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추워진 날씨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포항시민들, 시험 하루 전날 수능이 연기되면서 혼란을 겪을 수험생들, 흥해 실내체육관을 가득 채운 이재민들을 보면서 참으로 걱정이 되었습니다. TV 화면에 비치는 어지러운 광경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 더욱 가슴 아팠습니다. 무엇보다 한반도가 지진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에 국민들 염려가 큽니다. 지금은 국민의 안전과 피해 복구가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온 국민이 한마음 되어 하루속히 이 재난을 극복하고 포항시민들이 일상으로 되돌아가게 되길 기원합니다."전직 대통령께서 너무 바쁘시다. 서울 구치소 503호에 수감된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판을 받느라 바쁘지만, 그에 못지않게 바쁜 분이 바로 'MB'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그가 17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또' 발언을 남겼다. 지난 13일 바레인 현지에서 남긴 글에 이어 14일, 17일까지 일주일 동안 총 세 번째다.
MB가 이러한 '소셜미디어 정치', '페북 정치'에 열심인 적이 또 있었을까. 페이스북 글만 봐도 그렇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를 방문했던 지난 7월에 3번,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질문이 떠오르고 국정원 개혁위 활동이 전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던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말에 올린 글이 고작이었다. 한 달에 한두 번 근황을 전하던 MB가 이번 주 들어 꽤 부지런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지진 피해를 본 포항 주민들을 위로하겠다고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더군다나, 본인도 밝혔듯 포항은 MB 집권 당시 '영포(경복 영일, 포항) 라인', '영포회'를 회자시켰던 고향이자 정치적 기반 아니었나.
그러나, 이러한 MB의 위로는 진위를 떠나 정치적 제스처라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MB가 검찰 포토라인에 언제 설 것인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지금 그가 아무리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책임을 다하려고 해도 그러한 몸부림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국민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17일 MB가 남긴 페이스북 글에 달린 뜨거운 호응(?)이 이를 보여준다.
속 보이는 MB의 '페북 정치'
"이명박 전 대통령의 통 큰 기부를 기대합니다. 고향 마을이 지진으로 이주민이 발생하고 집이 다 부서져서 수백 억 원의 피해가 있다는데 한방에 복구할 수 있는 천억 원 정도의 현금을 던질 용기가 없는지.""대한민국을 참 많이 염려하시는군요. 그런데 그렇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인이 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대통령님의 따뜻한 말씀이 피해를 본 포항시민들과 예기치 못한 일격을 맞은 수험생들의 마음에 큰 위로가 될 겁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국민을 위해 다스가 누구건지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18일 오전까지 MB의 저 페이스북 글에는 2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MB가 언급한 대로, 그의 고향인 포항에서 발생한 강진 덕분에 수능까지 연기되면서 전 국민적 관심이 포항에 집중됐기 때문이리라. 그중 한 댓글은 팩트 논쟁까지 이어지며 잔잔한(?) 논란이 됐다.
"가카(각하)께서 윤허하시고 널리 장려하신 필로티 공법 덕에 포항의 수많은 건물이 1층에 덩그러니 기둥만 남아 쩍쩍 갈라지고 휘청거리고 더 이상 사람 살 곳이 못 되게 되었습니다. 하해와 같은 가카의 은덕으로 그것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공법인지를 전 국민 널리 알게 되었으니 어찌 가카를 칭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안전한 논현동에서 티브비로 구경만 하지 마시고 어서 속히 포항으로 달려가 피해를 본 포항시민들 한 분 한 분께 엎드려 사과하십시오. 혹시 압니까 나중에 가카가 큰집에 들어가시게 되면 가카의 은혜를 기억하는 포항시민들 중 몇 분이 사식이라도 넣어주실지."이번 포항 지진으로 인해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필로티 공법'을 언급한 이 댓글은 아마도 '건설'로 흥하고 4대강 사업을 강행한 MB의 이미지와 과거 치적(?)이 불러온 오해에 가까울 것이다.
이번 포항 지진의 피해 중 유난히 필로티 구조의 건물들의 피해가 컸고, 그 필로티 공법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가 커진 것이다. <한국일보> 이충재 수석논설위원은 지난 16일 <필로티는 죄가 없다>란 칼럼에서 '필로티 건물'에 대해 이렇게 갈무리했다.
"필로티 설계가 국내에서 처음 적용된 곳은 1967년 서울 한남동의 힐탑아파트다. (중략) 2002년 주택의 주차기준이 대폭 강화된 데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1층을 기피하는 소비자 기호에도 맞아 원룸과 다세대주택의 대표적 형태로 자리 잡았다. (중략)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기둥이 거의 주저앉은 건물 사진이 퍼지면서 필로티 구조가 손가락질받고 있다. (중략) 지진이 발생할 경우 수평으로 가해지는 압력까지 더해져 기둥 상부에 균열이 가고 건물이 무너질 수 있어 지진에 약한 설계 방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필로티 설계가 아닌 법의 허점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2015년부터 3층 이상 모든 건축물에 대해 내진 설계가 의무화됐다. 필로티 건물도 3층 이상이면 당연히 적용 대상이지만 소급이 안돼 현재 80% 정도가 내진 설계가 안돼 있다. (중략) 더 심각한 것은 이미 지어진 건물에 대해선 구조와 자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내진 성능 보강을 위한 비용과 기술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기존에 만들어진 필로티 건물 실태 파악과 내진 보강작업을 서둘러 입주자들의 불안을 덜어주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그래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
MB가 급작스럽게 '페북 정치'에 나섰고,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애꿎은 필로티 공법까지 덩달아 'MB의 부산물' 아닌지 의심하는 시선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08년 MB 집권 이후 필로티 건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팩트'는 아직 입증된 바 없다.
설사 그렇다 해도 이번 지진과 필로티 건물을 연관 지어 MB에게 피해의 책임을 직접적으로 물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건 마치 이번 포항 지진이 "문재인 정부에게 하늘이 내린 준엄한 경고"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류여해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의 논리랑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진짜 문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페북 정치'가 가리키는 바일 것이다. MB 국정원과 군의 댓글 공작과 블랙리스트, 다스 실소유주 논란 등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의혹과 그 의혹이 실제임을 입증하는 증거와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정치보복" 운운하는 MB의 태도에 분노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의혹 앞에서 MB는 이번 주 내내 "외교안보 위기", "경제 발전" 운운하며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에 급급했다. 집권 시기에 벌어진 불법과 위법, 부정 등에 대해 단 한 번의 사과조차 없었다. MB 측근들은 정치보복이란 논리로 일관하며 고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정부'를 지속적으로 소환하며 겁박하는 듯한 모습이다.
누가 봐도 정치적 압박이요, 국면 전환용 카드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바레인을 다녀온 MB가 "정치 보복"을 언급하고, 외교안보와 경제, 지진 피해를 걱정하는 사이 'MB맨'들은 적극적으로 국면전환용 언론플레이를 시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는 사이, 다스의 실소유주 의혹과 관련한 중요한 증언이 또 나왔다. JTBC <뉴스룸>이 16일 다스 비자금 의혹에 대해 보도한 데 이어 17일 채동영 다스 전 경리팀장의 입을 빌려 "다스의 실소유주는 MB"라는 폭로를 내보낸 것이다. 잇따른 MB의 '페북 정치'가 진정성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오늘이라도 이러한 폭로에 납득할 만한 반박 증거를 내놓는 것이 최우선일 것이다.
최근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가훈이 '정직'이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회자된 바 있다. MB와 정직, 미안하지만 블랙코미디 영화의 소재에나 어울릴 법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집안의 명예를 걸고서라도, 가훈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부디 오늘부터라도 MB가 정직해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는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