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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란히 줄지어 앉은 할머니들이 절임 배추에 김칫소를 넣고 있다.
나란히 줄지어 앉은 할머니들이 절임 배추에 김칫소를 넣고 있다. ⓒ 김종술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마을이 있다. 가족 같은 주민들은 마을 앞산에 들어오려는 (채석장) 석산을 놓고 갈라섰다. 갈등 끝에 싸움은 끝났다.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예전처럼 지내고 싶었다. 둘로 갈라진 마음을 모아야 했다. 하나둘 팔을 걷고 봉합에 나섰다.

서로의 지혜를 모았다. 고령의 홀로 사는 주민들이 보였다. 마을회관을 새로 짓고 공동 부양을 하기로 했다. 난방비부터 식비로 나가는 비용이 부담이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학생들이 공부하는 한일고등학교와 협약을 맺었다. 마을 공터는 농사 체험장으로 내놓았다.

부녀회는 학생들의 간식을 만들어 학교에 납품했다. 학부모와 연대도 생겼다. 주말 아이들을 보러온 학부모에겐 마을회관이 제공됐다. 식사를 나누면서 주민과의 인연은 끈끈해졌다. 공동으로 부양하는 어르신들 비용의 해법도 찾았다. 김장김치 직거래 판매가 해답이었다. 주민 모두가 참여한 결과다.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상생의 길

 소금에 절인 배추를 씻는 일은 연세 많은 어르신이 맡았다.
소금에 절인 배추를 씻는 일은 연세 많은 어르신이 맡았다. ⓒ 김종술

오늘은 김장하는 날이다. 주민 모두가 참여한다. 오늘따라 하늘은 어둡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가을비도 이슬비처럼 흩뿌렸다. 모닥불도 피웠다. 지난밤 추위에 얼어버린 수도꼭지는 볼트를 풀어서 녹이고 속에 들어 있는 얼음을 뽑아냈다. 시키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한다. 

지난 22일 찾아간 충남 공주시 정안면 어물리 마을회관이 분주했다. 지난 이틀간 절이고 씻은 배추만 천이백 포기다. 생강, 마늘, 쪽파, 무채, 갓, 고춧가루, 매실액, 김치통 등 김칫소에 넣어 버무릴 양념은 남자들 몫이다. 김장에 필요한 무거운 짐을 옮기느라 어르신들이 비지땀을 흘린다.

오전 9시 구부정한 할머니들이 하얀 마스크를 쓰고 분홍색 고무장갑을 손에 들고 모여들었다. 비닐이 깔린 대형 통에는 양념과 청정수를 넣었다. 작은 주방용 삽으로 휘휘 휘저어간다. 양념을 버무리던 어르신들의 온몸에 양념이 튀어 묻었다. 자리선정을 놓고 할머니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나란히 줄지어 앉은 할머니들이 절임 배추에 김칫소를 넣고 있다.
나란히 줄지어 앉은 할머니들이 절임 배추에 김칫소를 넣고 있다. ⓒ 김종술

"젊은 사람들은 저리 가."
"70이 넘었는데 젊다고 김치 버무리라고 하네요."
"난 80이 넘었는데 젊은 사람들 속으로 밀려났는데... 깔깔깔."

빡빡하던 양념은 걸쭉하게 뒤섞였다. 보글보글 뽀얀 연기를 내뿜으며 어묵국도 끓었다. 밑반찬에 시루떡이 나왔다. 김장 날 빠지면 섭섭한 돼지 수육도 내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손을 놓고 모여들었다. 추위에 뜨끈하게 몸을 녹였다. 윤석우 충남도 의장이 위로 차 방문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김장이 시작되었다.

"젊은 놈들은 배추를 꼼꼼히 씻어."

어르신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린 장년의 남성들이 배추를 옮기느라 쩔쩔맨다. 잘 절인 노란 속 배추가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나란히 줄지어 앉은 할머니들은 물기가 쪽 빠진 절임 배추 잎을 하나하나 펴가면서 양념을 꼼꼼히 넣었다. 노란 속 배추에 양념을 쓱쓱 버무린 김치를 내민다.

 양념에 잘 버무린 김장배추가 먹음직스럽다.
양념에 잘 버무린 김장배추가 먹음직스럽다. ⓒ 김종술

"간 좀 봐 유."
"젊은 사람보고 맛보라고 해유."
"양념 아끼지 말고 팍팍 넣어유."

김치 포장은 노인회장이 맡았다. 할머니들이 버무린 김치는 10kg씩 나눠서 꼼꼼하게 쌌다. 택배로 보낼 김치는 좀 더 신경을 썼다. 답답하다며 마스크를 벗어버린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부녀회장이 다시 마스크를 씌운다.

"마스크 좀 내려줘 눈이 안 보여."
"깔깔깔...호호호"

총총거리며 바쁘게 뛰어다니는 부녀회장을 붙잡았다. 마을주민들이 다 같이 김치를 담그는 이유를 물었다.

"직접 재배한 배추 천이백 포기 정도를 절였다. 광천까지 가서 새우젓 중 비싼 오젓을 샀다. 고춧가루만 200근, 300만 원이 들었다. 김장을 하면 2.5톤 정도 나온다. 겨울철 공동으로 마을회관에서 거주하는 어르신들이 500kg 정도는 드신다. 나머지 2톤가량은 판매할 예정이다. 김장으로 얻어진 수익은 전액 어르신들의 반찬이나 식사비용으로 쓰인다."

김선희씨는 "힘들기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 김치도 웃으며 즐겁게 담가야 맛이 난다. 어르신들 겨우내 드실 것이니 우리 가족이 먹는다고 생각하고 정성을 다한다. 주민들이 하나로 뭉쳐서 이장님과 부녀회장이 이끄는 대로 뒤에서 밀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상규 이장은 "주민들이 같이하니 공동체의 힘이 생기고 보람을 느낀다. 겨울철 따뜻한 마을회관에서 공동으로 생활하시니 화합이 절로 되는 것 같다. 시골이 초고령화로 가면서 작은 마을회관보다는 복지 공간으로 키워서 독거노인이나 주민들이 함께할 복지관이 더 만들어졌으면 한다"라고 설명했다.

 김장에 앞서 간식으로 나온 수육과 따뜻한 어묵 국으로 몸을 녹이고 있다.
김장에 앞서 간식으로 나온 수육과 따뜻한 어묵 국으로 몸을 녹이고 있다. ⓒ 김종술

티격태격하면서도 싸움은 없었다. 먼 친척보다 이웃이 낮다고 했다. 주민 간 거리는 좁혀지고 갈등은 사라졌다. 주민 스스로 거둔 성과였다. 돌아오는 길 검은 봉지에 싸준 시루떡이 달콤하다.


#김장김치#정안면 어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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