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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점령한 거리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우리 도시의 슬픈 풍경이다.
차가 점령한 거리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우리 도시의 슬픈 풍경이다. ⓒ 서상일

다가구 주택 사이로 주차된 차가 빼곡하다. 애초에 부족하게 만든 건물의 주차 공간은 물론이고, 사람이 다니는 보도와 차가 다니는 도로까지 몽땅 차가 점령했다. 주차된 차로 가득한 도로는 운전할 때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위험하다.

왼쪽 골목 또는 오른쪽 골목에서 오는 차가 주차된 차 때문에 보이지 않아 사고 위험이 높다. 마찬가지로 걸어 다니는 사람도 위험하다. 차가 어디서 올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아이들이 위험하다.

차가 빼앗은 만남과 놀이 장소

이는 한국의 흔한 모습이다. 내가 사는 파주도 그렇다. 한때 살았던 교하 소방청이 있는 다가구 주택 단지에는 약 100여 개의 다가구 주택 건물이 있는데, 모든 길을 차가 점령했다. 다른 다가구 주택 단지도 마찬가지다. 지자체에서 법으로 정해진 주차 공간보다 더 많은 주차 공간을 내도록 정한 신도시마저 이 모양이니, 다른 곳들은 말할 것도 없겠다.

이렇게 보도와 도로를 온통 차가 점령한 곳에서는 길은 있으나 길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길은 사람과 차가 다니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길은 전부터 공공의 장소로 주민들이 만나는 곳이고, 아이들이 노는 장소였다.

어린 시절 골목길을 떠올려보라. 골목길에서 동네 주민들이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고, 어르신들은 장기를 두기도 했으며, 아이들은 골목길에서 만나 온갖 놀이를 즐겼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공공의 생활 장소인 그 골목길을 차에게 빼앗겼다.

차가 점령한 곳에서는 장사도 잘 되지 않는다. 이른바 골목 경제나 골목 상권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기 좋은 곳에서 활성화된다. 골목 경제가 활성화되어 있어 '핫스팟'이라고 불리는 서울의 홍대앞이나 망원동, 서촌 등을 떠올려 보라. 그런 곳들은 걸어 다닐 만하고, 걸어 다녔을 때 재미있는 곳이다.

차를 끌고 그곳 주변까지 이동할지언정, 정작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옷을 사고 하는 곳은 걸어 다닐 만하고 걸어 다녔을 때 재미난 곳이다. 만약 이런 곳을 사람이 아닌 자동차 이동을 우선으로 하면 어떻게 될까? 골목 상권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자동차 이용이 몸에 밴 현대인들이지만, 정작 걸어 다니기에 위험하거나 불편해지면 더는 그곳으로 차를 끌고 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길을 차가 점령하면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 서로 불편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알고 보면 그곳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무책임한 현행 주차장법

우리나라의 주차장법은 건물마다 주차장 면적을 확보하게끔 정하고 있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렇게 차가 길을 점령하게 된 데에는 현 주차장법에 원인이 있다.

주차 공간이 차지하는 면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다는 데서 문제가 시작된다. 대략 건물 전체의 4분의 1 정도를 자동차를 위한 공간에 쓰게 된다. 건물을 짓는 대지가 넓다면 그 정도 공간을 빼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닐 테다.

그러나 작은 대지에서는 주차 공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다가구 주택 건축주들은 실제로 차를 세울 수 있는 면적만큼 주차 공간을 만들지 않는다. 허가만 받기 위해서 주차 공간을 흉내 낸다. 실제로는 주차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어서, 주차는 건물에 들어와 사는 사람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이러니 사람이 다니는 보도와 차가 다니는 도로를 온통 차가 점령하게 된다.

건축주 잘못도 있다. 그런데 건축주만 탓할 일은 아니다. 대지가 작은 다가구 주택 단지에서는 건물마다 주차장 면적을 확보하게끔 한 주차장법이 애초에 현실에 맞지 않아 생기는 문제다. 현행 주차장법은 무책임하게 요구 조건만 만들어놓고 알아서 지키라고 하는 법규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더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도시가 망가지든 말든 자동차 산업의 이익을 위해 '차고지 증명제'를 도입하지 않고 '거주자 우선 주차제도'를 선택한 정부의 잘못이 먼저이기도 하다.

건물마다 주차 공간? 공동의 주차 타워!

어쨌든 건물마다 주차 공간을 두도록 정하는 것은 공간 이용을 비효율적으로 만든다. 즉 토지 이용 효율을 매우 떨어뜨린다. 만약 건물마다 주차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블록별로 주차장을 둔다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토지 이용 효율이 훨씬 높아진다!

이를 어떻게 실현할까? 건축주가 주차 공간을 빼지 않는 대신, 주차장 기금을 내도록 정하면 된다. 건물주는 대지 공간을 더 넓게 활용해서 좋고, 주차장 기금으로 주차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서 서로 좋다.

이것은 단지 주차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차에게 빼앗긴 만남과 놀이의 장소를 되찾아오고, 골목 상권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일이다. 그리고 골목에 사람들이 다니면서 만나게 되면 공동체의식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주차로 몰살을 앓는 다가구 주택 단지에 공동의 주차 타워를 만든다면 어떨까? 건물주에게 주차장 흉내만 낸 공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도록 허가하고, 주차장 기금을 내도록 하면 된다. 건물주도 좋고 세 들어 사는 사람도 좋으며 장사하는 사람도 모두 좋은 방법이다. 차가 점령한 거리,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다면 좋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동네 잡지 <디어 교하>에도 실립니다.



#주차 문제#주차 타워#주차장법#보행권#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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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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