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밴쿠버에서 반려견과 함께 산 지 3개월 남짓. 밴쿠버 연수 준비에 한창이던 지난 봄, 우리 가족보다 먼저 밴쿠버를 경험한 한 지인이 강아지와 함께 가겠다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밴쿠버에서는 말이야 '1순위가 어린이, 2순위가 개, 3순위가 여자, 4순위가 남자'라고 우스개처럼 말하고 다녀. 진짜 '개 천국'이야." 그리고 정말 우리 가족은 여기 밴쿠버서 '반려견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체험하고 있다. 강아지와 함께 길을 걷고 피크닉을 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고, 길 가다가 개를 만나고 건물 안에서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은 늘 일어나는 일이다.
'강아지 전용 공원'과 해변 산책로가 걸어서 5분 거리 안에 있는 우리 집 주변에서는 맑은 날 30분 정도 걷다 개를 27마리나 만난 적도 있다(개가 워낙 많이 돌아다녀서 아들과 함께 산책 도중 몇 마리를 만나는지 실제로 세어보았다). 지난 주말에는 한 온천 리조트 호텔에 강아지와 함께 묵기도 했다. 북미 지역 호텔의 상당수는 일정 액수의 추가 요금을 내면, 강아지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객실을 내어준다. 일반적으로 한 층을 몽땅 반려동물 동반 층으로 쓰기 때문에 옆 방 눈치 보지 않고 당당히 개와 함께 머무를 수 있다.
그런데도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개에 물려 사람이 죽었다'는 보도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개를 데리고 다닌다고, 반려견에게 투자를 한다고 '반려견충'으로 비난받았다는 하소연도 들리지 않는다. 밴쿠버에 사는 사람이라고 모두 개를 좋아해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만큼, 취향도 다양하고 분명 개를 싫어하는 사람도 함께 섞여 살 텐데 왜 여기서는 반려견과 그 가족, 반려견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지난 3개월간의 경험과 개를 키우면서 알아본 정보들을 바탕으로 무엇이 밴쿠버를 반려견과 사람이 함께 행복한 도시로 만들었는지를 분석해보았다.
법으로 규정된 '반려견의 존재', 공격적인 개는 입마개와 목줄 '필수'
가장 큰 이유는 '반려견의 존재'를 법에서 인정하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밴쿠버시는 'ANIMAL CONTROL BY-L0W NO.9150'에서 동물과 관련된 것들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모두 11개의 세션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 조항에서 반려견은 세션3부터 세션6까지 4세션에 걸쳐 따로 다뤄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우선 밴쿠버시에 사는 반려견은 시에 일정금액을 내고 등록을 해야 한다. 그러면 시에서는 반려견에게 고유번호를 부여하고 밴쿠버시에 등록된 반려견임을 알 수 있는 인식표(dogtag)를 각 가정에 제공한다. 등록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등록되지 않은 반려견이 문제를 일으켰을 경우 등록된 반려견의 경우보다 2배 정도 더 비싼 과태료를 내야 한다.
다음으로는 개를 통제하는 것에 대한 조항이 나온다. 먼저, 목줄을 풀어도 된다고 허가된 지역(off-leash 구역) 외의 공공장소에서는 항상 2.5m 이하의 목줄을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공격적인 개는 입마개를 착용하고 공공장소에 동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입마개를 한 개들을 많이 산책 도중 종종 만날 수 있으며, 입마개 착용은 동물을 학대하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또한, 해변가나 어린이 놀이터 주변에는 개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으며 어길 경우 법에 의해 벌금을 물어야 한다.
법 조항의 앞부분이 반려견을 통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뒷부분은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의 의무를 담고 있다. 개의 소유자는 적절한 음식과 충분한 운동, 쉴 수 있는 곳을 제공해야 하며, 마당에 묶어 두거나, 상가 등에 개를 묶어두고 혼자 놔두는 행위는 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 이어서 유기견을 보호 시설로 데려가는 방법, 보호 시설에서 개를 입양하는 방법과 비용 등을 모두 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이와 같이 사람과 개의 특성을 모두 고려한 구체적인 법 규정은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주고, 반려견과 그 가족에게는 눈치 보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개들이 '마음껏 뛰놀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공간들반려견 전문가들은 개가 공격적으로 변하거나, 많이 짖게 되는 이유 중 하나로 운동 부족에 따른 스트레스를 지적한다. 밴쿠버시는 '개의 걸을 권리'를 인정하고, 시내 곳곳에 36군데의 강아지 전용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최근 서울에 반려견 공원이 겨우 문을 열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서울의 강남 지역 정도의 면적에 해당하는 밴쿠버시 안에만 무려 36곳의 반려견 공원이 있다). 이 공원들은 반려견들이 목줄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곳으로 반려견 배설물 전용 쓰레기통, 반려견들이 마시거나 더위를 식힐 수 있는 물이 항상 비치되어 있다.
더불어 각 학교 운동장도 아이들이 학교를 떠난 후에는 반려견을 위한 공간으로 제공된다. 각 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는 개 출입을 금지하지만, 그 외의 개방 시간에는 개들의 공간으로 이용 가능하다고 명시한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이런 시설들 속에서 반려견들은 마음껏 뛰놀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으며, 반려견 가족들은 '명시'되어 있는 곳에서 떳떳하게 개와 함께 즐길 수 있다.
또한, 가족이 모두 집을 비우는 낮 시간 동안에 집에 혼자 있는 것을 힘들어하는 반려견을 위한 사설 유료 데이케어 센터 역시 곳곳에 있다. 집에 혼자 있을 때 개가 받는 스트레스를 방지하고, 불안한 개의 하울링이나 짖는 소리에 피해 보는 이웃이 없도록 이런 반려견의 주인은 출근시 데이케어 센터에 개를 맡기고 퇴근하면서 찾아오곤 한다. 데이케어 센터에서는 낮 시간 동안 산책, 가벼운 놀이, 사회성 훈련 등을 하면서 개들이 주인이 없는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보편화된 '반려견 사회성 훈련', 개와 사람이 함께 배운다 마지막으로 이곳 밴쿠버 반려견 문화의 특징은 개들을 위한 사회성 훈련이 보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번 '최시원 개와 한일관 주인 사망 사건'과 관련한 보도들을 보면, 개가 사회성 훈련만 잘 되어 있어도, 사람을 무는 행동 등을 통제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동물행동전문가들의 분석이 있었다.
밴쿠버시에서는 반려견을 입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에게 잘 맞는 반려견을 고르는 방법, 간단한 복종 훈련 방법을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반려견에게 적절한 매너를 가르치고, 사회성 훈련을 통해 공격성을 조절하고 주인을 잘 따르도록 하는 것을 입양단계에서부터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다.
또한, 각 지역별로 있는 커뮤니티 센터에서는 반려견 훈련 강좌를 개설하고 있어 반려견을 처음 키우는 가족은 저렴한 가격에 강좌를 통해 개를 올바로 길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대형 애견용품 체인점 등에서도 상시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반려견의 문제행동을 쉽게 교정할 수 있다.
이처럼 밴쿠버의 반려견 문화는 통제와 배려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있다. '반려견 천국'이라고 해서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려견의 주인은 개와 함께 여행하고 피크닉을 즐기며 생활할 수 있지만, 법에 의한 통제를 따르고, 반려견을 적절하게 훈련시켜야 할 의무를 갖는다. 반려견은 마음껏 뛰어놀 수 있고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도록 배려를 받지만, 역시 매너와 사회성 훈련을 엄격히 받는다.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개의 출입이 금지된 곳에서 방해받지 않고 야외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받는다. 이곳의 반려견 문화가 한국 실정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통제'와 '배려' 두 키워드는 반려견 문화가 이제 막 시작된 한국에도 중요한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강아지가 나중에 한국에 안 돌아간다고 하면 어쩌지?"앞으로 1년 반 후 귀국 예정인 우리 가족이 강아지를 보며 가끔 던지는 농담이다. 반려견도, 반려견의 주인도, 개를 싫어하는 이웃들도, 모두 함께 살기 좋은 반려견 문화가 한국에도 얼른 자리 잡을 수 있기를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