 프레젠테이션 내용에 대해서도 생각이 다르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조리 있게 설명했다.
'우리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느냐'는 덴마크 학생의 질문은 앤더스 선생님이 덴마크 학생과 교사의 관계에 대해 발표하자 나왔다.
앤더스 선생님은 "모든 학생들이 저의 (성과 존칭이 아닌) 이름을 부른다. 우리는 친구 같은 관계를 갖고 있고, 물론 예의를 갖춰야겠지만, 학생들이 저를 놀릴 수도 있다. 사실 몇시간 전에 노래를 엄청 못 불러 학생들로부터 놀림을 당했다"며 "그래도 괜찮다. 이게 우리 관계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관계는 학교의 구조에도 스며들어 있다. 학생자치회장은 학교 이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하다"며 "어떤 의미에선 학생들이 내 보스이고 직장상사다. 저만 학생들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도 선생님들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앤더스 선생님은 "우리는 학생들을 또 하나의 어른으로 본다. '어린 어른'이긴 하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상호존중이 학습의 전제, 학생은 시민이다"
상암고 한 학생은 '선생님과 학생이 맺는 좋은 관계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앤더스 선생님은 "친한 관계를 유지해야하지만, 친구가 되는 건 아니다. 서로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선생님은 학생 생각을 존중해야 하는데, (학생의 의견이) 사실에 기반을 둬야 그 의견을 존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앤더스 선생님은 "세계 여러 나라의 학교들을 방문해보면, 학생들은 자기들의 맘에 들지 않으면 굉장히 쉽게 선생님을 적으로 취급하게 되는 사례를 볼 수 있다"며 "만약 선생님에게 나쁜 점이 있다면 불만을 제기해야겠지만, 덴마크의 교육시스템에선 학생들이 선생님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책임감을 갖는 걸 배운다"고 설명했다. 그는 "상호존중이 중요하다. 학생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면 '네가 잘못 생각했어'라고 분명히 얘기해야 하지만 '그게 너가 나쁜 학생이란 의미는 아니다'라는 점을 함께 주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몬 선생님은 "상호존중이 학습의 전제가 돼야 한다. 상호존중을 키우려면, 선생님은 절대로 학생을 비난해선 안 된다"며 "학생의 의견이 틀렸다면 비판을 하지만 비난은 하지 않는다. 비난과 비판의 차이점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몬 선생님은 "학생은 백성(subject)가 아니라 시민(citizen)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선생님이 학생을 지배하려고 하면 안 되고 존중을 얻어야 한다"며 "가르치는 과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이 학생을 존중한다면 상호존중이 생길 것이고 학생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대해선 다양한 견해가 나왔다. '덴마크의 학교 생활'을 주제로 발표했던 에밀리 학생은 "나에게 선생님은 친구는 아니지만, 성장을 도와주는 사람"이라며 "선생님들과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끼고, 개인적이면서도 공적인 관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선생님과 학생이 친구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졌지만 덴마크 학생들이 선생님을 얼마나 친근하게 생각하는지 확연히 드러난 자리였다.
성적을 안 매기는데 공부를 한다고?
홍성여고 2학년 학생은 '덴마크에서는 8학년(중2)부터 성적을 매긴다고 하는데, 만약 한국에서 그렇게 한다면 아예 공부를 하지 않을 것 같다'고 묻기도 했다. 앤더스 선생님은 "공부를 안 하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성적을 매기지 않아도 공부를 한다"며 "중요한 것은 동기가 어디서부터 오느냐다. 덴마크 시스템에선 '내적 동기'를 굉장히 강조하고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이 내적 동기를 가질 때 공부가 굉장히 쉬워진다"고 답했다.
'한국에선 고등학교 때의 성적이 입학 대학을 결정하고 이는 곧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느냐로 이어진다. 덴마크에서 좋은 대학교에 가는 게 사회생활에 어떤 중요성을 갖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답변은 덴마크의 복지시스템으로 이어졌다.
앤더스 선생님은 "덴마크에서도 정치외교학과나 의학대학 같은 곳에 가려면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고 이는 소득에 영향을 미친다"면서도 "덴마크는 복지사회이기 때문에 높은 세금이 평등한 소득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육시스템이 다양화 돼 있어서 대학을 가는 게 유일한 길이 아니다. 실용학교를 가도 소득이 높은 직장을 다닐 수 있다"며 "대학을 가기 위해선 성적이 좋아야 하지만, 그게 삶을 결정짓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앤더스 선생이 말한 '내적 동기'는 어떻게 했을 때 생기느냐'는 질문에 알베르디 학생은 "숙제를 안 해가면 수업이 재미가 없어진다. 수업을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숙제를 해 가게 된다"고 답했다. 조나단 학생은 "과목에 흥미가 있어서 시키지 않아도 한다"고 답했다.
앉아있던 덴마크 학생은 다른 의견을 밝혔다. "좋아서 할 때도 있지만, 해야 하기 때문에 할 때도 있고 미래에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서 해야 할 때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공부만 하느냐'는 의견도 나왔다. 다른 덴마크 학생은 "학교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가는 것도 학교를 가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이 가장 진지하게 공부해, 구글로 모든 걸 해결할 순 없어"
덴마크 학생들의 한국 방문은 마포구청이 지원한 상암고등학교와의 국제교류 차원에서 이뤄졌다. 학생들은 전체 체류일정 중 3일 동안 상암고 학생들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한국을 배웠다.
포럼 중 덴마크 학생에게 '한국 교육에서 배울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앤더스 선생님은 "가 봤던 여러 나라들 중에 가장 진지하게 공부하는 곳이 한국"이라며 "덴마크 학생들이 분석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진지하게 지식을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다. 구글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순 없다"고 답했다.
이날 행사에 김상곤 교육부총리가 영상으로 축사를 보냈다. 김 부총리는 "공교육을 혁신하고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돕고 창의융합적 역량을 기르는 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 우리 학생들이 진로 적성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걸 약속한다"며 "대한민국 교육이 행복한 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교육혁신에 마중물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영상 축사로 "행복한 교육환경 만들기는 우리 청소년들이 학교생활에서 실제 겪는 어려움을 논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청소년 여러분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덴마크 학생들과 나누게 될 대화가 더 건강하고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좋은 의견을 많이 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