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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 정상의 조형물 추풍령은 흔히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가고 기차도 숨이 차서 목메어 울고 가는' 험준한 고개로 알려져 있다. 유행가 '추풍령 고개'가 널리 퍼뜨린 엄청난 과장에 온 국민이 현혹(?)된 결과이다. 추풍령의 실제 해발은 221m밖에 안 된다. 새재 642, 죽령 689, 육십령 734, 우척현 580, 이화령 548, 하늘재 525 등 부산에서 서울로 갈 때 넘어야 하는 다른 고개들에 견주면 1/2에서 1/3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금은 도로를 확장하고 철길을 가다듬는 과정에 자꾸 깎여 거의 평지나 다름없게 변모되어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과 조선군이 대결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이지만 현지에는 아무런 표식도 안내판도 없다. '추풍령 노래비'와 위의 사진에서 보는 조형물뿐이다.
추풍령 정상의 조형물추풍령은 흔히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가고 기차도 숨이 차서 목메어 울고 가는' 험준한 고개로 알려져 있다. 유행가 '추풍령 고개'가 널리 퍼뜨린 엄청난 과장에 온 국민이 현혹(?)된 결과이다. 추풍령의 실제 해발은 221m밖에 안 된다. 새재 642, 죽령 689, 육십령 734, 우척현 580, 이화령 548, 하늘재 525 등 부산에서 서울로 갈 때 넘어야 하는 다른 고개들에 견주면 1/2에서 1/3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금은 도로를 확장하고 철길을 가다듬는 과정에 자꾸 깎여 거의 평지나 다름없게 변모되어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과 조선군이 대결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이지만 현지에는 아무런 표식도 안내판도 없다. '추풍령 노래비'와 위의 사진에서 보는 조형물뿐이다. ⓒ 정만진

1592년 4월 28일, 흑전장정(黑田長政, 구로다 나가마사)이 이끄는 일본 침략군 3군이 추풍령 아래에 당도한다. 적은 경남 김해, 경북 성주, 경북 고령 무계를 지나 낙동강을 넘어 김천을 점령한 다음 추풍령까지 진격해 왔다. 경상우도의 왼쪽 길을 밟아온 것이다. 경상우도 방어사 조경 부대가 일본군 3군에 맞선다.

 경북 상주 충의사(정기룡 사당)의 '정기룡 장군 상'
경북 상주 충의사(정기룡 사당)의 '정기룡 장군 상' ⓒ 정기룡사당
일본군은 2만 5000여 명에 이르는 대군이었다. 4월 17일 경상우도 방어사로 임명을 받고 추풍령까지 내려온 조경에게는 경상도 관찰사 김수의 지원군까지 합쳐도 1000여 명의 병사뿐이었다. 무과에서 장원 급제한 이력의 젊은 맹장 정기룡이 접전 초반 무예를 뽐내기는 했지만 너무나 중과부적이었던 탓에 결국 아군은 추풍령을 적에게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아군 1000명이 적 2만5000명을 이길 수는 없었다

같은 4월 28일, 새재를 넘어온 일본군 1군 소서행장(小西行長, 고니시 유키나가)의 1만 8000여 대군이 충주에 닿는다. 이를 탄금대에서 가로막은 아군은 삼도 순변사(경상, 전라, 충청 3도의 군사 책임자) 신립의 8000여 장병이었다. 추풍령 전투에 비하면 그래도 아군은 군사 수에서 상대적으로 덜 열세였다. 하지만 아군은 삼면을 에워싼 채 포위 전술을 쓴 적을 감당해내지 못했다. 뒤쪽에 남한강을 두고 배수진을 쳤던 신립의 작전은 완벽하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열두대에서 내려다 본 오른쪽(목행대교) 방향의 남한강. 열두대는 신립 장군이 1592년 탄금대 전투 중 너무 뜨거워진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강물까지 열두 번 오르내린 바위라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곳 지형은 아주 심한 절벽이기 때문에 사람이 오르내릴 수가 없다. 즉 열두대는 전설이 낳은 이름이다.
열두대에서 내려다 본 오른쪽(목행대교) 방향의 남한강. 열두대는 신립 장군이 1592년 탄금대 전투 중 너무 뜨거워진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강물까지 열두 번 오르내린 바위라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곳 지형은 아주 심한 절벽이기 때문에 사람이 오르내릴 수가 없다. 즉 열두대는 전설이 낳은 이름이다. ⓒ 정만진

 탄금정(근래에 세운 정자)에서 내려다 본 열두대 방면의 풍경. 계단 끝에 신립 장군, 김여물 장군 등 조선군 장졸들이 강물에 몸을 던진 바위(열두대)가 있고, 중간쯤 오른쪽에 '신립 장군 순국지지殉國之址(순국하신 땅)'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탄금정(근래에 세운 정자)에서 내려다 본 열두대 방면의 풍경. 계단 끝에 신립 장군, 김여물 장군 등 조선군 장졸들이 강물에 몸을 던진 바위(열두대)가 있고, 중간쯤 오른쪽에 '신립 장군 순국지지殉國之址(순국하신 땅)'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 정만진

신립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선조는 탄금대에서 그가 남한강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대부분의 장졸들이 죽고 흩어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서울을 버리고 몽진하기로 결정했다. <선조수정실록> 1601년 2월 1일자는 '신립이 단번에 여지없이 패하여 나라가 뒤집어졌다'라고 기록한다. 탄금대 패전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표현이다. 나라가 뒤집어졌다! 

나라가 뒤집어졌다


'나라가 뒤집어졌다'라는 실록의 기술은 신립의 패전으로 조선 조정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문학적 표현이다. 그런데 이 기술은 지리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객관적으로 성립이 되는 표현이다.

충주에는 흔히 '중앙탑'이라 불려지는 탑이 있다. 이 탑의 공식 명칭은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忠州塔坪里七層石塔)'이다. 국보 제 6호로, 화강암으로 건립된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 중에서 가장 크고 높다.

이 탑을 흔히 중앙탑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통일신라 원성왕(785∼798) 때 나라의 중앙 지점을 알아보기 위해 국토의 남쪽과 북쪽 끝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보폭을 가진 잘 걷는 두 사람을 여러 번 출발시켜 보았는데, 그때마다 항상 이곳에서 만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신립의 패전으로 조선은 나라의 중앙부, 즉 허리가 부러진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허리가 부러지면 사람도 나라도 뒤집어지는 법이다.

신립이 이끄는 조선 중앙군은 어째서 그토록 허망하게 패전하고 말았을까? <선조실록> 1596년 1월 24일자 기사를 쓴 사관은 '신립이 험한 곳(새재)에서 대항할 생각을 하지 않고 평야로 들어감으로써 좌우에 적이 가득 차서 미처 교전도 하지 못한 채 모두 패하고 말았다'라고 비판했다. 군사가 소수일 때에는 험한 지형을 활용하여 복병전을 해야 하는데 신립은 그 반대로 군사를 운용했다는 것이다.

차남 광해군을 세자로 임명하는 선조

4월 29일, 선조는 차남 광해군을 세자로 임명한다. 전쟁은 일어났고, 일방적으로 적에게 패전을 거듭하고 있는 형국이었으므로 도무지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발설하지 않았지만 만약 선조가 돌연사를 하는 사태가 빚어지면 누가 왕위를 이을 것인가? 세자 책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충장공 신립 장군과 팔천 고혼 위렵탑, 탄금대공원 중심부에 있다. 이 위령탑 앞에 '감자꽃' 노래비가 있다.
충장공 신립 장군과 팔천 고혼 위렵탑, 탄금대공원 중심부에 있다. 이 위령탑 앞에 '감자꽃' 노래비가 있다. ⓒ 정만진

광해군이 세자에 오른 것은 장남 임해군에 대한 세평이 지독하게 나빴기 때문이다. 임해군은 난폭한 성정에 어리석었고, 탐욕스럽기까지 했다. 선조 일행이 4월 30일 서울을 떠나자 백성들이 몰려가 임해군의 집을 불태운 사실은 평소 그에 대한 민심이 어떠했는지를 잘 말해준다.

이날 백성들은 임해군의 집만이 아니라 병조판서 홍여순의 집도 태워없앴다. 노비 문서를 관리해온 장예원에도 불을 질렀고, 형조(법무부) 건물에도 방화를 했다. 심지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도 차례차례 백성들의 손에 의해 화염에 무너졌다. 그만큼 지배층에 대한 백성들의 반감은 짙고도 싸늘했다. (계속)


#추풍령#탄금대#정기룡#신립#광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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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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