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배명고등학교에는 2개의 야구팀이 있다. 박철순, 김동주 등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들을 배출한 배명고등학교 야구부가 있고, 학업에 열중하면서 취미로 야구도 즐기는 학생들이 모인 '하늘로쳐'라는 학교 야구동아리 팀이 있다.
비록 선수는 아니지만 열정만큼은 프로선수에 못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열심히 훈련을 한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도 모자라 아침 일찍 등교해 1시간 정도 훈련할 정도다.
하지만 공이 많지않은 데다가 연식공이라 실밥이 자주 터지고, 글러브와 같은 장비도 노후화 되거나 찢어진 상태라 제대로 된 훈련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동아리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적어 경기를 뛰면 딱 9명 맞추기도 쉽지 않은 상태였다.
이로 인해 성적이 좋지 않았던 작년부터 동아리 내에서 조만간 동아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시작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었다.
이 해체 위기의 동아리에 엄청난 구세주가 등장했다. 바로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이만수 감독이 배명고등학교를 찾은 것이다. KBS1 <우리들의 공교시 시즌2>에서 전국 여러 야구동아리의 사연 중 배명고등학교의 사연이 선정돼 무너져 가는 이 동아리를 일으켜 세울 감독으로 이만수 감독이 오게된 것이다.
이만수 감독이 동아리의 감독을 맡은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야구공 선물이었다. 전쟁에서 제대로 된 총 없이는 백전 백패이듯 야구에서도 제대로 된 장비 없이는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만수 감독 부임 효과는 상당했다. 부임을 하며 한번 훈련을 진행했을 뿐인데 지역 내 최대 라이벌로 최근 몇 년 동안 이기지 못한 동북고와의 연습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것이다.
이날 가까이서 본 이만수 감독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연습경기임에도 불구하고 경기 내내 선수들을 독려하면서도 분석하고 메모하는 모습은 프로시절 이만수 감독을 보는 듯 했다.
이만수 감독은 이후 성인 사회인 야구팀, 배명중학교 엘리트야구부 등 강팀들과 연습경기를 치르며 선수 파악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팀은 연이어 패배했고 선수들은 상심한 모습을 보였다.
이만수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에게 야구를 통해 인생을 배워갈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선수파악만큼이나 학생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패배 속에서 상심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 시련을 이겨내는 방법을 야구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선수들은 이만수 감독의 마음을 알았는지 이후 승승장구했다. 성남고등학교와의 예선 첫 경기를 2:1로 승리로 장식하며 기세를 잡은 배명고는 대원고등학교를 9:1, 서울고등학교와 삼성고등학교를 각각 10:0, 13:1로 이겼다. 라이벌인 동북고등학교만 잡으면 3년만에 본선진출을 확정 지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최근 3년간 동북고등학교와의 상대전적은 3전 1무 2패. 특히나 2패는 모두 콜드게임으로 패하면서 라이벌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전적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지역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동북고등학교에게 6점을 내주었지만 이만수 감독이 가르침으로 길러진 인내심으로 볼을 잘 골라내며 밀어내기 볼넷으로 역전에 성공하며 5전 전승으로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야말로 기적의 순간이었다.
이만수 감독은 본선진출에 만족하지 않고 서울시 학교스포츠클럽리그 우승을 바라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선수들 역시 그러했다. 이만수 감독의 훈련을 묵묵히 수행했고 실력은 나날이 늘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서울시 최고의 학교스포츠클럽팀을 가리는 본선 경기에서 지난해 준우승팀 장충고등학교를 7:2로꺾고 결승에 진출했고, 구일고등학교와의 결승전에서 14:2로 크게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만수 감독을 믿고 따라준 선수들의 땀방울의 결실이기도 했지만 이만수 감독의 노력과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했다.
촬영을 진행할 때 뿐만 아니라 촬영이 없는 아침 훈련이나 토요일 훈련을 지도하기 위해 인천에서 잠실까지의 먼 거리를 오가는 이만수 감독의 열정이 이 기적같은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 학생들이 더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었다면 하기 힘든 일이다.
이만수 감독의 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며칠 전 방문한 배명고등학교 운동장은 야구하는 학생들로 활기가 가득했다. 이만수 감독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스토리를 듣고 새로운 동아리 부원으로 들어오려는 학생들이었다. 해체위기설까지 돌았던 동아리가 1년도 채 되지 않아 가장 인기있는 동아리가 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이만수 감독이 배명고등학교 야구부에 타격 연습실을 기증하면서 동아리 뿐 아니라 야구부의 훈련환경도 개선됐다.
이만수 감독은 서울시 교육감배 학교스포츠클럽리그를 끝으로 배명고등학교를 떠났지만 그의 흔적은 학교 안 곳곳에 남아 학생들 마음 속에 평생 잊지 못할 경험으로 간직돼 있다.
덧붙이는 글 | 저는 지난해 배명고등학교 학교스포츠클럽팀의 주장이자 동아리의 부장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훈련을 위해 훈련법을 연구하고 공부했지만 열악한 환경 속 연습경기에서 23:1 승리를 제외하고는 매 경기가 어려웠고 조기에 예선탈락을 확정짓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이만수 감독님이 오시면서 후배들이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제가 해내지 못한 서울시 대회 우승까지 이끌어 주셨습니다. 가끔식 학교에 들러 바라본 이만수 감독님의 모습이 인생 선배로서 참 존경스러웠고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이 글을 통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