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국가 차원의 군트라우마센터를 만들자는 의미로 군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동시에 연재되는 다음 스토리펀딩(바로가기)에서 국가의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있는 '군피해치유센터 함께'를 후원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말
지난 6일 밤, 전화가 울렸다.
"기자님,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요."이번 <군대·죽음·상처-트라우마센터 만들자> 기획 5화의 주인공 고 김준엽 하사의 엄마였다(관련 기사 :
아들 시신에 3년 면회 간 엄마 "내가 가난해서 아들이 죽었다고요?"). 수화기 너머의 들뜬 목소리.
"국방부에서 심사가 있을 거예요. 아들이 순직으로 인정받을 것 같아요."지난 10일, 엄마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국방부로 향했다. 이날 국방부는 1787일 만에 아들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했다.
그동안 국방부는 아들의 자살 원인을 "원만하지 못한 가정환경"으로 판단하고 순직 처리를 거부해왔다. 이에 엄마는 '내가 아들을 죽인 건가'라는 생각에 찢기는 가슴을 겨우 붙들며 살아왔다. 이제는 그 죄책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조금씩이라도...
기획 4화의 이민욱 일병(가명)의 엄마에게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관련 기사 :
"씨X 돌았냐? 이거 먹어" 선임이 들이민 매미 한 마리).
군에서 가혹 행위를 당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얻고 전역한 이 일병은 애초 국가보훈처로부터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받았었다. 이로 인해 한 달에 82만 6000원씩 지원금을 받게 됐는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던 가족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구청이 기존 받아오던 기초생계급여에서 82만 6000원을 제외한 금액만 지급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구청은 아들이 받게 된 보상금을 수익이 생긴 것으로 보고 기초생계급여를 줄였다. 그게 규정이라지만 엄마가 이로 인해 받은 상처는 아들이 병을 얻었을 때만큼이나 컸다.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일병 기사가 나간 다음 날(지난 10월 13일), 국가보훈처는 '생활 수준에 따른 지원에 관한 기준 고시'를 개정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대상으로 '국가유공자 등 예우에 관한 법률'에 나온 '생활조정수당'의 벽을 사실상 없앤 것이다. 이로써 엄마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군 피해자들이 구청에서 기초생계급여를 깎아도 일정 부분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생겼다.
개정된 고시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추가됐고, 국가보훈처는 생활조정수당이 기초생계급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거 수급자로 선정된 사람에 대해서는 가구원 수 및 급여의 종류(또는 수급자 구분)가 공적 자료에 의거 확인될 경우 생활수준 조사를 생략하고 생활조정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 - 국가보훈처, '생활 수준에 따른 지원에 관한 기준 고시'"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선정하기 위한 소득을 산정할 때 생활조정수당은 소득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생활조정수당을 지급받는 사유만으로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 국가보훈처가 군 피해자 238명에게 보낸 안내문엄마는 "물론 전액 모두 보상받는 건 아니지만 저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라며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변화하고 있다는 거니까"라고 말했다.
뜻밖의 연락
기획 3화의 고 김대웅 일병(가명)의 엄마는 힘든 싸움 속에서 조금은 힘을 얻게 됐다(관련 기사 :
거수경례한 채 기찻길에 선 아들, 엄마는 둘째를 또 군에 보내야 한다).
부대 내 잦은 질책과 미흡한 대처로 휴가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 일병. 국방부에서는 아들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했으나, 국가보훈처는 그를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부대 환경이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까지 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과 함께 가정환경, 중학교 때 받은 정신과 상담 내역 등을 내밀며 죽음을 개인 탓으로 돌렸다.
엄마는 지금 이를 두고 재판을 진행 중이다. 1, 2심 모두 국가보훈처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엄마는 아들의 기사가 나간 후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아들은 철도에서 생을 마감할 정도로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아들이 활동하던 철도동호회 동료 A씨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특히 A씨는 아들이 사망할 당시 같은 사단에 근무했었고, 사망 후 사단 차원에서 마련된 '힐링캠프(이른바 관심병사를 위해 마련한 시설)'에도 참여했었다.
A씨는 자신은 물론, 아들의 죽음에 분노하는 이들의 탄원서를 모아 대법원에 제출했다. 20통에 가까운 탄원서가 며칠 만에 모였다. A씨는 자신이 쓴 탄원서에 이렇게 적었다.
"대웅이는 절대 정신 이상자가 아니었고, 꿈 없이 방랑하는 아이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착실히 준비하고 나아갔습니다. (중략) 대웅이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정소는 철길이었습니다. 꿈이었고, 이상이었고, 인생의 목표였던 철도였습니다. 그런 곳에서 삶을 할 만큼 부대는 힘든 상황을 부여했던 것입니다. (중략) 이런 친구를 사춘기 시절 단순 진료로 정신 이상자로 보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생각하며, 이런 취지로 탄원서를 제출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엄마들의 삶에 작은 변화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김 하사의 경우 아직 국가보훈처의 심사가 남아 있다. 이 일병의 사례처럼 국방부에서 순직 처분을 받고도 국가보훈처가 국가유공자 혹은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하지 않으면 실질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
김 일병과 이 일병의 엄마는 다른 자식을 또 군에 보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국가보훈처가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자식이 군에서 죽거나 상처를 입어도 다른 자식을 군에 보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 계류돼 있어 사실상 통과가 요원한 상황이다.
이번 기획 6화, 8화의 홍정기 일병과 노우빈 훈련병의 사례인 군대의 허술한 의료체계 역시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관련 기사 :
뇌출혈 아들에게 두통약 몇 알 "군대는 원래 그런 거라고요?",
2384일 군대와 싸운 엄마, 피오줌을 흘렸다).
이런 개별적 사례를 넘어, 우리가 던져야 하는 본질적 물음. 군대에선 왜 사람이 죽을까. 왜 군대에선 사람이 다치고, 이들에게 '부적응자' 낙인을 찍어 전역시킬까. 왜 군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통은 멈추지 않는 걸까.
약 두 달 동안 진행한 이번 기획을 통해 군 트라우마센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간이 흐르고, 기사를 내보내고, 다시 군 피해자들과 소통하며 더 확신을 갖게 됐다. 국가 차원의 군 트라우마센터가 꼭 필요하다는 것 말이다.
행여 군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 즉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 이후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처하며 ▲ 끝까지 피해자의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이러한 장치를 통해 군을 견제하고 그 길의 끝엔 자정작용을 지닌 안전한 군대가 있길 바라는 생각.
이제 더 이상 피해 당사자들에게 그 짐을 떠안으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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