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배낭여행의 어려움은 장시간 야간 버스를 타야 한다는 점이다. 보통 한 번에 9시간에서 13시간을 탄다. 페루에서 에콰도르를 넘어갈 때도 툼베스→과야킬→키토를 거치며 3차례 버스를 갈아탔고, 사흘간 총 43시간을 버스에서 지냈다.
과거 경험을 돌이켜보면 '하늘기차'를 55시간 탄 적이 있다. 중국에서 티베트를 갈 때였다. 내가 겪어본 최장시간 탑승이었다. 그다음 인도에서 38시간 기차를 타 본 적이 있다. 하여튼 버스나 기차, 비행기를 15시간 이상을 탄다는 것은 거의 초죽음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안데스산맥의 고산지대를 넘어가면 두통이 심하게 오고 몸도 뻐근해진다.
하지만 안데스산맥을 넘어갈 때 만나게 되는 일출과 일몰의 비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그러한 매력 때문에 배낭여행을 하는 것이 아닐까? 또 배낭여행을 하는 장점은 세계의 젊은 청년들을 만나 몸과 언어로 소통을 한다는 점이다. 언어가 안 통해도 느낌으로 대화가 가능하다. 서로의 고통과 애로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대화에 막힘이 없다. 그들이 목표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금세 감지된다.
페루에서 국경을 넘어올 때 와이파이가 잘 안 돼 호텔(호스텔)을 예약하지 못하고 왔다. 그래서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 와서 그냥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다운타운 쪽으로 무거운 배낭을 지고 1시간을 걸어가서 고전적인 외관의 호텔에 투숙했다. 말 그대로 자유여행이다. 발길 닿는 곳에서 머무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호텔비용이 비싸게 든다. 주로 밤 버스를 타기 때문에 숙소에 아침 10시쯤 도착해서 여정을 풀었다.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배낭을 던져버리니 다시 힘이 솟아났다.
맨 먼저 숙소 근처의 바실리카 성당을 찾아갔다. 멀리서 보아도 고딕양식의 첨탑과 웅장한 성당의 외형이 멀리서부터 한눈에 들어온다. 바실리카 성당은 길이가 150m에 이르고 폭은 35m나 된다. 탑높이만 해도 78.23m이다. 종탑까지 관광객들이 입장료 2달러를 내면 올라가서 키토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바실리카 성당 정원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이 그렇게도 달콤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마침 깔딱 고개를 넘어와서 갈증도 났기에 아이스크림부터 사먹었다. 성당 앞에선 성당학교를 졸업한 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졸업가운을 입고 줄을 서서 성당으로 입장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 몇몇과 사진촬영을 했다.
발길을 옮겨 센트럴광장인 독립광장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대통령궁과 대성당 그리고 중앙공원등이 자리잡고 있다. 키토의 구시가지는 197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대통령궁 주변은 테러에 대비하는지 장갑차와 탐지견으로 무장한 경찰특공대가 주변을 감시하며 순찰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엄숙하였지만 광장 벤치에 앉아있는 관광객들은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특공경찰과 사진촬영도 하고 있었다. 대통령궁 앞의 근위병들은 시간에 맞춰 근무교대의식을 실시해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라틴 아메리카는 스페인의 영향을 받아 성당이 많다. 캐나다 토론토의 처치거리(Church Sreet)를 걸어가다 보면, 성당 20개 이상을 거리를 따라 만나게 된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나라는 대체로 성당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에콰도르도 마찬가지다. 키토에서 대표적인 성당으로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과 수도원, 그리고 라콤파니아 교회가 유명하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은 1535년에 건립돼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는 명성을 간직하고 있다. 돔형 지붕이 특징인 라콤파니아 교회는 1605년부터 1765년까지 무려 160년 동안 건축됐다고 해서 화제다. 예수회 소속의 교회로, 성당내부가 기둥, 천장, 제단을 빼고는 모두 금으로 도금돼 웅장하고 화려한 조형미를 뽐내고 있다. 그래서 내부 사진촬영도 안되고 15명씩 그룹을 지어 가이드의 해설을 들으면서 관람할 수 있다.
구시가지의 최대 명물은 역시 엘 파네시오 언덕(El Panecillo)에 있는 '천사상'일 것이다. 파네시오는 스페인어로 '빵 덩어리'라는 뜻을 지닌다. 독립전쟁 당시 주민들이 빵을 만들어 독립군에게 지원한 것이 이름의 유래다. 원래 파네시오 언덕에는 잉카인들이 태양을 숭배하던 신전이 있었으나 점령군인 스페인군이 그것을 허물어 그 돌을 식민도시 건설에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 그 자리에는 1979년에 키토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을 기념하는 43m 높이의 '성모 천사상'이 세워졌다. 파네시오 언덕을 오르는 방법은 마을버스를 타는 방법과 택시를 타는 방법이 있다. 택시는 편도요금이 4~5달러 정도 한다. 파네시오 언덕에 오르면 키토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야경이 매우 아름답다. 마침 파네시오 언덕에서 오토바이 애호가인 청년들을 만나 사진촬영을 함께 했다.
버스를 타고 신시가지로 가면 맥도날드와 KFC 등의 패스트푸드점들이 모여있다. 그곳에 에콰도르 국립극장이 자리잡고 있다. 또 해발 4100m인 피친차 산에는 텔레페리코(TeleferiQo)라는 이름의 2.5Km의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어 쉽게 산 정상에 오를 수 있게 된다. 또 정상에 오르면 키토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다만 피친차산은 오전에 오르는 것이 좋다. 그 시간에는 하늘이 맑아서 키토 시내를 잘 볼 수 있지만, 오후에는 구름에 덮이거나 진눈깨비가 올 때가 많다.
그 외에 키토의 볼거리로는 과야시민 미술관이 있다. 그곳에는 라틴 아메리카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인 오스왈도 과야사민(1919 ~ 1999, O. Guayasamin)의 그림들이 전시돼 있다. 과야사민미술관의 특징은 과야사민의 페인팅 작업물 뿐만이 아니라, 그가 생전에 수집했던 식민지 시대 이전의 유물들과 식민지 시대의 종교미술품들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미술관 뒤로 걸어 올라가면 수목장을 한 그의 무덤도 볼 수 있고, 인류의 전당도 관람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키토에는 생활사박물관이 있어 잉카시대부터 식민지시대를 거쳐 현재까지의 에콰도르를 역사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키토 외곽에는 버스로 2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에콰도르 제2도시인 오타발로(Otavalo)가 자리잡고 있다. 그곳에는 전통재래시장이 있어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다. 오타발로를 가는 버스요금은 2~3달러 정도 한다.
또 키토에서 북쪽으로 약 22km 지점인 산 안토니오 마을로는 북반구와 남반구를 나누는 적도가 지나간다. 이곳에는 옛 인디오들의 축조물을 본떠 만든 30m 높이의 피라미드형의 기념탑이 자리하고 있다. 1736년~1742년 지구 지형을 연구하기 위해 에콰도르에 온 프랑스 축지단의 적도 발견 성과를 기념하기 위해 건축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GPS로 관측한 결과, 그곳으로부터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디언들의 신전이 있던 장소가 정확한 적도선임이 밝혀졌고, 그곳에 적도박물관이 지어졌다.
에콰도르에 오는 상당수의 관광객은 갈라파고스를 갈 생각을 한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진원지가 바로 갈라파고스제도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비행기 요금과 입도 요금을 점검해보고는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갈라파고스를 가는 비행기를 타는 곳은 키토와 과야킬이다. 국내선 항공으로는 타메항공, 란항공, 아에로항공의 세 비행사가 있다. 비행기요금은 란항공 기준으로 제일 싼 비행편이 375달러(최대 530달러)고, 입도료 100달러와 경비 20달러를 추가로 내야 한다. 발트라섬으로 가는 비행기의 비행시간은 3시간이 걸리며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거리의 선착장에 도착해 작은 보트와 버스로 갈아탄 다음 산타 크루즈섬의 번화가인 푸에르토 아요라까지 가게 된다. 이곳에 숙소와 여행사 그리고 찰스 다윈 연구소가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갈라파고스를 끼고 있는 에콰도르는 매우 매혹적인 관광국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 달러를 사용하는 몇 개국에 속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국민성도 대한민국과 마찬가지이고, 흥분을 잘하는 열정적인 성향도 비슷한 듯하다. 에콰도르 청년들은 처음 만나도 먼저 포옹부터 한다. 낙천적이고 경쾌한 에콰도르 사람들이 기억이 남는다.
덧붙이는 글 | 에콰도르의 매력은 적도선이 지나간다는 점이다. 또 갈라파고스제도가 인접해 있다는 특성을 지닌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둘러보면서 잉카시대와 식민지시대 그리고 현대적 삶이 공존하고 있는 에콰도르의 역사를 통찰하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낙천성이 에콰도르인들의 진정한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