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발생한 경기도 용인의 타워크레인 붕괴 사고는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타워크레인을 설치한 뒤 현장 상황에 맞게 키를 높이기 위해 기둥을 하나씩 위로 조립해 올라가거나, 해체를 앞두고 기둥을 밖으로 빼내어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을 텔레스코핑(telescoping) 이라고 한다.
사실 타워크레인 조종사들 사이에선 이번처럼 상부 기둥의 볼트나 핀을 안전히 빼낸 뒤 유압 펌프로 게이지(타워크레인 상부를 위로 떠받치는 구조물)를 위로 밀어 올리고 내리는 작업은 몹시 위험한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타워크레인의 구조물과 조작 성능이 모두 완벽할 때라는 전제에만 가능한 일이다. 그 외에도 원칙을 벗어난 작업을 해서도 안 된다. 이런 것쯤이야 하고 무시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부르고 마는 것이다.
타워크레인은 이러한 작업을 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조종사는 물론 아래쪽 기둥의 안전 난간에서 작업을 거들고 있는 4~5명의 작업자 모두 죽거나 크게 다치게 된다.
이런 잦은 사고 때문에 몇 년 전부터는 텔레스코핑 작업이 있는 날엔 노조에 가입된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탑승을 거부하고 있다. 그만큼 텔레스코핑 작업이 매우 위험하다는 걸 이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 모두는 인식하고 있어서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와 같은 작업을 하기 위해선 누군가는 반드시 타워크레인 조종석에 올라가 있어야 한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기둥이 필요할 땐 훅에 하나씩 매달아서 위로 올려 줘야 하고, 또 해체할 땐 밖으로 밀어낸 기둥을 아래로 내려줘야 한다.
그 외에도 텔레스코핑 작동 직후엔 기둥을 훅에 매단 상태로 트롤리(기차 레일처럼 생긴 JIB 구조물을 따라 앞뒤로 움직이며 훅에 매단 물건을 옮겨주는 중요한 역할을 함)를 앞뒤로 약간씩 움직여서 균형도 잡아 줘야 한다. 그래서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작업 팀원 중에는 타워크레인 조종을 할 줄 아는 사람도 함께 따라 다닌다. 물론 이 사람도 타워크레인 조종사 자격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자격증을 취득한 지 얼마 안 된 초보이거나 경력이 좀 있다 하더라도 취업이 쉽게 안 되어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사람이 대다수다.
여기에도 보이지 않은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날 임시로 투입된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같은 기종을 조종한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낯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타워크레인을 조종하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듯이 장비마다 기본적으로 세팅되어 있는 것이 약간씩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꼼꼼한 성격의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원래 원칙대로 자주 점검하여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 반면에 별로 민감하지 않은 조종사는 장비가 멈추지 않고 그냥 돌아가기만 하면 아무런 사전 점검도 하질 않고 대충 일만 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러다 보면 작동 레버가 너무 뻑뻑하거나 타이머가 잘못 맞춰 있게 되면 조금 늦게 반응하고 늦게 정지하는 장비도 만나게 된다.
그 외에도 점검해야 할 것이 꽤 많이 있는데 이런 문제를 제대로 전달받지 않고 투입된 대리 조종사는 경험이 풍부하지 않으면 쉽게 당황하게 된다(10일 용인 사고를 조사 중인 고용노동부와 경찰 등에 따르면, 조사 당국은 목격자로부터 "사고 직전 타워크레인 트롤리가 움직이는 것을 봤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트롤리는 타워크레인 앞쪽 수평 구조물에 설치되어 있다.
우리는 사고 직전 트롤리가 움직였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트롤리가 처음 어느 위치에 고정되어 있었으며, 거기서 다른 곳으로 얼마나 움직였는가 하는 거다.
원칙적으로 텔레스코핑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에는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트롤리를 움직여서는 안 된다. 다만 게이지가 타워크레인 상부를 살짝 들어 올렸을 땐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앞뒤로 약간씩 움직일 필요는 있다. 이땐 아래쪽 리더 작업자가 게이지의 수직 상태를 눈으로 직접 봐가며 "트롤리 앞으로!" 또는 "트롤리 뒤로!" 움직이라는 신호를 보내 줘야 한다.
이때 말고는 트롤리를 조종사 맘대로 움직여선 안 된다. 용인 사고에서 추락하기 직전에 트롤리가 움직였다는 게 사실이라면 몇 개의 상황을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첫째, 아래쪽에서 리더 작업자가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트롤리를 움직여 달라는 신호를 보냈을 수 있다. 둘째, 처음 트롤리를 이동하라는 신호를 한 뒤 적당한 위치에서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만약 조종사가 그 신호에만 계속 따르고 있었다면 그는 완전 초보가 확실하다. 경험이 풍부한 조종사는 밑에서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지 않더라도 적당한 지점에서 멈추고 아래를 주시한다. 왜냐하면 트롤리가 처음 고정된 위치에서 몇 m 이상 추가로 움직여 중심을 잡아 주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셋째,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트롤리 작동 레버를 살짝 건드려서 아무도 모르게 트롤리가 계속 움직이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때 만약 밑에 있는 작업자들이 텔레스코핑 작업 중에 있었더라도 타워크레인이 추락할 만큼 트롤리가 한쪽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면 당연히 비정상적인 소음이 발생하기 때문에 금방 눈치를 채고서 어떤 조치를 취했을 것으로 예상은 된다.
넷째, 바닥에서 훅에 기둥을 매단 뒤 트롤리가 아직 작업 위치(텔레스코핑 지점)까지 도달해 있지 않은 상태(기둥을 공중으로 끌어 올리며 제 위치를 찾아 가는 도중)인데 작업자가 기다려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텔레스코핑 작업을 시작했을 수도 있다.
현장에서 이와 같은 긴급 상황을 접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고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대형 사고로 이어질 확률은 매우 높은 것만은 확실하다. 타워크레인 사고는 조종사의 실수, 함께 호흡을 맞춰 가며 일하는 작업자의 실수, 그외에 오작동 또는 타워크레인 구조물과 부품의 노화로 인해 발생한다.
부디 지난번에 내놓은 정부의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어 이번과 같은 사고 소식이 다신 안 들리길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경수 기자는 28년 경력의 타워크레인 조종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