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희생자 유가족은 소방당국이 설명한 초기 진압 과정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23일 오후 충북 제천체육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유가족대책회의에서 제천 소방서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다.
유가족이 "(2층) 유리창을 깨라는 지령을 내렸나"고 재차 따져 묻자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은 "(무전기로) 유리창을 깨라는 지령을 내리지 않았다"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이어 유가족은 소방당국이 불법 주차된 차량을 치워 구조 진입 시간이 늦어졌다 하지만, 유가족을 포함한 시민들이 직접 치우며 시간을 벌었다고 주장했다. 불이 난 21일 오후 4시 15분, 소방당국에서 사다리를 설치하는 순간에도 2층 여탕 한쪽에는 불과 연기가 없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가족 반박은 크게 ▲ 소방차 진입 시 주차 차량 사이드 브레이크는 누가 풀었는가 ▲ 2층 유리는 왜 빨리 깨지 못했는가 ▲ 최초 2층 진입 시 쓰러져있던 2명을 왜 구조하지 않았나로 나뉜다. 다음은 소방당국의 해명과 유가족의 반박이다.
[쟁점 1] 소방차 진입 시 사이드 브레이크는 누가 풀었는가
소방당국 : 소방서 측은 소방도로에 주차된 불법주차 차량으로 인해 고층 구조에 사용되는 굴절차 진입이 어려웠다. 소방대원들이 차량 유리창을 깨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차를 밀었고, 나중에 시민들이 도와줬다. 건물 주변 차도에 불법 주정차 차들이 많았기 때문에 (소방차가) 늦게 도착했고 결국 초기 진화에 실패한 것이다. 유가족 : 소방대원이 유리창을 깬 것이 아니다. 유족이 나서서 급하게 차량 유리를 깨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었다. 다른 유족들과 시민이 도와서 차량을 치웠다. 소방당국 : 소방대원이 차량 유리창을 깼다는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다. [쟁점 2] 2층 유리는 왜 빨리 깨지 못했는가
소방당국 : 화재 진압과 2층 진입을 동시에 진행하지 못했던 것은 소방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차장의 차 16대와 2톤의 LPG 가스통이 터지면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LPG 가스통 부근의 열을 줄이려고 힘쓰느라 늦게 2층 통유리를 깰 수밖에 없었다. 유가족 : 오후 4시 15분쯤에 사다리를 설치했는데 작동이 제대로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여탕 한쪽에는 불과 연기가 없어서 사다리를 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산소가 들어가서 불이 번질 수 있다고 판단(백드래프트)할 수 있지만, 실제로 38분에 유리 깨고 들어갔을 때 불 없이 연기만 있었다. 그리고 유족들이 현장에서도 '제발 깨 달라'고 달라붙지 않았나. 그때 소방대원은 "물러나 주세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다시 119에 신고해서 지령을 내려달라고 했으나 결국 지령을 내리지 않았다. 맞지 않나?소방당국 : 네, 유리창 깨라는 지령은 없었다. [쟁점 3] 최초 2층 진입시 쓰러져 있던 2명을 왜 구조하지 않았나
소방당국 : 구조대원들이 진입해서 쓰러져 있는 두 명을 발견하고, 그 뒤에 1층으로 내려와서 보고한 후에 다시 들어가서 사람들을 들고 나왔다. 진입할 때 공기호흡기를 들고 가는데, 그러면 구조자들을 들고 내려올 수가 없다. 인원이 보충됐을 경우에는 들것을 이용하는 게 가능했지만, 그때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 또한 사망이 확실하면 가능하면 현장 보존을 하고 나서 처리하게 돼 있다. 유가족 : 두 명의 구조대원이 한 명을 들거나 업고서라도 내려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망했는지 단순히 혼절했는지 정확히 확인도 안 한 상황이었다. 그곳에서 심폐소생술 하는 것도 본 적도 없고, 사다리차로도 한 명밖에 못 구했다. 이미 진입할 때, '죽었을 거다'라고 생각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사람을 처벌하자는 게 아니야", "시스템을 바꿔야 하지 않나"
제천 화재 참사를 '인재'로 규정한 유가족대책본부의 요구는 분명했다. 책임자 개별을 처벌하자는 게 아니었다. 2층 유리창을 깨는 데 시간이 지체된 것도 LPG 가스통 폭발을 저지하면서 동시에 구조 작업을 하지 못 한 건 결국 '소방인력이 부족했기 때문' 아니냐는 것이다.
"현장에서 일했던 소방관 탓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을 처벌하자는 게 아녜요. 다만 지금 이 시스템이라면 당장 비슷한 사고가 났을 때, 사람은 또 죽어 나가지 않겠습니까. 골든타임 놓쳤다는 거 인정하셨잖아요. 그럼 앞으로 바꿔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이들은 소방관이 부족하고 장비가 부족해 시간이 걸린 만큼 소방 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전방위 구조 활동을 벌일 수 있을 만큼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 말씀 충분히 공감합니다. 대통령께서도 소방을 국가직으로 만들고 보완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제천에 소방인력이 총 124명인데 3교대를 합니다. 실질적으로 하루에 출동할 수 있는 인원이 50명이 채 안 됩니다."유가족 말에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서장은 "어제는 유가족 앞에서 소방인력 문제를 언급하기 어려웠다"라며 "더 많은 소방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답했다.
충북제천소방서의 장비와 인력은 충북에서도 최악인 상황이다. 지난 2014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는 "제천소방서의 장비와 인력이 충북에서 최악인 수준"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충북참여연대는 "화재나 구급 출동시 차량 노후화로 출동이 지연된다면 골든타임을 놓쳐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2014년 당시 제천소방서 소속 58대의 소방차량 가운데 40%인 23대가 낡은 차량이었다. 소방공무원 1인당 담당면적도 도내에서 가장 높은 1인당 8.7㎢를 담당했다. 제천소방서는 <오마이뉴스> 확인 요청에 2014년 조사 이후 늘어나거나 교체된 소방차는 없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0월 정부는 오는 2019년 1월부터 지방직인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일괄 전환한다고 밝혔다. 다만 소방인력을 당장 확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2018년 예산안 통과 시 정부는 소방관, 119구조대 충원을 골자로 한 예산 편성을 요구했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퍼주기 예산'이라며 정부 요구를 거절하며, 예산 삭감을 주장했다. 결국 정부 원안에서 2746명(22.5%) 줄어든 9475명으로 합의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