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장. 위 학생은 평소 품행이 단정하고 학업 성취가 우수할 뿐 아니라... (중략) 졸업식을 맞이하여 이에 표창합니다. 경기도의회 의장 정기열"위와 같은 내용이 적힌 A4 용지 한 장짜리 상장의 수상자 추천을 위해 2381개에 이르는 경기도 초·중·고등학교 전체가 비상이 걸렸다. 내년 졸업식을 앞두고 학기말 성적처리 기간에 '서류 폭탄'이 떨어진 것이다.
공적조서에 요약서 적은 뒤 다시 개요서까지? 경기도의회 의장이 상을 주는 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수상자 추천을 위해 도를 넘는 수준의 서류를 요구해 교직원들이 뿔 난 것. 교육청 측은 표창 대상자 명단, 공적개요서, 공적조서, 공적요약서, 현지조사 확인서 등 총 5개 서류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경기지역 모든 학교는 '공적 내용'과 '70자 이내의 공적요지' 항목이 있는 공적조서를 쓴 뒤, 이를 다시 요약해 다른 문서에 250~300자 분량의 글을 적어 넣어야 했다. 그 이후엔 개조식 3개 항목으로 줄인 개요서를 써야 했다.
게다가 공적조서 항목엔 학생들에겐 없는 '군번', '직급/계급'까지 적는 항목이 들어 있었다.
이 뿐만 아니다. '현지조사' 확인서는 더욱 더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교직원들이 표창 대상 학생이 살고 있는 동네에 나가 주민들을 만난 뒤 그 학생에 대한 '지역여론'을 적는 항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기도교육청 대외협력담당관실이 지난 11월 13일자 공문을 통해 전체 초·중·고에 요구한 것이다.
이 같은 공문을 본 경기 지역 한 중학교 교사는 "졸업을 앞둔 3학년 학생들을 가르친 교사들을 바쁜 학기말에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다"면서 "상장 1장을 준다고 이렇게 복잡하고 쓸데 없는 문서를 만들게 해야 하는 것이냐"고 하소연했다.
경기 지역 한 고교 교사도 SNS를 통해 "똑같은 내용(공적조서)을 세 가지로 늘였다 줄였다 해서 쓰라고 하고, 현지조사서까지 써야 하니 담임만 복불복으로 일이 산더미"라고 적었다.
졸업식 외부인사 표창의 경우 시장상, 군수상, 도지사상, 시군의회 의장상, 시도의회 교육위원장상, 국회의원상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번 경기도의회 의장상처럼 5개의 자료를 요구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교사들의 증언이다.
교육청 "의회 요구"-의회 "교육청이 수정했어야"왜 이 같은 일이 벌어졌을까?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경기도의회가 요구한 수상자 구비서류를 교육청 차원에서 뺄 수는 없었다"면서 "'지역여론'을 물어보라는 '현지조사 확인서' 또한 같은 이유로 빼지 않았는데, 지역 교육지원청에 '지역여론'은 교사들 여론으로 대신 적어도 된다는 식으로 미리 알려줬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의회 관계자는 "경기도교육청이 학교에 맞게 수정하거나 서류를 줄여서 내려 보내면 됐을 텐데 그대로 내려 보내 우리도 교사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학교 실정에 맞게 서류를 줄이고, 관련 내용도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학교가 작성한 다섯 가지 서류를 경기도의회가 직접 확인하는 걸까? 경기도의회 관계자는 "모든 서류는 경기도교육청이 자체 보관하고 우리는 표창대상자 명단만 받도록 교육청과 협의한 상태였다"고 답했다. 실제로 경기도의회가 만든 '경기도의회 표창 계획' 문서에도 이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교사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자체 회의를 거쳐 지난 6일 교육지원청에 공적조서 등의 서류는 모두 학교에 보관하고, 학생 명단과 수상 내용 등을 간단히 적는 엑셀 서식만 보고하도록 수정 알림 공문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8일 현재, 이 같은 공문이 전달되지 않은 학교도 많다.
경기도교육청, '교원 업무경감' 실적으로 강조하더니... 그 동안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지역을 돌며 "교원 업무경감에 나서겠다"고 약속해왔다. 이에 따라 경기도교육청은 최근 교육부에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표창을 신청했다. 자신들이 상을 받기 위해 자신들이 적은 공적조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기 기관은 법적 근거 없는 관행적 학교업무 축소, 통합, 폐지를 통한 학교 업무 간소화 등을 통한 학교 업무 정상화로 교원 행정업무 경감에 기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