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317호, 유아무개 전 국가정보원 심리전단팀장의 변호인은 재판부에 비공개 심리를 요청했다. 재판이 끝난 뒤 "국정원 직원 신분 때문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런 것 아니겠나, 당사자가 원했다"고 답했다.
유 전 팀장은 배우 문성근씨와 김여진씨의 나체합성사진을 만든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상 명예훼손, 국정원법 위반)를 받고 있다(관련 기사:
'나체 합성사진' 만든 국정원 직원, 비공개 재판 요청).
법원조직법 57조는 "심리는 국가의 안전보장, 안녕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헌법에 따라 재판을 공개적으로 하도록 정했다. 국정원 직원이 정치성향을 이유로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한 일은 비공개 심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공수사 등 은밀하게 진행해야 하는 정당한 업무 활동으로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유 전 팀장은 단지 '국정원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비공개 재판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국정원 직원들의 태도는 똑같았다. 그들은 매번 현직 신분을 근거로 비공개 재판을 요구했고, 가림막 뒤에 몸을 숨겼다.
2014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 재판 당시 김보현 전 국정원 대공수사국 과장 등은 국정원 신분과 국가 안보를 들어 비공개 재판을 주장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개인정보 유출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채아무개군의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빼돌린 국정원 직원 송아무개씨도 현직임을 방패막이로 내세웠다. 인터넷에서 필명 '좌익효수'로 당시 야당 대선후보와 정치인들을 비방했던 유아무개씨 또한 국정원 직원이므로 얼굴과 신분을 숨겨달라고 요청했다.
"공개재판,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중요"
결국, 재판부는 공개재판을 원칙으로 하되 국정원 직원으로서 신분 노출을 하지 말아야 하는 점을 감안, 법정에 매번 가림막을 설치해줬다. '좌익효수'의 경우, 피고인의 신분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은 비공개로 진행해주기도 했다. 법원 관계자는 "아직 현직에 있고,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정당성이 있다고 보는 경우엔 국정원 업무 특성상 비공개로 해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얼굴을 가린 채 재판을 받은 국정원 직원들의 행위는 적법한 업무라 보기 어렵다. 국가 안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하기도 힘들다. 더군다나 그때마다 국정원은 직원들의 개인적 일탈로 치부해왔다. 그런데도 피고인이 된 국정원 직원들은 현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쉽게 비공개 심리를 요청하고, 가림막 뒤에 숨는 것은 아닐까?
유우성씨의 변호인단이었던 김용민 변호사는 "범죄행위를 얘기하는 재판에서 비밀유지 등과 큰 상관이 없음에도 국정원이 비공개를 자꾸 요구하는 건 언론으로부터 감시받지 않는 상태에서 편안한 분위기로 재판을 받겠다는 것"이라며 "잘못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다른 피고인들은 다 공개하면서 (국정원 직원들만) 비공개해줄 이유가 없다"며 "그렇게 따지면 국정원을 관리·감독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비공개 재판을 해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또한, 국정원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비공개 재판을 허용하거나 신변을 보호해주는 것은 헌법이 정한 공개재판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따른다. 특히 국민의 알 권리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변호사는 "공개재판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라며 "사법권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았으면 재판을 공개해서 감시받고 통제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