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는 몸동작 그 이상의 것이다. 몸동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또 우리가 볼 수 없는 어떤 현상에 요가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 우리가 호흡을 자연스럽게 하면서 생각과 의지를 멈출 때, 또 별다른 노력이나 꾸밈 없이, 소음 속에서 고요함을, 소요에서 평정함을, 무질서에서 조화를, 한 점 공간에서 우주를 느낄 때, 비로소 요가의 진정한 기능과 풍부한 가치를 깨닫는다. (6쪽)
몸짓이란 흐름입니다. 흐르지 않으면 몸짓이라 하지 않습니다. 손가락을 까딱이든 눈썹을 치켜뜨든, 어떠한 몸짓이든 흐르기 마련입니다. 몸을 움직일 적에는 늘 흐름입니다. 어떤 이는 좀 뻣뻣해 보일 수 있고, 누구는 대단히 부드러울 수 있어요. 똑같이 물구나무서기를 할 적에 한 사람은 쭈뼛거리면서 넘어질까 싶지만, 다른 한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하늘로 발을 뻗고는 팔을 통통 튀길 수 있어요.
그러나 뻣뻣하기에 어설프지는 않습니다. 매끄럽기에 훌륭하지는 않아요. 저마다 다른 몸을 드러낼 뿐이고, 저마다 다른 삶을 걸어왔구나 하고 나타낼 뿐입니다. 이런 흐름을 엿볼 수 있다면, 사진을 놓고서 좋은 사진이나 나쁜 사진을 가릴 수 없는 줄 알아챌 만해요.
이 사진은 그저 이러한 사진이요, 저 사진은 마냥 저러한 사진입니다. 더 뛰어난 사진이란 없이, 그때그때 우리 삶을 보여줍니다. 더 아름답거나 놀라운 사진이란 없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면서 생각을 키우느냐를 담아냅니다.
영원은 네 안에 있다목으로, 옆구리로 조여 오는 것을 느끼면서왜 머리로 만들어 내려고 하고왜 멀리에서 끌어오려 하는가바로 가까이에 있는데 (15쪽)사진책 <요가, 하늘가에서>(눈빛 펴냄)는 요가하고 사진이 만나는 자리를 보여줍니다. 요가란 몸짓 너머에 있다고 한다면, 사진이란 종이에 얹은 그림 너머에 있다는 대목을 살짝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생각을 몸짓 하나로 드러내는 요가이고, 우리 생각을 그림처럼 하나로 담아애는 사진입니다. 모든 길이 우리 마음에 있다고 하듯, 모든 길을 사진 하나에 머물러 흐르도록 이끌 수 있어요. 먼 곳에 있는 멋진 모습을 찾으려 할 까닭이 없이, 우리 곁 어디에서나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멋지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느껴서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요.
다시 말해서 '좋은 곳'으로 사진을 찍으러 갈 일이란 없습니다. 우리 보금자리나 일터가 바로 '나 스스로 사진을 가장 즐겁게 찍을 만한 자리'입니다. '좋은 모델'을 찾거나 불러야 할 일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늘 마주하는 사람이나 논밭이나 건물이나 집이나 이웃이나 풀벌레나 새나 물고기나 바람이나 구름이나 별이 '나 스스로 가장 즐거이 담을 만한 모습(모델)'이에요.
바람이 기분 좋게 바순 연주를 들려주는지붕 낮은 동네를 보호한다 (76쪽)그림자밟기 하는 소녀처럼 논다한 줄기 햇빛 사이로 피터 팬을 출현시킨다 (126쪽)요가를 하는 마틴 프로스트 님은 어디에서나 요가를 합니다. 마실길에서든 마을에서든, 저잣거리에서든 복닥거리는 도시 한복판이든 가릴 일이란 없습니다. 어디에나 바람이 흐르고, 어디에나 햇볕이 드리웁니다. 어디에나 사람이 있고, 어디에나 흙이랑 풀이랑 나무가 있어요.
남들한테서 '피터 팬'을 찾지 않습니다. 스스로 피터 팬이 됩니다. 남들이 하늘을 눈부시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지 않고, 스스로 훌쩍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꾸고 즐거운 몸짓을 펼칩니다.
곧 내 사진을 내가 바라봅니다. 내 사진을 내가 찍지요. 훌륭하거나 멋스럽거나 이름이 높은 남(다른 사진가)은 그만 쳐다보고, 스스로 걸어가는 길을 가만히 되짚으면서, 내 삶자리에서 내 삶을 담아내어 기쁨을 찾는 사진을 찍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한테 보여주려고 찍는 사진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을 가꾸고 삶을 지으며 사랑을 꽃피우는 사진을 찍는다고 할 수 있어요.
의자에 서서 앉는다바람에 마르는하얀 천이된다 (141쪽)멍청한 호박 덩어리가 되어도 좋고스타일이 제멋대로라도 좋다 (222쪽)사진책 <요가, 하늘가에서>는 대단한 몸짓이나 놀라운 그림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단하거나 놀라운 몸짓·그림이란 바로 우리 스스로 언제나 짓거든요. 아기를 어르는 어머니 얼굴에서 대단한 그림이 피어납니다.
마늘쫑 꾸러미나 파 한 묶음을 파는 저잣거리 아지매 얼굴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자라납니다. 밥을 짓는 어버이 손길에서,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들 손길에서, 전철길에 책을 읽는 눈길에서, 일을 마치고 살짝 눈을 부치며 쉬는 삶길에서, 다 다르면서 저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즐겁게 걸으면 즐거운 나들이입니다. 짜증을 내거나 한숨을 폭폭 쉬면 짜증스럽거나 귀찮은 나들이예요. 웃고 노래하는 몸짓으로 사진기를 손에 쥔다면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 웃지 않고 노래하지 않는 몸짓으로 사진기를 손에 쥔다면 어떤 사진이 나올까요?
더 좋거나 나쁜 사진이 없듯, 더 좋거나 나쁜 장비도 없습니다. 더 좋거나 나쁜 삶마저 없어요. 가만히 하늘가를 바라봅니다. 저 먼 하늘가는 이곳에서 보기에 멀 뿐, 저 먼 곳에 있는 누구는 이쪽을 바라보며 먼 하늘가라고 느낄 만합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걸음걸이와 몸짓과 손짓으로 하루를 짓습니다. 하루를 짓는 길에 이야기가 흐르고, 이 이야기를 고이 건사하여 글도 그림도 사진도 마음껏 가꿉니다.
덧붙이는 글 | <요가, 하늘가에서>(다나 레이몽 카펠리앙 사진 / 마틴 프로스트 요가·글 / 눈빛 펴냄 / 2015.10.26. / 4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