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광복 72주년. 고통과 아픔의 세월이 점점 흐려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투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눈물은 멈추지 않고 있고, 우리가 선명하게 기억하는 역사를 뒤틀고 왜곡하려는 시도가 끊이질 않는다. 대일 역사 청산이란 무겁고도 중요한 과제가 남아있는 것이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이를 향한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22~25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함께 떠난 일본 교토·오사카·나라 역사평화기행을 통해 그러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우리가 기억하고 지켜야 할, 그리고 고스란히 후대에 전해야 할 역사가 '그 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곳을 지키는 동포와 양심있는 일본인들이 있었다.△역사왜곡의 상징이 된 오사카 국제평화센터 △강제노동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는 단바망간기념관 △우리 문화재를 지켜온 고려미술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조선인들이 정착해 지금까지 지켜온 우토로 마을까지. 본보는 이번 기행을 통해 보고 들은 역사와 이야기를 차례로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기자주1991년 과거 일본군의 만행을 알리고 전쟁 가해국으로서 반성하자는 취지로 문을 연 오사카 국제평화센터(오사카시 주오구). 2년 전 오사카 국제평화센터의 전시실 A존의 문구는 이렇게 바뀌었다.
"1945년, 오사카는 남김없이 타버렸다."오사카 공습으로 불 타고 부서진 도시와 복구된 현재의 모습이 나열된 전시장 한켠에는 피탄된 수통이 전시돼 있었다.
이곳을 지나면 '전 세계가 전쟁을 하던 시대'를 주제로 한 B전시실이 나타난다. 청일전쟁부터 러일전쟁, 만주사변까지 전쟁의 역사와 무기 발달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피해자들의 숫자를 꼼꼼히 기록해 뒀다.
전시 하 일본인들의 궁핍한 생활상과 천황이 내린 책령으로 초등학생까지 전시 교육을 받았던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물과 모형들도 볼 수 있었다.
아베 정권 "전쟁 가해국 반성" 취지 훼손지난 11월 23일 오사카 국제평화센터에서 만난 '피스오사카의 위험을 생각하는 연락회'의 이노우에 쥰 대표는 이를 가리켜 "일본 식민지 전쟁을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전 세계가 전쟁을 하던 시기였다는 점을 내세워 일본이 저지른 전쟁이 나쁜 게 아니다는 것을 관람객들에게 심어주려는 의도다"고 지적했다.
주제만 조금씩 달랐을 뿐 오사카 국제평화센터의 전시실은 온통 오사카 공습으로 인한 피해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쟁을 경험한 화가들이 직접 그린 오사카 공습 그림, 폭탄 복제모형, 방공호 등은 "오사카가 큰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반복, 강조할 뿐이었다.
이노우에 대표는 "원래 오사카 국제평화센터는 이런 곳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1991년 문을 열었을 당시만 해도 조선인 강제연행, 중국 난징 대학살, 일본군 성노예제(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고발하는 전시물이 주를 이뤘다고 그는 설명했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그로 인해 죽고 다친, 인생을 빼앗긴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고 반성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센터가 생겼을 때부터 일본 우익들이 '이 사진 이상하다' '거짓말이다'고 하며 공격을 해왔어요. 일본의 잘못을 알리는 전시물을 '떼라'는 요구도 거셌죠."이른바 '자학사관'이라는 우익 진영의 공격의 정점을 찍은 것은 아베정권이었다. 소위 "일본을 되돌리자, 다 바꿔버리자"는 구호를 내걸고 오사카 국제평화센터 전시물을 손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되돌리자' '바꿔버리자'는 전쟁 범죄에 대한 스스로의 고발과 반성을 되돌리고 바꾸자는 의미다.
2015년 리뉴얼... 침략 역사 없애
센터가 문을 연 이후 첫 전시 리뉴얼은 2015년 4월 30일 그 결과물을 공개했다.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고, 중국 등 아시아를 침략했다는 내용은 모두 없애버리고 오사카 대공습의 피해만 전시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바로 리뉴얼의 결과죠."오사카국제평화센터는 오사카부와 오사카시가 1억엔 씩을 출연해 만든 재단법인 '피스오사카'가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일본 우익 세력인 '일본 유신회'의 영향력이 강해 "(일본 유신회에)아부하는 사람들이 (오사카 국제평화센터)관장을 하고 있다"고 이노우에 대표는 비판했다.
오사카 국제평화센터는 오사카의 대표적 관광명소인 오사카성과 매우 인접해 있다. 매년 셀 수 없는 관광객들이 오사카성을 보러 오지만 그 주변에 있는 오사카 국제평화센터를 찾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대한민국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런 가운데 관람객 70% 정도가 일본의 어린이와 학생들이란 점이다. 오사카 국제평화센터가 역사의 일부, 왜곡된 역사만을 전파하는 곳으로 변질될 우려가 큰 것이다.
3층 전시실은 대공습으로 인한 고난을 극복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오사카'를 주제로 하는데, 한쪽 벽면에는 전시를 둘러본 큐슈 미아자키현 학생들의 감상문이 붙어있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전쟁으로 인해 보통 사람들까지 죽고 다쳤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전쟁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알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노우에 대표는 "일본의 역사왜곡은 심각한 수준이다"며 "교과서에서도 조선인 강제연행 등 우리의 잘못된 부분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 이후 일본이 전 세계의 어려운 이들을 도운 공헌 활동 모습 전시는 물론 재일교포들과 일본이 '공생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는 전시물도 볼 수 있었다.
"실제론 '민족차별'이 만연해 있는 일본의 민낯은 이곳에서 볼 수가 없어요." '피스오사카' 위험을 생각하는 연락회
'피스오사카의 위험을 생각하는 연락회'는 이러한 오사카 국제평화센터의 위험성을 알리고 바로 잡기 위한 활동을 하는 일본의 시민단체다.
잘못된 역사인식의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재생산하는 거점으로 변질된 오사카 국제평화센터를 바로 잡는 것이야 말로 "역사 바로 세우기의 출발점"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편, 이 시민단체의 한 회원은 리뉴얼을 결과물을 두고 "너무 지독하다"며 지난 2015년부터 오사카부와 오사카시, '피스오사카'를 상대로 각각 법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전시 변경 내용을 사전에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한 배상과 리뉴얼 관련 자료 공개 등을 청구하는 소송이다.
오사카시를 상대로한 재판은 1심에서 패했지만 지난 9월 2심 판결에선 오사카시에 "5만 엔(한화 약 50만 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이달 30일에는 오사카부를 상대로한 재판의 선고가, 내년 2월에는 '피스오사카' 재판의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강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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