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만 단양군에는 8개 읍·면 155개 리가 있다. 1985년 충주댐 완공으로 옛단양이 수몰되면서 지금의 신단양이 계획도시로 섰다. 관공서와 아파트, 상가가 밀집한 단양읍과 시멘트 회사가 몰려있는 매포읍 몇 개 리를 빼고는 대부분 농민이 사는 시골이다. 단양엔 7천 명의 농민이 있다. 대다수 군민은 읍내에 산다.
많은 때는 10만 명 가까운 인구가 살던 단양군에 이제는 인구가 3만을 턱걸이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 최근 전국 모든 지자체의 인구소멸지수를 조사한 결과 충북에서 단양군은 괴산군과 더불어 인구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이 추세로는 앞으로 30년 내에 단양군이 소멸한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인구절벽이란 신생어가 떠돌며 인구 감소가 마을 소멸로 귀결된다고 난리인데 한국도 빠르게 일본의 뒤를 좇고 있다.
농촌인 단양 인구가 급감한 이유는 충주댐 수몰 이유도 크지만 근본적으로는 농민이 대부분 도시로 떠났기 때문이다. 이른바 이촌향도다. 날품팔이, 공장 노동을 하더라도 농촌에서 농삿일 하는 것보단 낫겠다며 너도나도 떠났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어봐야 빚더미에 오를 뿐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자식들에게 천형 같은 한스런 농사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소 팔고, 논밭 팔아 학교에 보냈고 그렇게 자란 시골아이들은 부모의 소원대로 도시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 결과, 시골 마을에는 아이 낳아 키우는 젊은이가 없고 당연히 아이들도 거의 없다. 단양군에 초등학교 11곳, 중학교 5곳, 고등학교 3곳이 있다. 단양읍내와 매포읍내 몇 학교 빼고는 6개 면에 있는 학교들은 대부분 학생이 너무 없어 폐교위기에 있다. 내 아들 한결이가 다니고 있는 적성면 대가초등학교도 학생이 24명에 불과하다. 내년에 신입생으로 들어올 아이들이 없어서 교직원과 학부모들이 학교를 살리겠다고 신입생 유치에 발 벗고 나서고 있는 지경이다.
지난 4일, 대가초등학교에서 혁신학교의 충북 버전인 행복씨앗학교 출범식이 열렸다. 대가초등학교가 가곡초등학교에 이어 행복씨앗학교에 선정되었다. 김병우 충북 교육감에 따르면 시골지역 행복씨앗학교의 참뜻은 폐교 위기의 작은 시골학교 살리기다. 시골아이들이 시골 작은 학교에서 도시 아이들에 비해 훨씬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음을 입증해 보여 도시 부모들이 아이들을 우리 시골로 보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맞다. 시골 작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정말 행복하다. 한 교실에 대여섯 명인 아이들은 유치원부터 함께 자라서 한 형제자매다. 아이들과 오래도록 함께한 선생님들은 엄격한 교사라기보다 삼촌, 이모처럼 다정다감하다. 아이들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돌본다. 유치원 3년, 초등학교 3년째 다니는 한결이가 행복한 학교가 무엇인지를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이대로는 이런 행복한 학교도 언제 폐교될지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고령 농민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돌아가시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는 없다. 농업 통계를 보니 2030세대 농민은 거의 없고 나와 같은 40대 농민도 250만 농민 중 단 1%다. 천연기념물이나 마찬가지다. 이러니 농촌이 사라지고 학교가 사라지지 않을 도리가 있는가?
어떻게 이 비극을 멈추고 마을이 살아나고 학교가 살아나게 해야 할까? 가장 시급한 건 농민이 농사지어 먹고 살 수 있게 만드는 것뿐이다. 도시 사람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농사지어 생계를 유지하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헌법과 법률, 조례로 보장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 때 31년 만에 헌법을 바꾼다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국회에서도 개헌 특위를 구성하고 개헌 논의를 하고 있다. 우리 농민들은 이번 개헌 때 반드시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헌법 조항이 개헌 헌법에 명시되기를 바라며 7월 18일에 국회 농민대토론회를 열었다.
그 결과물로 10월 18일 국회에서 45개 농민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이 농민의 권리와 먹거리 기본권 실현을 위한 헌법개정 운동본부를 발족했다. 전국에서 이른바 농민헌법 청원 백만 서명운동이 들불처럼 퍼졌다. 11월 1일 농협중앙회에서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 실현을 위한 농민헌법 천만 서명운동으로 뒤따라 붙었다.
단양에서 지난 한 달 반 동안 농민회와 농협이 서명운동에 나서 6천 명이 넘는 서명을 받았고 1만 서명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오늘도 서명운동을 했다. 침체하다 못해 몰락해 가는 단양을 되살리기 위해 농민이 살아야 함을 단양군민들이 서명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열기를 모아 12월 14일 단양군의 모든 농민단체와 기관, 군민단체들이 모여 헌법개헌 농민헌법 단양군민대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 농민이 살아야 단양이 살고 나라가 산다는 걸 한마음 한뜻으로 결의한다. 마을이 살고 학교가 살고, 단양이 살고, 전국의 모든 시골이 사는 방법의 첫번째 단추는 헌법에 농민의 권리,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을 명시하는 것이다.
대가초등학교 3학년 한결이와 유치원부터 6년째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미성이 할아버지가 어제 행복씨앗학교 출범식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하신 말씀.
"제 두 손주가 이 학교에 다닙니다. 전 이 학교 2회 졸업생입니다. 대가초등학교는 일제강점기 때 문을 열었습니다. 4년 동안 일본말로 공부를 했어요. 해방되고도 교실이 없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수업을 했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피해 도망 다녔어요. 그때는 힘들어도 학생이 많았습니다. 600명 넘게 다녔어요. 지금 24명이 다녀요. 어떻게 이리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학교가 행복씨앗학교로 선정되어 지원도 많이 받고 학교가 좋아진다는데 학교가 문 닫지 않고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9월 공모교장으로 오신 유승봉 교장 선생님은 쑥스러운 듯 이렇게 말문을 여셨다.
"제가 초등학교 때 우리 반 64명 중 59등이었습니다. 체육특기생이 다섯이었으니 사실상 꼴찌였죠. 말도 한마디 못하는 내성적인 아이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바둑이 신기하게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몇날 며칠을 혼자 독파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둑을 두었는데 제가 이기는 거예요. 놀라웠죠. 제가 하고 싶은 건 스스로 성취하는 기쁨을 그 때 처음 깨달았어요. 그리고도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공부는 썩 잘하지 못했어요.그래도 어찌어찌해서 교사가 되기는 했지요. 단양이 첫 발령지였고요. 17년을 단양에서 아이들 가르쳤어요. 첫 발령받은 해에 선생님들을 모아 풍물패를 만들었고요. 연극단도 만들어서 오래도록 공연했어요. 돌아보면 소심한 제가 자기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된 건 어릴 때 바둑을 스스로 깨치며 깨달은 경험이 밑거름이었어요.대가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영상으로 보셨고 사물놀이 공연도 보셨지만 이 작은 학교에서 지난 일 년 동안 아이들과 더불어 살며 전 이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하는 모습을 쭉 지켜보았습니다. 도시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지난해부터 준비한 행복씨앗학교를 내년에 본격 운영하면서 교직원, 학부모님, 지역 주민들과 함께 힘을 모아 농사를 짓듯이 이 학교를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학교로 키워나가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유문철 시민기자는 충북 단양에서 10년째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유기농민, 블로그 단양한결농원으로 농사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대가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 대가초 농민교사로 교육에 참여 중입니다. 현재 전국농민회총연맹 단양군농민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