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하다'는 말의 의미를 분명한 이미지로 각인시키기엔 산이 알맞다. 그것도 먼데 산들이 농도를 흐려가다 마침내는 있어도 가늠이 안 되고, 하늘과의 경계조차 모호해지는 높은 산정이라면 '아득하다'는 말이 저절로 한 호흡에 뱉어진다.
한계령은 그런 산정은 아니다. 대부분의 강원도 산들이 그러하듯 산 앞의 산과 산 뒤의 산들이 연속적으로 중첩되는 모습으로 산수화의 한 부분처럼 보인다. 물론 동쪽 양양군의 해변까지 조망되어 어느 정도는 아득하다는 생각도 든다.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때만 되면 한동안 열병처럼 이 풍경이 사무쳤다. 먼 이국에 나가보아야 애국자가 된다고 하듯, 어려서 외지생활을 하다 보니 한계령이 막막한 그리움으로 자리했다. 더구나 당시엔 아침 8시 반부터 일을 시작했고, 저녁 8시 반에 끝난다고는 했으나 2시간 정도는 예사로 야간작업을 했다. 한 달에 격주로 일을 하고 1만5천 원 월급을 받아 생활비로 7천 원씩 걷고 남는 8천 원으로 목욕탕에 가거나 용돈을 썼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때가 언제 적인데 월급이 그만큼이었느냐'고들 한다. 1977년부터 객지살이를 했는데 당시 짜장면 한 그릇에 200원 했다. 그때면 지금 50대는 누구나 짜장면을 먹은 추억은 있다. 물론 짜장면 값 정도는 기억난다고 하는 이들도 더러 있겠지만 자신이 번 돈으로 사 먹은 기억이랄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나만의 기억이라 주장할 일은 없다.
백기완 선생님의 시, '깜떼'란 말은 무슨 뜻일까
산 너머의 산, 산 뒤의 산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그리움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무심한 표정으로 막연히 먹먹해지는 그리움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산 너머의 산을 동경하는 이의 마음을 비로소 헤아릴 줄 아는 측은지심의 자세로 평등을 구가할 바탕을 이룬다.
지난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눈 내린 아침에 느꼈던 감정은 평등의 가치와 권리가 바람에 이리저리 쓸리는 눈발 같았다. 그저 하나의 풍경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견뎌내고 극복해야만 할 시련으로 다가왔다. 어디에고 공평하게 내려 또 다른 풍경이 되어 마음 푸근하게 만드는 이 산의 눈발과는 달라도 너무 많이 달랐다.
백기완 선생님께서 그 겨울 여덟 번째 타오르는 촛불에 바로 이 '그리움'을 제목으로 하는 기원을 하셨다.
그리움아, 이 그리움은 어이해 지칠 줄 모르는고
발가락이 부르트고 허리다리가 들꼬여도
이 그리움은 어이해 멈출 줄을 모르는가
그날도 그랬었지
우리들은 거꾸로 매달린 채 모든 것을 잃었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죽음만은 두렵지가 않았다
마침내 네 그리움의 알짜를 대라
네 그리움의 빛깔은 무어냐고 달구칠 때 떵떵 댔었지
내 그리움의 알짜는 자유다 왜 잘못 됐어
내 그리움의 빛깔은 마알간 물빛 민주주의다
왜 잘못 됐냐구 야 이 새끼들아
죽이려거든 단 한 방에 죽이라고
그 강요된 좌절과 깜떼를 씹어 돌리던 그날
꽁꽁 얼붙은 눈 위에 바시시 꽃 한 송이 그려놓고
이제 우리들의 역사는 죽음을 넘어선 의지로 이어진다
이제 우리들의 하제는 뜨거운 눈물로 굽이칠 거라고
아, 한없이 몸부림치던 그리움이여달구름도 머리가 하얗게 샜는데도
또다시 밤이 새벽을 삼킨 이 캄캄한 먹밤
껌벅껌벅 나서는 그 그리움은 무엇이던고
말하라 그 그리움은 무엇이던고불쌈꾼 백기완 선생의 그리움은 참된 민주주의와 자유란 걸 안다. 그러나 '빨갱이들이 집단으로 난동질을 치는' 광화문 광장에 나간 나를 '아주 특이한 정신을 지닌 놈'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해를 시킬 방법이 없었다. "광화문에 가더니 출세를 했어. 금뱃지(세월호 노란리본)도 달고"라는 비아냥에 "아주머니 자식이나 손주가 같은 일을 당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퍼붓고 나올 땐 정말로 어느 세월에 서로가 이해를 할 날이 올까 싶었다.
백기완 선생님의 시엔 특별히 해석을 달아야 되는 언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 시 '그리움'에도 몇 곳에 그런 시어가 사용됐다. 알짜는 실체나 정체로 이해하면 틀리지 않으리라. 그런데 하제야 희망이란 건 알고 있었고, 달구름은 세월이란 정도로 알고 있었으나 '깜떼'는 도무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구글 검색을 해도 <수정된 검색어에 대한 결과: 깜뜨>로 나오니…
1월 말에서야 이 의문이 풀렸다. 세종대왕동상 뒤에 6개의 돌기둥이 있다. 그곳에 토요일이면 아침부터 벽체를 세우고 걸개그림을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이곳을 백기완 선생님께서는 '바람찬 전시장'이라고 하셨다. 그곳에서 벽체를 막 세워 놓고 걸개그림을 걸 준비를 하며 인사동 나무화랑의 김지하 대표가 도착하기를 기다릴 때 장경호 화백과 동행하셔서 백기완 선생님께서 도착하셨다.
"선생님, 지난해 12월이었던 거 같은데 제가 선생님의 시를 급하게 적어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에서 도저히 알 수 없는 시어가 있어서요. '깜떼'가 무언지요?"
"절망이야. 절망을 깜떼라고 했어!"
그때 김진하 대표가 막 도착을 해서 급하게 인사를 드리고 걸개그림을 걸기 시작했다. 일을 끝내고 텐트에 연장들을 가져다 놓고 주머니에 있던 선생님의 시를 적은 종이를 꺼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절망'으로 바꿔 보았다. '달구름'은 세월로 바꾸면 깊은 맛이 떨어진다. 물론 다른 세 부분도 바꿔도 불편하지 않으나 선생님의 시란 느낌은 많이 덜하다. 마치 간이 안 맞는 음식을 입에 넣은 듯.
겨울 한계령의 하얀 눈꽃들이 보고 싶었다
상징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사람의 말은 그 대상이 무엇이건 허공중에 흩뿌려진 단음에 지나지 않는다. 특별함을 강조하고, 거기에 상징적인 가치를 부여했을 때 드디어 언어의 특질이 보다 강력하고 단단한 형태를 갖춘다.
내 고향 양양 사람을 일러 곧잘 "양양하와이"라 한다. 양양에 하와이가 있을 턱도 없고, 이 말은 영동권의 다른 고장 사람들과는 기질이 다르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모양이다. 바꿔 말하면 양양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를 굽히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다른 고장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과 다르더라도 끝까지 의지를 굽히지 않고 나간다는 뜻이다.
60년대에서야 나뉘었지만 속초도 넓은 범주에서는 양양에 속한다. 실질적으로 설악산의 대부분 지역이 양양과 속초에 걸쳐 있다. 강고하게 자신의 의지를 지킬 줄 아는 품성은 양양군이 품고 있는 설악산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실로 오랜만에 지난 겨울 한계령의 하얀 눈꽃들이 보고 싶었다. 가깝게 있으면 무덤덤했을 풍경이, 물리적으로 떨어진 자리에 있다 보니 그리움으로 자리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