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웃으며, 울며, 의문이 가득 담긴 표정, 아무런 생각이 없는 듯한 여러 수 천의 얼굴을 가지고 나를 대하며 때로는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 상황을 접하고 산다. 그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려내는 작가가 있다. 서울시 종로구 광화랑에서 오는 26일까지 <윤회의 강>을 전시하고 있는 엄순미 작가다. 전시장을 지키고 있는 엄순미 작가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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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은 간다, 어떤 퍼즐처럼. 엄순미. 110 x 190cm. 종이봉투, 드라이버, 색연필. |
ⓒ 김미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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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라는게 불교 용어이기는 하지만 꼭 종교적인 색채를 부여해서는 아니에요. 제가 그림을 그린 용지도 사실 구김이 있다거나 작은 점 등이 있어 파기될 입장에 놓인 청첩장 봉투들이예요. 그림은 그리고 싶은데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 큰 작업은 힘들었어요. 그때 버려지게 될 청첩장 봉투들이 눈에 들어왔죠. 시간 날때마다 짬짬이 작은 드라이버로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했는데 새로운 작업이었죠. 청첩장 봉투의 입장에서 본다면 윤회가 되는 셈인가요?"(관련기사 :
버려지는 청첩장이 아까워서, 그림을 그렸더니)
짧은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재미있었어요.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 직장에서나, 영화를 보다가도 뭔가 마음을 끄는 표정을 만나면 바로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하는데, 첫 느낌과는 다르게 채색을 할 때 표정이나 느낌이 달라지기도해요. 그런데 희안하게도 채색이 끝나면 또 첫느낌이 살아나는 경우가 있어요. 다른 듯 하기도 하고, 같기도 하고."
엄순미 작가는 잘 웃는다. 웃음이 많다. 두 아이를 둔 푸근한 이웃집 아줌마를 닮아 있다. 엄작가는 그림마다 사인을 "몽심"이라고 새겨놨는데 딱 어울린다.
"저는 꿈 몽(夢)자를 좋아해요. 꿈 꾸는 삶, 언제나 꿈꾸는 마음으로 살고파서 1회 개인전때 테마를 몽심의 노래로 정했어요. 그때 스승님께서 몽심을 호로 쓰라고도 하셨구요. 누가 뭐래도 몽심(夢心)으로 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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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관 세상세 마음심. 엄순미. 100x126cm. 광목, 먹, 아크릴 |
ⓒ 김미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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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작가는 또 웃는다. 본인을 이방인이라고도 이야기 하면서 민족미술인협회에 가입한 계기도 이야기 한다.
"경희궁 미술관에서 전시가 있었는데 작가들의 역사 의식이나 현실참여에 대한 자세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치열한 의식, 토론 등 일상에서 가지지 못했던 표출들을 통해 눈을 떴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아직 철 없는 몽심이일뿐이예요."두 아이를 키워낸 여자의 나이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이며, 적지 않은 경험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 없이 살고 싶다는 이야기는 내면의 순수함을 잃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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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파란 풀잎이 달에 떠서 흘러가더라. 엄순미. 345x99cm. 광목, 먹, 아크릴. |
ⓒ 김미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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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만큼의 방황이 있었을 것이고, 경험만큼의 아픔도 있었을 것이다.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는 웃음의 주름살 밑으로 작품에 대한 고민들을 넘겨 짚어 보면서 작품들을 돌아 본다.
유난히 마음에 담고 싶은 작품 한 점이 눈에 들어 온다. 가지런히 머리를 뒤로 묶은 뒷모습에 파랑새와 붉은 입술과 어깨에 꽃들이 앉아 있다. <다시 또>라는 제목이다. 어쩌면 제나름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하여 첫걸음을 디딜 때 양 어깨 움츠리지 말라고 예쁜 꽃들을 달아주는 엄 작가의 마음 씀씀이가 아닐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