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학자들이 21세기 도시화의 현상을 연구할 때 어떤 것을 특징으로 뽑게 될까? 소득 대비 과도하게 상승하는 월세 혹은 집값의 특징은 빠지지 않을 것이다. 전세계 도시에서 소득 대비 월세가 지난 10여년간 상승하며, 수많은 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은 지불 가능한 수준의 주택을 공급하고, 기존 주택의 월세 상승을 막기 위한 수많은 시도를 하였다.
이러한 주거난은 지난달 23일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도 주요 이슈였다. 선거에 나선 대부분의 정당들도 주요 정책으로 지불가능한 주택(Bezahlbare Wohnung)등의 정책을 내놓았다. 2년 전 실행된 베를린의 월세제동책(Mietpreisbremse)도 독일 도시의 심화되는 주거난을 막으려던 그러한 일환 중 하나였다(관련기사:
세계가 주목한 '임대료 상한제', 왜 실패했나)
하지만 수많은 예외조항으로 인해 애초에 실효성이 없다고 알려진 월세제동책은 위헌이 될 상황에 놓여있다.
문제가 된 것은 월세 제동책에 따라 이전 세입자의 월세에 비해 과도하게 부과된 월세의 차익을 돌려받으려던 세입자의 소송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베를린 지방 법원은 지난 14일 다양한 도시의 임대인이 동일한 수준으로 월세제동책에 불공평하게 영향을 받게 되고, 이미 시장가격에 맞춰 높은 임대료를 받고 있는 임대인에 비해 그렇지 못한 임대인이 손해를 입게 된다며, 이는 독일 헌법 제1장 제3조 법률 앞에서의 평등 조항을 위반한다며 소송을 기각하였다.
그리고 지난달 19일 베를린 지방법원은 더 이상의 법정투쟁은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방헌법재판소만이 헌법 위반에 대한 법적 판결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각 소식에 부동산 및 주택회사 연방 협회(Bundesverband Freier Immobilien- und Wohnungsunternehmen) 의 회장은 월세제동책을 아예 철폐해야 한다며, 비록 베를린 지방법원의 기각이 법적 효력이 없을지라도 이는 월세제동책 철폐를 위한 신호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부동산 관계자는 월세제동책을 관료주의의 괴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번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의 총리 후보로 나선 전 EU회장 마르틴 슐츠는 이 소식에 "우리는 여전히 월세제동책이 헌법을 준수하도록 유지하고 있다"라고 선거 유세 중에 언급했다.
또한 사회민주당의 법정책가인 요하네스 페히너는 총선을 앞두고 선거에 영향을 줄만한 발표를 내린 베를린 지방법원의 행동은 관례가 아니며, 월세제동책은 헌법을 준수할 뿐만 아니라, 현재 독일 대도시의 폭발하는 월세 문제로 인해 정당한 규제라고 언급했다.
사회민주당은 지난 2013년 대연정을 이룬 기독민주당과 함께 월세제동책 도입을 추진한 정당이다.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 대연정에 금이 가기 시작하며 사회민주당과 마르틴 슐츠는 기존 월세제동책의 강화를 주장했고, 기독민주당과 앙겔라 메르켈은 신규 주택을 더 짓는 것이 중요하지 규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으로 서로 갈라섰다.
베를린의 도시개발 및 주거 상원의원인 카트린 롬프셔(Katrin Lompscher, 좌파당)는 이 결정을 따르지 않을 것이고, 이 결정은 미래의 의견 충돌 가능성만을 가질 뿐이고, 헌법 위헌에 대한 주장은 걱정스럽다며 우려를 표했다.
베를린 주정부 관계자들의 의견은 비단 새로운 것이 아니다. 베를린 시장인 미하엘 뮬러 역시 월세제동책과 같은 의미있는 법안을 강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베를린 시는 이미 9월 초에 월세 제동책의 문제점 중 일부를 보완시켜줄 새로운 법안인 <임대시작 시 임대료 제시를 통한 세 입자 보호 개선을 위한 법률 초안(Entwurf eines Gesetzes zur Verbesserung des Mieterschutzes bei Vereinbarungen über die Miethöhe bei Mietbeginn)>을 주의회에 제출했고, 같은 달 22일 통과되었다.
이제 베를린에서는 임대인이 신규 임차인에게 이전 세입자의 월세 정보를 제시할 의무가 부여된다. 이전 세입자의 월세를 신규 세입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그 이상의 금액으로 신규 세입자와 계약을 맺어왔던 월세제동책의 허점 중 하나를 보완하게 된 것이다.
월세 제동책이 위헌이라는 베를린 지방법원의 결정은 법적 효력이 없기에 제동책은 계속해서 효력을 이어나가게 된다. 또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판결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리게 된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그동안 예외조항을 활용해 월세를 올리지 못하던 임대인들과 관련 단체들 그리고 부동산 업계가 월세제동책 철폐를 외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총선 이후 사회민주당이 기독민주당과의 대연정을 이어나가지 않게 되며, 월세제동책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진 상태다.
"이미 10년이나 늦었다!"
위 대사는 베를린의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인 크로이츠베르크에서 집을 구매하려는 평범한 소득의 가정이 임대주택을 찾다 지쳐, 아예 집을 사기 위한 6개월간의 노력을 담은 다큐 <크로이츠베르크에서 집 찾기(Heimat gesucht - Wohnungsjagd in Kreuzberg)> 에서 나온 말이다.
8년전에 베를린에 이사 온 주인공은 당시 4일만에 손쉽게 꿈의 주택을 구했지만, 8년이 지나 새로운 가정을 위해 집을 구하고 있는 현재, 평범한 수준의 소득으로는 원하는 가정 규모에 적당한 수준의 주택을 사는 것은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6개월동안 깨닫게 된다. 그것은 10년 전에나 가능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베를린에서 주택은 투기 수단으로 활용될 때도 있었고, 때로는 시민에 대한 복지로 여겨졌을 때도 있었다. 현재 완전히 투기 수단이 되어버린 그리고 과도한 이윤 창출의 도구가 되어버린 주택은 베를린 주민 뿐만 아니라, 전세계 도시민들을 고통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이미 10년이나 늦었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는 지금, 주택을 투기 수단이 아니라 복지이자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식하며 기존의 제도를 보완해 나가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