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채은 송병길 인턴기자 = "의무교육이라 연말까지 받아야 하는데…" "성희롱예방교육이요? 무료로 해줄 테니 대신 보험 상품 설명 들어보세요"
직장 내 성희롱예방교육을 대행하는 위탁교육업체 A사에 교육을 원하는 회사 관계자인척하고 전화를 걸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을 A사 팀장이라고 소개한 김미숙(가명)씨는 무료로 교육해주겠다고 제안한 뒤, 총 50분 수업시간 중 25∼30분 정도는 세금 절감방법, 연령에 따른 재테크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전화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결국 목적은 보험 가입을 권유하겠다는 것. 나머지 20∼25분간 얼마나 충실하게 성희롱 예방교육을 할지는 미지수다.
더 황당한 것은 성희롱 예방교육만 수강해도 법정 의무교육 3가지(성희롱예방교육, 개인정보보호교육, 산업안전보건교육) 이수증을 한꺼번에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문제가 없겠느냐"라고 묻자 "노동부 직원이 많지 않아서 감시가 허술하니까 걸릴 일이 없을 것"이라고 둘러대기까지 했다.
실제 위탁교육업체에서 4개월 동안 근무했다는 김효진(가명)씨도 노동부 감시가 허술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이 일했던 위탁교육업체도 사실상 보험 영업을 목적으로 교육을 진행했다며 심지어 영업사원들이 성희롱예방교육 전문 강사로 가장해 보험계약을 체결한 뒤 수수료를 받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지난 1999년에 제정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3조에 따라 상시 근로자 10인 이상인 기업은 직장 내 모든 근로자에게 1년에 한 번, 한 시간 이상 성희롱예방교육을 해야 한다. 상시 근로자가 10인 미만인 기업은 홍보물로 교육을 대체할 수 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 300만원이 부과된다.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1년 내내 단속하는 건수는 약 1만2천건에 불과하지만, 지난 2016년 현재 전국 사업체(기업) 수는 약 395만곳(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에 이른다고 하니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질 리 없다. 위탁교육업체가 "노동부 직원이 많지 않아 감시가 허술하다"고 비웃으며 과태료 300만원을 내기 싫어하는 기업에 보험을 팔고 있는 셈이다.
노동부 감사는 '허술'... 마땅히 처벌할 방법도 없어 문제는 이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성희롱 예방교육을 제재할 방안이 사실상 없다는 점.
성희롱예방교육은 성희롱 예방 무료 교육을 하는 강사에 대한 자격 기준이 따로 없고, 교육일지와 참석자명단, 사진 등만 증거로 갖고 있으면 교육을 한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 설령 보험 영업사원이 성희롱예방교육을 진행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관계부처는 "제재할 법안이 없어 처벌이 힘들다"고 해명할 뿐이다. 노동부 여성정책고용과 김현민 사무관은 "현재로선 기껏해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편법영업(보험 판매)만을 규제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성희롱 예방 위탁교육업체의 편법 보험영업을 막을 방안조차 없는 상황에서 피해를 보는 건 근로자들뿐. 노동부가 공개한 '2012∼2016년 성희롱 진정사건 접수현황'을 보면 성희롱 진정사건 접수 건수는 2012년 249건에서 지난해 552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성희롱 예방교육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불확실하다는 뜻이다.
이를 놓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권익안전실 장미혜 실장은 "성희롱예방교육을 의무교육으로 지정한 만큼 나라에서 책임지고 진행해야 한다"며 "성희롱예방교육 전문가 과정을 만들어 숙련된 강사의 수를 늘리고, 교육받는 업체 특성에 따라 맞춤형 콘텐츠로 효율성 있는 교육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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