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구마다 안내문이 나붙었다. 제목은 경비 인원 조정에 대한 안내. 내용은 간단하다. 2018년 최저임금이 올라 경비비가 포함된 관리비가 오른다는 것이다. 2018년 최저 시급은 7530원으로 올해 6470원보다 16.4% 오른다.
경기도 부천시 소사동 H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달 25일 경비원 관리비 인상과 절감액을 표로 만들어 아파트 입구마다 붙여 놨다. 한쪽에는 지금처럼 한 동에 두 명의 경비원, 총 18명이 근무할 경우의 관리비 인상 폭을 적어 놨다.
부천 H아파트는 1984년에 입주를 시작한 30여 년 된 아파트다. 57㎡(17평형)인 101동부터 119㎡(36평형)인 109동까지 총 9개 동에 916세대가 살고 있다. 기존 18명의 경비원 체제를 유지한다면 각 세대마다 관리비를 더 부담해야 한다. 월 관리비 상승분은 3010원(17평형)~6393원(36평형)이다. 916세대가 월 평균 4861원을 추가로 부담하는 셈이다.
대표회의는 경비원 8명을 해고하면 지금보다 관리비가 크게 절감된다고 홍보하고 있다. 17평형 세대는 월 1만1345원, 36평형은 월 2만4082원이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찬반 의견서를 호수별 우편함에 꽂았다. 주민들은 오는 14일까지 동 호수와 이름을 적고 찬성과 반대에 의사를 표시해 투표함에 넣으면 된다. 투표함은 각 동의 경비실 앞에 놓여있다. 경비원들이 해고 여부에 투표하는 주민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한다. 야간에 투표함을 경비실 안쪽에 들여다 놓는 것도 경비원의 몫이다.
"돈 몇 천 원보다 사람이 중요해"
지난달 30일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들은 대부분 "경비원 해고에 반대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15년간 이 아파트에 거주했다는 김정미씨는 "경비원들 역시 누군가의 가장"이라며 반대 이유를 들었다. 김씨는 "하루아침에 사람을 자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며 "경비원들이 할 일이 적은 것도 아니다. 분리수거부터 안전관리까지 일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월 1만 1345원을 덜 내고 경비원은 자르는 것보다 월 3010원을 더 내며 지금을 유지하는 방안을 택했다.
아파트 관리에 CCTV가 아닌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10월 이 아파트에 입주한 이아무개씨는 "매주 조카가 놀러 오는데, 아이들의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것도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는 것도 경비원"이라며 "경비원을 해고하면 아파트 한 동을 CCTV와 한 명의 경비원이 담당하는 건데, 불안하다"라고 걱정했다.
하루아침에 경비원을 해고하고, 투표함을 경비실 앞에 두는 현 상황의 잔인함을 지적하는 주민도 있다. 2년째 이곳에 거주한다는 박아무개씨는 "최저임금이 올랐다는 이유로 사람을 자르는 것도 모자라 투표함을 경비실 앞에 뒀다"라며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잔인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는 게 아무리 팍팍해도 돈 만 원과 사람 한 명을 맞바꿀 수는 없잖아요. 한 달에 많아야 5000~6000원을 더 내는 건데, 경비원들의 일이 적은 것도 아니고요. 매일 쌓이는 택배도 주차장 관리도 새벽에 아파트 순찰도 모두 경비원들이 하고 있어요. 지금도 한 아파트에 2명의 경비원이 2교대로 있어요. 전혀 많은 숫자가 아니에요. 여기서 누구를 더 줄입니까."투표는 하지 않았지만 경비원 해고 찬성에 마음이 기우는 이도 일부 있었다. 관리비 때문이다. 이 아파트에서만 16년째 살고 있다는 송아무개씨는 "얼마 전 남편이 정년퇴직해 여유가 없다"라며 운을 뗐다.
"당장 가을 낙엽을 누가 어떻게 쓸어야 하는지 겨울 준비를 어떻게 할지 막막하지만, 관리비도 부담되는 게 사실이에요. 남편이 얼마 전에 정년퇴직해서 관리비가 한 달에 만 원씩 줄어들면 한결 여유로운 건 사실이니까요. 고민이에요. 아직."시큼한 지하실, 뼈 시린 옥상에 머물러
아파트 경비원 신재식(가명)씨는 새벽 6시에 출근한다. 계약대로면 7시 출근이지만 한 시간 먼저 출근하는 게 관례화되어 있다. 신씨는 마대 걸레부터 찾는다. 지하부터 물걸레질을 한다. 이어 빗자루를 들고 떨어진 낙엽들을 치운다. 바람이 많이 불었던 지난달 29일 같은 경우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아침 8시가 다 되어간다. 바로 아파트 정문으로 향한다. 1시간 동안 경비원들끼리 외부 차량을 통제하며 주차장을 점검한다.
신씨는 오전 11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점심시간과 휴게시간을 보낸다. 식사는 대부분 아파트 지하에서 한다. 각 아파트 경비원들은 휴게시간, 새벽에 눈을 붙이거나 밥을 먹을 때, 지하실과 옥상 중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이용한다.
경비원 신씨를 따라 내려간 지하실에선 시큼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장마철에는 지하실에 물이 찰랑찰랑 찬다는 게 신씨의 설명이다. 지난 6월 걸어둔 수건은 아직도 마르지 않은 채 축축했다. 기자는 10분 이상 있으려니 어지러웠다. 천장에는 석면가루가 날렸다.
옥상이라고 상황이 다르지 않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마스크와 경량점퍼를 입어도 냉기가 느껴진다.
하루에도 몇 번 오가는 택배관리를 하고 오후에 아파트 주위를 다시 청소한다. 제 몫을 못 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동 주위를 늘 살핀다. 재활용을 하는 수, 목요일은 손이 좀 더 바쁘다. 플라스틱, 비닐, 병류 등 분리하는 상자가 나뉘어져 있지만, 다른 재활용품이 섞여 있기도 해 일일이 손으로 꺼내 다시 정리한다.
저녁을 먹고 순찰을 돈다. 외부차량이 있는지 점검하고 주민들의 차량을 살핀다. 24시간 맞교대인 신아무개씨의 휴게시간은 점심 2시간, 저녁 2시간, 새벽 6시간 등 10시간이다. 다만 새벽 휴게시간은 돌아가며 한 시간씩 순찰한다. 순찰을 준비하느라 30분 먼저 일어나고 한 시간 순찰을 돌고나면 30분은 뒤척인다. 결국 두어 시간은 제대로 쉬지 못한다. 경비원 해고 이야기가 나오는 최근에는 좀 더 몸을 바삐 움직이게 됐다. 아무래도 주민들 눈치를 살피게 된다.
"신경이 쓰이죠. 매일 보는 얼굴인데, 저 사람이 나를 해고할까 하지 않을까 마음 쓰게 되고요.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받는데, 이 나이 먹고 고정적으로 돈이 나오기 쉽지 않거든요. 경비원 일 하기 전, 일용직일 때는 일이 없으면 계속 쉬어야 했으니까요. 매년 계약을 갱신하면서 참 고마운일이다 하며 일했는데, 마음이 착잡하죠."안건이 들어왔을 뿐, 우리도 어쩌지 못해...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경비원을 자르겠다고 방침을 정한 건 아니다"라며 "동 대표 중 몇몇이 관리비 부담을 이야기하는 안건을 올려 주민투표를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경비원 해고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으면 현상유지를 할 것이고, 찬성표가 많으면 주민들의 뜻이니 8명의 경비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아파트의 경우 총 916세대의 과반인 458세대 이상이 투표해야 주민투표가 성립한다. 이 중 경비원 해고와 유지 중 한 쪽 의견이 다시 과반을 넘겨야 한다. 이번에 주민투표가 부결된다 하더라도 경비원 해고와 관련된 주민투표는 언제든 다시 열릴 수 있다.
실제로 이 아파트에선 2013년에도 경비원 해고 관련 주민투표가 열렸다. CCTV를 설치했으니 경비원을 줄이자는 동대표의 안건에 따른 것이다. 당시 투표는 주민들의 총 투표수가 과반을 넘지 않아 없던 일로 됐다.
3년 혹은 4년 주기로 경비원 해고 찬반을 묻는 안내문이 내걸린 셈이다. 한 때는 CCTV가 경비원을 대신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 이유였고, 이번엔 최저임금이 이유다. 이 아파트의 주민투표는 이달 14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