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좋은 취지로 만드셨어. 좋은 취지로 만드셔서 그래서 우리 아버님 꼭 이순신 장군 같구나. 이런 얘기를 내가 들은 적이 있어."<그것이 알고 싶다>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 편에서 보도연맹을 기획한 오제도 검사의 아들에게 보도연맹과 아버지에 대해 묻자, 아들이 제작진에게 한 말이다.
"아버지는 오늘날 나폴레옹, 웰링턴, 몰트케가 거론되는 방식대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될 거예요." 이 말은 구드룬 힘러라는 독일 여성의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아버지는 유태인 학살의 실무 책임자이자 주동자인 하인리히 힘러이다.
두 사람의 발언은 닮았다. 누구나 인정하는 영웅의 반열에 아버지를 올려놓음으로써 그들은 아버지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이들의 발언을 들은 사람들은 경악할 것이다. 그러나 어떨까? 내 부모가 엄청난 학살의 주범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성장했고 내 부모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하여야 할까?
책 <나치의 아이들>(저자 타냐 크라스냔스키, 갈라파고스)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된 책이다. '끔찍한 학살의 주범자'라는 공통적인 유산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고 그들은 그들의 부모를 어떻게 여기는지 책은 서술해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린 시절 종종 내 부모의 부도덕한 모습을 목격한 바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늘 다른 선택을 했다. 어떤 일은 부끄러웠고 어떤 일은 나와 관계없는 타인의 일로 방관했고 또 어떤 일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내심 자랑스럽게 여긴 바도 있다. 나의 일관적이지 못했던 선택들처럼 나치의 아이들 역시 각기 다른 선택을 했다.
구드룬 힘러처럼 아버지를 여전히 자랑스러워하며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할 책을 출간할 계획을 세우는 이도 있고 아버지가 자기에게 자신이 한 일을 반성하는 말을 단 한 마디도 해주지 않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일도 있고 아버지와 자신의 삶을 분리해버린 이도 있다. 이들의 선택은 모두 '나의 좋은 아버지' vs. '나치전범 아버지' 사이에서의 갈등이 빚어낸 결과이다.
나의 좋은 아버지를 여전히 사랑하기 위해서, 그가 나에게 주었던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아버지를 긍정하고 인정하기 위해 애쓰고, 어떤 이는 부정하고 미워하고 증오함으로써 부모라는 존재를 자신에게서 끊어 내버렸다.
혹자는 자신의 삶마저도 부정하며 자책하고 죄를 느끼며 살기도 한다. 어느 쪽이건 불행히도 이들은 모두 부모에게서 '독립' 하지 못했다. 여전히 이들은 나치의 아이들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무겁다.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런 기록들을 남겨둬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학살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다음 세대의 역사 이들의 과오가 다음세대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다음 세대의 삶을 좀먹었는지 책은 기록한다.
그 기록은 무겁고 그래서 부럽다. 우리는 친일파에 대해 보도연맹에 대해 5.18과 같은 모든 학살의 주범에 대한 기록도 아직 남기지 못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