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과 19일은 탈북민들과 함께하는 여행을 순창으로 다녀왔다. 순창군청에서 후원하고 문화나눔 SentCulture에서 주관하는 행사이다. 서울에서 하는 답사에서 만났던 분들도 보이고 새로 오신 분들도 있었다. 32명 중에 12분이 탈북민이다. 안면이 있으신 분들은 반갑게 인사를 하신다. 처음 만났을 때 비하면 정말 얼굴이 많이 밝아졌다. 나도 처음에 비하면 부담없이 탈북민을 대하게 되었다. 변화라면 참 좋은 변화이다.
7시 30분 사당역 출발이라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왔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처음 순창에 가본다며 싱글벙글 좋아한다. 순창에서 장을 만드는 체험을 하며 북한에서 만드는 장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이야기 해 보고 싶었다. 1박을 하며 이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더 많이 북한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연히 대화는 귀순한 북한병사 이야기로 이어졌다. 기생충 이야기에 그럴 수 있다고 답한다. 아직 북한의 환경은 좋지 않다며 말끝을 흐린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탈북을 하면 군대에서 이유도 모른 채 쫓겨난다고 했다. 아마 그 병사도 무언가 급박한 일이 있어서 목숨을 걸고 귀순 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가족문제 아니겠냐고 조심스럽게 추측을 하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장을 담그는데 하하 호호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남한에서 담는 장과 북한에서 담는 장이 어떻게 다른지 물어보았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장 가르기를 안하는 거라고 했다. 북한에서는 간장과 된장을 분리하지 않고 그냥 먹는단다. 물론 장을 가르는 집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을 가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보다 장이 훨씬 묽다고 했다. 장을 가르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장을 가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장은 반드시 갈라서 된장과 간장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양강도에서는 고추장을 담을 때 메주가루와 함께 감자나 고구마를 삶아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넣기도 한다는 것이다. 양강도에서는 쌀보다는 감자나 고구마가 많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평안도에서는 된장을 담을 때 팥을 삶아서 넣는단다. 메주만으로 만든 된장보다 훨씬 맛있다고 한다.
우리도 된장에 고추를 박아서 장아찌로 먹는데 북한에서도 된장 담을 때는 우리처럼 고추를 박았다가 삭혀서 먹는데 특이하게도 돼지고기를 박기도 한단다. 명태식해나 가자미식해는 들어봤는데 된장에 돼지고기를 박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지역마다 환경과 생산되는 산물이 다르니 음식이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실 순창도 고추장, 된장으로 유명한 것은 순창의 기후와 순창에서 생산되는 콩을 비롯한 농산물이 좋아서이기 때문이다. 순창은 일교차가 크고 물이 맑고 안개가 많아서 장이 발효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그래서 장이 맛있는 거라고 장 만들기 체험을 진행하시는 선생님은 이야기 한다. 음식은 기후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재료가 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같은 장이지만 만드는 재료와 방법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기에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다.
둘째 날은 청국장으로 식사를 마치고 강천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강천산에는 연인과 손잡고 맨발로 걸으면 사랑이 깊어지는 길이 있다. 불행히 너무 추운 날이라 맨발로 걸을 수 없었지만 날 풀리고 다시 와서 꼭 맨발로 걸어 보고픈 길이었다. 날이 차가워졌지만 남쪽이어서인지 아직 강천산에는 단풍이 남아 있어서 행복한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하고 같이 사진 찍으며 한결 가까워짐을 느꼈다. 만남의 횟수가 많을수록 마음의 문은 더 넓게 열리고 있었다.
전혀 탈북민처럼 보이지 않는 젊은 아가씨가 탈북민이라고 한다. 14살에 넘어와 2살 어린 동생들이랑 중학교부터 다녔단다. 아이들에게 놀림 받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말투 고치고 공부했단다. 지금은 그늘 하나 없이 너무 밝고 예쁘다. 탈북민만 다니는 대안학교가 있는데 그곳에 다니는 아이들은 말투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문제도 우리가 넘어야 하는 산이라 느껴졌다. 말투 때문에 놀림을 받고 왕따 당하고 그래서 아이들을 따로 교육하고, 결국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와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단절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먼저 이들을 받아들여야 아이들도 받아들일 용기가 생길 것이다. 보이지 않는 장벽이 많을수록 통일은 더 요원하고 통일 후에도 치러야할 댓가는 더 클 것이다. 고민하고 연구해야 하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점심은 미나리 체험이었다. 체험농장에 도착하니 미나리 엄마와 미나리 아빠가 반갑게 맞아 주셨다. 이름이 너무 간질간질 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들 체험이 많아서 아이들 수준에 맞춰서 그렇게 부른단다. 어찌나 귀여운지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안내해 주신 비닐하우스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상과 따뜻하게 끓여 놓은 차가 준비되어 있었고, 혹시나 추울까봐 난로까지 피워 놓은 미나리 엄마와 아빠의 정성이 느껴졌다.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 지금까지 각박하게 살아온 마음이 무장해제 되어 힐링을 하고 있었다. 행복해 지기 위해서 커다란, 혹은 값비싼 무엇이 필요한 게 아니고 그저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 미나리 수경재배 화분을 만들고 가을걷이가 끝난 논길을 거닐고 정성이 듬뿍 담긴 미나리와 삼겹살을 배부르게 먹고 상경하는 길이 참 행복하였다. 하나라도 더 나누려는 따뜻한 마음이 농가체험의 매력인 듯하다.
적은 수이지만 탈북민과 꾸준히 만남을 이어가고 있고 이런 만남 덕분에 남과 북의 이해 폭이 넓어지고 있어서 더 좋다. 다음 달 북한음식체험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