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외삼촌은 제과점을 열었었는데, 간판부터 메뉴판까지 시트지에 직접 작업을 하고 일일이 손으로 잘라서 아주 멋진 모습을 갖추었었다. 오래된 기억에도 외삼촌이 아주 명필이었던 기억이 난다. PC로 작업한 것과는 또 다른 손글씨만의 매력이랄까.
쪽지에 빼곡히 별 시답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써서 교실을 돌고 돌며 끊임없이 이어지던 손편지들... 30대가 된 지금은 공감하지 못할 그 시절의 하하호호 이야기들을 손으로 쓰고 손에서 손으로 전달 전달했던 그 시절. 눈물 콧물 다 빼놓았던 첫사랑과의 연애도, 지금은 남편이 된 오랜 연인과의 연애도 내 방식은 좀 촌스러워도 '손편지'였다.
바쁘게 돌아가는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는 일상에 '캘리그라피', '손글씨' 가 유행처럼 가까워졌다. 이것저것 도전해보고 배워보는 걸 좋아하는 나 역시 'POP' 부터 '캘리그라피'까지 유행 쫓아 열심히 배우러 다녔다.
단순한 취미로 시작했던 내 손글씨는 SNS를 통해 짧은 시, 좋아하는 노래로 옮겨지다 내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글씨를 좋아해 주는 몇몇 사람들이 생겨나고, 실제로 주문으로 이어져 판매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글씨를 쓰게 되면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오랜만에 오는 지인들의 연락이다. 오랜만에 하는 연락에 조금 미안해하면서 필요한 글씨나 액자 등을 주문해주는데 바쁘게 살다 보니 그런 연락들 하나하나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 동네 지역커뮤니티에서 하나의 제안이 이어졌다. 매달 열리는 프리마켓에 다양한 이벤트를 고민하던 중 이번 달 이벤트로 손글씨 가훈액자를 회원가족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결혼 4년 차인 우리집에도 아직 없는 그 가훈 말이다. 좋은 기회에 내 글씨로 소중한 가훈들을 100가족에게 전달하게 되었다. 일명 '손글씨 가훈액자 프로젝트 100'.
겁도 없이 도전한 가훈액자 100개는 밤마다 열심히 쓰고 액자에 넣고, 포장하고 닉네임과 가훈을 다시 확인하고 전달하기까지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고, 드디어 완성된 가훈들이 회원들에게 전달되던 행사 날. 얼굴 마주하며 액자 하나하나 전달 드리며 받았던 감사 인사가 아직도 귓가에 훈훈하다.
사실 대량 작업이 처음이라 쉽지 않은 작업이긴 했다. 하지만 가족 저마다의 개성과 사랑, 고민의 흔적들이 보이는 가훈들을 쓰면서 내 가족들을 떠올리게 되고, 좋은 문구를 쓰다 보니 어느새 나도 좋은 마음을 가진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보람찬 작업이었다.
'프로젝트 100' 의 미션을 전달까지 모두 마무리한 뒤 옆 동네에도 소문이 나 또다시 '프로젝트 100', 또 다른 옆 동네의 '프로젝트 200' 주문이 이어져 기사를 작성 중인 지금도 작업들이 내 손을 기다리고 있다.
손글씨를 공부하고 연습하고 쓰면 쓸수록 아주 조금씩 내 마음은 분명 예뻐지고 있다. 이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면 돌아가신 외삼촌을 만나 꼭 내가 받은 감사 인사를 삼촌께 돌려드리고 싶다. 내 손글씨는 엄마도 아빠도 아닌 외삼촌을 닮은 것 같으니까.
2017년도 어느덧 마무리의 계절이 왔다. 잘 안 되지만 가족들에게 속마음 표현하는 계절이면 좋겠다. 그리고 가훈이 없다면 오늘 정해 봐도 좋겠다. 가훈액자를 작업하며 우리가 정한 우리집 가훈은 '오늘도 행복하기' 이다. 오늘도 가훈을 잘 지키는 구성원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