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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그림
겉그림 ⓒ 분홍고래

우리 눈에 뜨이지 않는 깊은 두멧자락에서 조용히 살다가 어느새 사라진 도마뱀이나 풀벌레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는데 어느 숲에서 즐거이 살다가 그만 소리 없이 사라진 짐승이나 새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제는 맹꽁이나 두꺼비 같은 물뭍짐승조차 자칫 이 땅에서 몽땅 사라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개구리마저 이 땅에서 모조리 자취를 감출 수 있습니다. 그렇게 흔하던 제비가 어느덧 매우 드문 새가 되었고, 뜸부기나 꾀꼬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새가 되었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참새나 박새나 딱새처럼 사람들 곁에서 흔히 날아다니던 새도 하루아침에 씨가 마를 수 있어요.

나의 고향 아프리카에서는 얼룩말과 콰가를 교배해서 우리의 멸종을 막으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나를 재창조하는 게 가능할까? (1쪽/콰가 얼룩말)

사람들은 참 이상해. 아무 생각 없이 땅을 망가뜨리고 곧 후회하곤 하지. 숲을 몽땅 망가뜨리고는 얼마 안 돼서 지구 온난화를 막겠다며 방법을 찾고 있으니 말이야. 정말 바보 같아. (3쪽/상아부리 딱따구리)

 콰가 얼룩말
콰가 얼룩말 ⓒ 분홍고래

아리아나 파피니 님이 빚은 그림책 <이제 나는 없어요>(분홍고래 펴냄)를 읽는데, 첫 대목부터 움찔합니다. 다음 쪽에서는 찌릿합니다. 저는 '콰가 얼룩말'이나 '상아부리 딱따구리'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어요. 그러나 이 같은 지구이웃은 틀림없이 이 지구에서 무척 오래 살았고, 무척 아늑하게 살았으며, 무척 아름다이 살았다고 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이러한 지구이웃을 처음 마주하고 난 뒤에 대단히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대요.

아니 '사람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지구이웃하고 사이좋게 살던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운하가 개통되면서 관광객이 늘어났고 술집, 식당, 호텔 그리고 자동차 대여점 등이 늘어나면서 우리가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했어. 결국, 나는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말았어.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몰라. 내가 이곳에 계속 살았다면, 인간들이 이곳을 망가뜨리는 것을 지켜봐야 했을 테니까. 육지뿐만 아니라 푸른 하늘까지도. (5쪽/테코파 민물고기)

수수한 텃사람은 지구이웃을 먹잇감으로 삼더라도 먹이로 삼아야 할 적에만 알맞게 사냥을 했습니다. 이를테면 북중미 물소떼를 들 수 있어요. 북중미 텃사람은 물소를 함부로 사냥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달리 북중미에 전쟁무기를 앞세워 들어온 서양사람은 재미삼아 물소떼를 사냥했어요. 기나긴 해에 걸쳐 물소떼하고 텃사람은 함께 살아왔지만, '어떤 사람들'이 총으로 사냥놀이를 하면서 이 땅에서 한 갈래 지구이웃은 자취를 감추어야 했습니다.

그림책 <이제 나는 없어요>는 이 지구에서 '어떤 사람들' 때문에 자취를 감춘 지구이웃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고서 하늘에서 살아가는 지구이웃이 '어떤 사람들'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를 들려주는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상아부리 딱따구리
상아부리 딱따구리 ⓒ 분홍고래

나무가 사라지자 우리의 사냥감은 사라지고 말았어. 더는 사냥을 할 수 없었어. 그래서 우리는 하나둘 굶주리고 사라졌지. 우리는 인간의 것을 빼앗기 시작했어. 어쩌겠어. 너무 배가 고팠는걸. 사람들이 기르는 가축이라도 사냥할 수밖에 없잖아. (11쪽/북아메리카 퓨마)

그동안 '어떤 사람들'은 하나같이 서양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전쟁무기를 앞세워 이웃나라로 쳐들어가거나 괴롭혔어요. 이들 서양사람은 이웃나라 사람들도 괴롭혔으나, 숲짐승이나 냇물고기나 풀벌레나 물뭍짐승 같은 지구이웃도 괴롭히거나 마구 죽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서양사람 아닌 한국사람도 '어떤 사람들'이 됩니다. 가까이에는 4대강사업이 있고, 숱한 막개발이 있습니다. 올림픽을 치른다면서 숲이며 멧골을 엄청나게 깎아냅니다. 고속철도를 놓는다며 골골샅샅 파헤쳤고, 작은 땅에 고속도로가 참 많은데 아직도 새로 고속도로를 더 내려 하지요. 집집마다 적은 돈으로 깨끗한 전기를 쓰도록 이끄는 정책은 펴지 않고, 정갈한 숲이나 바다를 망가뜨리려는 엄청난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 정책만 펴요.

사람들은 우리를 사냥하는 것에만 눈이 멀어 우리가 사라지는 걸 깨닫지 못했지. 이제 나는 내 친구들과 이 높은 하늘에서 살고 있어. 아주 잘 살고 있지. 비록 지구에서는 사라지고 말았지만, 사냥도 없고 전쟁도 없는 이곳에서 우리는 매일매일 웃으며 하늘을 날기도 하지. (13쪽/도도새)

이 땅 아닌 저 하늘에서 사는 옛날 지구이웃은 한목소리를 냅니다. 나중에 뉘우칠 막개발을 왜 자꾸 하느냐고 물어요. 왜 평화로운 살림이 아닌 전쟁무기를 때려짓는 길로 가느냐고 물어요. 숲짐승이나 냇물고기만 괴롭히는 '어떤 사람들'이 아닌, 왜 이웃한 숱한 사람들까지 괴롭히는 짓을 일삼느냐고 묻습니다.

지구에서 사람들이 전쟁을 일으킨 발자취를 돌아보면 하나같이 돈으로 이어집니다. 이웃한테 있는 돈을 가로채려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웃하고 함께 나누려 하지 않으면서 전쟁이 일어납니다. 없거나 모자란 이웃하고 나누려 하지 않으니 전쟁으로 불거지고, 있거나 넘치는데 이웃하고 나누려 하는 마음이 없기에 전쟁으로 치닫습니다.

 테코파 민물고기
테코파 민물고기 ⓒ 분홍고래

이웃마실을 하는 수수한 발걸음이 아닌 여러 관광상품도 돈하고 맞닿습니다. 아름다운 숲을 관광지로 개발한다면서 거꾸로 아름다운 숲을 망가뜨리기까지 해요. 국립공원에 놓으려는 하늘차(케이블카)가 그렇고, 국립공원으로 쉽게 오르도록 돕는다며 자꾸 닦는 찻길이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잡아 가방과 장갑을 만들었어. 지금 나는 양쯔강에 없어. 이제 나는 하늘이라는 아름다운 강과 호수를 헤엄치지. 가끔은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 사이로 나타나기도 하고 바람이 되어 여행하기도 해. (35쪽/양쯔강 돌고래)

그림책 하나를 아이들한테만 읽히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은 그림책 하나를 아이들 곁에서 어른들이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곁에서 우리 어른들이 낯부끄러운 줄 느껴야지 싶습니다.

아이들이 묻는 말 "어머니 아버지, 왜 이런 지구이웃이 이 땅에서 사라져야 했어요?" 하고 물을 적에 "어른으로서 미안하구나. 앞으로는 이런 미안한 일이 없도록 우리 어른들도 힘을 낼게. 너희 아이들도 슬기롭고 아름답게 힘을 내 주렴" 하고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함께 바꿔요. 이제부터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지구를 물려주고, 숱한 지구이웃하고도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어요.

덧붙이는 글 | <이제 나는 없어요>(아리아나 파피니 글·그림 / 박수현 옮김 / 분홍고래 / 2017.10.31. / 12000원)



이제 나는 없어요

아리아나 파피니 지음, 박수현 옮김, 분홍고래(2017)


#이제 나는 없어요#숲책#멸종동물#환경책#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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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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