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는 '우리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 등 우리 해산물을 먹고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자'는 취지로 매달 '어식백세'를 선정해오고 있다. 11월의 어식백세는 대표적인 서민 생선인 고등어와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 탕으로 해먹기 더욱 좋은 홍합이다.
고등어에는 노화방지나 성인병예방에 좋은 EPA와 두뇌개발과 치매예방에 좋다는 DHA 등 등푸른생선들이 가지고 있는 우수한 성분들을 비롯하여 셀레늄 등, 우리 몸에 좋은 성분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바다의 보리'란 별명까지 붙었는데, 이즈음 고등어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월동에 들어가기 전에 지방을 비축하는 고등어의 성질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이 코앞인 이즈음 우리 몸에 좋은 지방 함량이 가장 많고, 살점도 많아 월등하게 맛있다고 한다.
대개 고등어는 소금에 절이거나 뿌려가며 구워 먹거나, 무 등과 조려 먹는다. 무나 묵은 김치, 시래기 혹은 우거지 등과 조려먹는 고등어무조림 등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자주 해주던 음식이라 주부가 된 이후 즐겨 해먹고 있다.
밭에서 갓 뽑은 무를 굵게 썰어 함께 조리는 이즈음의 고등어무조림은 특히 더 맛있다. 책을 읽기 전엔 이즈음의 고등어무조림이 유별나게 맛있는 이유가 맛있는 가을무 덕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무 만큼이나 좋아하는 시래기인데도 이즈음엔 무만 넣어 해먹곤 했다. 그런데 고등어 자체가 가장 맛있는 때라니 시래기도 듬뿍 곁들여 해먹어도 역시나 맛있을 것 같아 군침이 당긴다.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서해문집 펴냄)는 11월의 어식백세인 고등어나 홍합처럼 우리가 생선 또는 해산물, 즉 식재료로 주로 먹는 바닷물고기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여러 문헌에서 공통적으로, 홍합이 보기에는 흉하고 부끄럽게 생겼어도 우리 몸을 좋게 하는 건강식품 내지 치료 약품으로서 으뜸이 된다고 극찬했다. 간신(간과 콩팥)을 보하고, 정기와 혈기를 더해주며, 허약과 피로에 의한 어지럼증을 다스린다. 식은땀이 많이 날 때, 양위(성기가 작아지거나 양기가 부족해지는 증상)가 왔을 때, 또는 원인 불명의 요통이 장시간 계속될 때 이 담채(주: 약재로서의 홍합 명칭)가 가잠 좋은 명약이 된다. 옛날 어른들은 특히 토혈, 봉루(월경주기와 무관하게 출혈이 일어나는 병증)에는 오직 이 홍합뿐 다른 약이 없을 정도라고 그 효능을 이야기했다. 그런가하면 백발이 오발, 즉 검은 머리가 된다고 했다. 특히 모발에 윤기가 없고 탈모 현상이 올 때는 더욱 효과가 있다. 홍합의 특성으로 남자에게는 신장을 튼튼하게 하고 여자에게는 산후의 모든 질병을 다스리는 약이 되었던 것이다. 성전환이 가능한 홍합은 남녀 모두에게 좋은 약이 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었다.'(294~295쪽)옛사람들의 기록으로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홍합은 우리 몸에 좋은 성분들이 많다고 한다. 콜레스테롤이 많아 뼈 건강에도 좋고, 셀레늄, 비타민A 등 항산화 작용을 하는 영양소가 풍부해 노화 방지에 좋고, 항암효과도 있다고 한다. 더욱 좋은 것은 나트륨을 배출하게 하는 칼륨도 많다는 것. 염분을 많이 먹는 우리 식단의 문제점을 해소하는데도 좋은 해산물인 것이다.
바를 것이 그리 흔하지 않던 옛날 사람들이, 특히 육지 사람들에 비해 물자가 귀했던 섬사람들이 홍합을 먹는 것으로 피부를 관리할 정도로 피부에도 좋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피부는 여성의 속살이라고 한다. 즉, 여성의 성적 매력을 더하는데도 좋은 해산물인 것. 이런 이유 때문에 동해 부인이란 별칭까지 붙었다. 그야말로 두루두루 우리에게 유익한 존재인 것이다.
그동안 홍합은 식재료로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약재로도 많이 쓰인다니, 게다가 남녀와 연령을 불구하고 한번 시작되면 그 치료가 요원해 많은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된 탈모에도 도움 된다니 새삼 반갑게 와 닿고 있다.
홍합이 우리나라에서는 포장마차 등에서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값싸고 흔한 해산물이지만,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에서는 고급 요리에나 쓰일 정도로 귀한 해산물이란다. 홍합은 대개 뜨끈한 국물로 먹는데, 굴밥처럼 홍합살과 무채를 넣어 밥을 지은 후 양념장으로 비벼 먹어도 맛있다. 참고로 홍합살이 적황색이면 암컷, 유백색이면 수컷인데, 암컷이 훨씬 맛있다.
'제주에는 제주어로 잠녀라 부르는 해녀만 있었던 게 아니다. 해남도 있었다. 잠수장비를 착용하고도 물속에 들어가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옛날 맨몸으로 바닷속에서 전복을 캐는 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내놓는 작업이었다. 오죽하면 물질을 가리켜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고 했을까. 왕실과 그 왕실 친인척 일가들의 전복 진상 요구가 빗발치자 수탈에 가까운 가혹한 공출 요구를 견디지 못한 해남들이 제주를 탈출하기 시작했다.전복을 딸 남자가 부족하자 미역을 따던 해녀들까지 전복 캐는 일에 동원되었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1629년부터 무려 200년간 제주사람들에게 출도 금지령이 내려졌다. 그야말로 울타리 없는 감옥! 영조 때 쓰인 <잠녀설>에 따르면, 당시 전복을 제때에 진상하지 않으면 관아에 붙들려 가 매 맞는 것은 물론이고 심한 경우 부모까지 붙들려 고초를 당했다고 한다. 진상품 부역이 오죽 고통스러웠으면 지금도 억지를 쓰는 무개념 인간을 '진상'이라고 부르겠나. 전복이 뭐라꼬!'(51쪽)바닷속 생물들은 인류 초기부터 함께 해온 중요하며 친숙한 먹거리이다. 먹을거리에서 나아가 질병을 다스리는 약재로도 이미 오래전부터 활용되고 있다. 일부 조개껍데기가 화폐로 쓰이거나 장신구로 쓰일 정도로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존재다. 우리와 밀접한 관계로 오래 함께 해온 만큼 관련 이야기들도 많을 것임은 당연하다.
그런데 바닷속 생물들의 속속은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일부 사실들이나 추측들이 재생산되곤 하는 정도로 알려진 경우가 많다. 관련 출판물들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책은 내용에 앞서 반갑기도 하다.
저자 황선홍은 30여 년 간 우리 바다 곳곳을 누비며 우리 바닷물고기를 연구해온 토종과학자이자 물고기 박사라고 한다. 앞서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2013년)를 쓰기도 했는데, 출간 당시 '대한민국 바닷물고기에 대한 첫 보고서'란 설명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고 한다.
이 책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는 그 두 번째. 워낙 친숙하게 먹는 것들임에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아 잘 모르고 있는 생선 또는 해산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아 흥미로운데, 현장 경험과 전문적인 지식을 녹여 들려줘 생생하다. 그런데 해산물의 유래나 생태에 대한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전복 관련 인용처럼 관련된 역사나 문화, 풍속, 섬 이야기 등은 물론 맛있게 먹는 방법 등까지, 다양한 읽을거리들을 풍성하게 풀어 놓았다.
다음은 책에서 읽은, 참 재미있는 사실들. ▲참치 살은 왜 붉을까? ▲피난 가 도루묵을 맛본 임금은 선조가 아니다? ▲멍게가 표준어인 우렁쉥이보다 더 널린 사연은? ▲몸값 비싼 다금바리는 우리가 찾던 그 다금바리가 아니다? ▲<자산어보>처럼 우리나라 해산물을 기록한 책이나 문헌들은? ▲가리비는 날아서 이동한다? ▲정유회사 쉘(Shell)이 심벌을 조개껍데기로 한 이유는? ▲'돔'자가 붙었다고 다 도미는 아니다? ▲13억 중국인들이 해삼과 지독한 사랑에 빠진 진짜 이유는? ▲모양이 비슷한 전복과 오분자기 그 구별법은? ▲우리는 언제부터 다랑어를 잡기 시작했으며, 어쩌다가 다랑어 대신 참치가 됐을까? ▲전복 암컷과 수컷은 어떻게 구분할까? ▲멍게가 특히 여름에 맛있는 이유는?
이중 몇 가지만이라도 궁금한 사람들에게 명쾌한 답을 들려줄 것이다. 참, 이 저자의 글은 지글지글 잘 구워진 석쇠 위 삼치구이나, 감자를 큼지막하게 썰어 함께 조린 매콤한 갈치조림처럼 맛깔스럽고, 그에 곁들이는 막걸리처럼 걸쭉하며 푸근하게 기억될 것 같다. 그런 글로 맛있게 먹는 방법들까지 다분하게 들려준다. 침샘과 지적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하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황선도) | 서해문집 | 2017-04-25 l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