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웠다. 취재하고 기사를 써서 밥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언론이 '우리말'을 더럽히는 '주범'으로 여겨져 그랬다.
이우기(경상대 홍보실장)씨가 펴낸 <요즘 우리말께서는 안녕하신가요?>(부크크 펴냄)를 읽는 내내 "나는 이런 말을 쓰지는 않았나?", "맞다. 이런 표현은 심하네"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올바른 말글살이를 바라는 쓸모 있는 걱정'이란 부제가 붙은 책이다. 이우기씨는 "말과 글은 생각을 전달하고 기록하기 위한 도구다"며 "나는 말과 글에는 그 말과 글을 쓰는 사람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진주 우리말 우리글 살리는 모임'과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편입일꾼도 맡고 있는 그는 "말을 살려야 겨레가 삽니다"며 늘 우리말 살리기를 위해 애쓰고 있다.
책은 모두 다섯 마당으로 엮었다. 먼저 '영어에 머리 조아린 불쌍한 우리 얼'에서는 '외국어', '외래어', 심지어 '국적 불명의 말'에 더렵혀진 우리말을 지적해 놓았다. 주로 언론에 나온 사례들이다.
'슈퍼리치'부터 보자. 문재인정부가 돈을 아주 많이 버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좀 더 걷겠다고 발표한 내용을 언론은 "상위 1%, 슈퍼리치들에게만 세금 더 걷는다"는 제목으로 보도했고, 한 방송사는 <전(錢)국민 프로젝트 슈퍼리치2>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에 대해 이우기씨는 "'초고소득층'이라는 말을 '슈퍼리치'로 해석하여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는 우리나라 기자인가, 미국 기자인가. 스스로 물어보길 바란다. 제발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하길 바란다"고 했다.
언론이 흔히 쓰는 '게이트'도 우리말을 더럽히는 사례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권력형 대형 부정 비리사건 등을 가리킬 때 '게이트'를 붙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가령 '최순실 게이트'라 하지 말고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정도로 하면 된다는 말이다.
'윈드시어'도 있다. 언론은 "인천, 제주, 양양공항 등 윈드시어 특보 발효 중"이란 제목을 달았다. '윈드시어'는 풍향이나 풍속이 급격히 변화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기상청도 이 말을 쓰고 있다. 저자는 "대체할 우리말은 없었던 것일까? '난기류' '돌풍' '순간돌풍'과는 아예 다른 말, 다른 상황일까. 길 가는 사람들에게 '윈드시어'라는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물어보고 싶다"며 "국립국어원은 '급변풍'이라 해 놓았는데, 기상청에 알려 바꾸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말을 더럽힌' 사례는 더 있다. '빅 텐트', '코리아 세일 페스타', '보컬', '플래카드', '피켓', '팸투어', '워딩', '아웃도어', '북콘서트', '디스', '싱크홀', '핫 플레이스', '테이크아웃' 등 수없이 많다.
'코리아 세일 페스타'에 대해, 저자는 "이름도 얄궂다. 전국 거의 모든 유통업체들이 대대적으로 물건 값을 깎아준다"며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 '코리아 그랜드 세일' 같은 행사는 누가 주체이고 주인인지 모를 행사다"고 했다.
'개런티'는 '출연료', '더그아웃'은 '선수 대기석', '더빙'은 '(말)입히기', '모닝콜'은 '깨움전화 내지 기상전화'로 하면 된다. 프로그램 <복면가왕>을 사례로 든 저자는 "'보컬'을 '목소리' 또는 '가수'로 바꿔 써도 뜻이 통한다"고 했다.
저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한 말 '워딩'"이라 했고, "참 이상한 말 아웃도어", "디스? 담배 이름이냐"고 했다.
우리말과 외래어 등이 같이 사용되는 사례를 "우리말 속에 낀 뉘를 어찌 할까"라는 단락에 묶었다. 저자는 "샤방샤방의 국정은", "얼빠진 멘붕", "무한리필은 무조건 옳은가", "이번에 '란파라치'라고?", "해괴한 말 '포텐 터지다'", "몹쓸 전염병 같은 '케어'", "'케미', 이런 말 써야 하나", "구역질 나는 '엣지 있다'", "'코스프레'라는 말을 아시나요", "우리말 같지만 우리말 아닌 '썸타다'"로 정리해 놓았다.
이우기씨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을 뽑을 때 국어시험보다 국적 불명의 말을 누가 잘 만들어 내는지 시험을 보는 것 같다. 아무도 모르는 기상천외한 말을 아무렇게나 갖다 쓰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강심장을 가진 사람을 직원으로 뽑는 게 아닌가. 심각하게 의심해 본다. 신문사도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한글날 다가오면 또 온갖 호들갑을 떨겠지"라 했다.
"비틀어지고 배배 꼬인 우리말"도 정리해 놓았다. "극존칭존경황당접미사 '~느님'", "들을수록 역겨운 말 '국뽕'", "목에 걸린 가시 같은 말 '~한다는 계획이다'", "'째다'와 '씹다'는 말", "뜬구름 잡는 말 '느낌적인 느낌'", "아주 거슬리는 말 '~지 말입니다'", "들을수록 기분 나쁜 말 '표밭, 집토끼'", "'전해라' 증후군", "풍성하고 넉넉한 한가위 되세요?" 등이다.
'표밭, 집토끼'에 대해, 저자는 "그들로부터 '표밭, 집토끼' 같은 비아냥거리는 말을 들으며 무시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며 "선거 기간에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는 '배신자'에 대해서도 유권자의 이름으로, 국민의 마음으로 배지를 뺏어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해 나갈 때 유권자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감히 '표밭'이나 '집토끼'에 비유하는 버르장머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고 했다.
"아직도 중국 귀신을 떨치지 못한 우리말"로, 저자는 "벌초하러 가서 쓰는 기계는 예초기", "가성비라는 말을 사람에게 써도 되나", "'대개봉' '그랜드 오픈'이라는 말에 도사린 허영심", "참으로 한심한 말 '품절남' '품절녀'", "'관건'이라는 말, '열쇠'로 바꿔 쓰면 어떨까", "'역대급'이라는 말 써야 할까, 말아야 할까", "'수입산'이라는 말은 '외국산'으로"로 정리해 놓았다.
"새로 만든 꽤 괜찮은 말"도 있다. 저자는 "'엄지척'이라는 말에 엄지 척", "꼭 필요한 '멍 때리기 대회'", "우리 시대의 슬픈 낱말 '혼밥'", "웃프다, 웃긴데 슬프다", "'문콕' 당해 봤나요, 저질러 봤나요", "비교적 잘 만든 말 '심쿵'", "'아재개그'와 '부장님개그'", "쓰담쓰담" 등에서 이런 말을 정리해 놓았다.
이우기씨는 "다시 여러분께 질문합니다. 요즘 우리말, 얼마나 안녕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단 하루도 말과 글 없이 살 수 없다. 말과 글은 곧 생각이다. 생각으로 소통한다. 무인도에 떨어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없다. 말과 글은 우리 생각을 서로 나누는 도구다.
그러나 말과 글이 단순히 도구이기만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는다. 말과 글에 한 사람의 사상이나 가치관이 담기고, 그 말을 쓰는 겨레의 역사와 문화, 민족성 같은 게 담기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 의문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여기까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