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에선 농한기에 접어들면 대동회 또는 마을갈이를 한다. 마을 공동체 정신이 예전보단 많이 쇠락했지만 도시보다는 이웃사촌 정서와 유대가 여전히 강하다. 주민 대다수가 마을에서 나고 자랐거나 시집장가를 와서 아이 낳고 농사지으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왔기 때문이다.
면사무소가 있는 있는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1리를 우리는 적성면 본동이라 부른다. 적성면의 중심 마을이란 뜻이다. 사람이 많이 살던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면사무소와 학교, 소방서, 파출소, 보건소, 농협지소 같은 공공기관들이 모여 있었다. 식당과 각종 상점들이 즐비했고 적성초등학교엔 학생이 8백여 명에 이르렀다. 벼, 고추, 마늘을 비롯한 마을 농산물 수매가 있는 날이면 농협 마당이 들썩거렸고 식당과 술집마다 흥청거렸다.
1970년대부터 농사 지어 먹고 살기 힘들어 도시로 도시로 주민들이 떠나더니 1985년 충주댐 완공으로 인해 강 건너 옛단양읍이 수몰되어 버리자 강윗마을인 적성면도 몰락했다. 마을 주민이 썰물처럼 읍내와 도시로 떠나가자 인구가 급감하고 학생이 줄자 1999년 마을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 적성초등학교가 폐교되었다. 학교가 폐교되자 마을은 더욱 더 졸아들었다. 파출소가 문을 닫더니 소방서도 없어졌다. 보건소는 근근히 유지되고 있고 농협지소도 적자가 많다며 문닫으라는 압력이 거세다.
현재 하1리 마을 주민은 40여 명이다. 대동회에 30여 분이 모였다. 이장님이 지난 1년 마을 기금 입출내역과 마을 행사 보고를 했다. 올해 세번째 임기를 시작한 7년차 최종욱 이장님은 할아버지들의 반대를 뚫고 할머님들이 압도적 지지로 삼선에 성공했다. 우리 마을은 할머님들이 수적으로도 권위로도 다수파다.
대동회에서 가장 중요한 순서는 점심 식사다. 2017년 대동회 점심 메뉴는 소고기다. 가난한 시골 사람들이 대동회 날 만큼은 돈 걱정 없이 마을 기금으로 풍성한 잔치를 한다. 칠팔순 부녀회원들이 차린 점심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으며 올 한해를 되돌아보고 내년 대동회에도 오늘처럼 함께 모여 밥 먹기를 기원한다. 대다수 주민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고령이기에 내년에도 밥 같이 먹자는 건 이별 인사이기도 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마을회관 앞 마당에 50~60대 청년(?)들이 소주와 안주거리를 놓고 둘러 앉았다. 40대 중반인 나는 10년 째 마을에서 막내다. 청년 축에도 못낀다. 마을 소멸을 날마다 겪고 있는 안타까움을 소주잔에 담아 목으로 넘긴다.
"큰 일이여, 큰 일. 답이 안 나와. 농사는 해가 갈수록 애롭고, 사람은 점점 더 줄고 우짤라는 가 모르것어."해병대 출신으로 환갑을 갓 지난 윗집 형님이 불콰한 얼굴로 한탄한다.
"멀 우짜요. 그냥 이래 사는 거지.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오겄쥬, 형님."읍내에서 우체국 배달 일을 하며 농사짓는 아랫집 형님이 푸근한 얼굴로 덕담을 건넨다.
"그려, 좋은 날이 와야지. 나도 환갑이 훌쩍 넘었는데 언제까지 이장일 보겄어? 근데 한결애비, 한결이가 무슨 사물놀이공연을 했다고? 한결이네 집 앞에 현수막을 멋들어지게 걸어놓았잖여? 한결이가 재주가 좋네. 올해 멫 살이여? 잉, 벌써 열살이나 되었어?"
삼선에 성공한 이장님도 한마디 거들며 이장 권력(?)을 내려놓으실 의사를 넌지시 내비친다.
"이장님, 형님들. 제가 이 마을에 와서 한결이 낳고 농사 지은 지 십년이유. 저도 막내고 한결이도 십년 째 막내유. 한국 고용정보원이란 정부 연구기관에 따르면 단양이 30년 안에 소멸한다네유.
이게 먼 소리냐먼유. 자, 잘 들어봐유. 다들 초등학교는 나오셨쥬? 초등학교 분수 공부 다시 해 봐유. 분모가 65세 이상 노인 인구유. 분자는 애 낳을 수 있는 연령대로 보는 20세~39세 여성 인구유. 이해 되쥬? 이게 0.5 즉 2분의 1 아래면 인구소멸위험 지역이라고 해유. 30년 내에 없어진다는규. 근디, 이건 인구 많은 단양읍과 매포읍을 다 넣은규. 농촌인 면 단위로 보면 훨씬 심각하겠쥬?""그려, 읍내하고 면하고 사정이 천양지차지."읍내와 면 사정을 잘 아는 우체부 형님이 추임새를 넣는다.
"그츄? 자 그럼 인자 산수 시간이유. 우리 마을 40여 분 중 분모가 얼마유?""어디 보자, 새원이부터 점반이까정 하나, 둘, 서이, 너이. 에잇, 시 봤자지. 거의 다여."마을 주민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이장님이 답을 한다.
"그류, 그럼 분자. 20세~39세 여성이 우리 마을에 있나유?""야, 하나도 없잖어. 그걸 멀 따져바야 알어? 열 살 한결이 아래로 없잖어. 한결애비 잘못이 커. 진즉 셋은 낳았어야지, 하나가 머여. 니 잘못이여."
해병대 정신으로 한평생을 살아온 형님이 버럭 성질을 낸다.
"맞아유, 죄송해유. 일단 산수 정답부터 맞혀봐유. 분자는 0, 분모는 33이면 정답이 뭐유?""야, 0이잖아. 그럼 뭐여? 우리 동네가 머란 말이여?"아들을 수도권 대학에 보내고는 학비와 생활비 대느라 허리가 휘는 우체부 형님이 한숨을 푹 내시며 정답을 맞췄다. 이장님과 해병대 형님은 아직 답을 생각하느라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체국 형님이 소시적에 공부 좀 했구먼유. 0이에유. 우리 마을은 소멸위험지역인 단양에서도 완벽한 소멸지역이란 뜻이유. 30년 뒤에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5년 앞, 10년 앞을 못내다본다는 뜻이쥬. 마을 사람이 도시로 떠나고 학교도, 파출소도, 소방서도 없어졌쥬? 농협도 없애자 그러쥬? 우리 마을이 조만간 다 없어질 판이유. 형님들과 자식들, 우리 한결이 고향이 없어지는 거유. 좋은 날 오겠지 하며 이대로 가만 보고만 있을거유?"일장연설을 쏟아내니 다들 침통해 하며 다들 쓴 소주를 삼킨다.
"그렇다고 우리가 멀 할 수 있어? 아는 것도 없이 나이만 이렇게 먹고 있잖여?"괄괄한 해병대 형님이 기운이 푹 죽어 말을 꺼낸다.
"해병대 형님, 요새 우리 농민들이 해병대처럼 기운차게 농민헌법운동 하고 있잖유? 지난번에 읍내에서 큰 대회도 하고 군의원들이 농민 살려내라고 결의안을 냈잖유? 가만 있으면 누가 알아서 밥상 차려줘유? 지금까지 정부가, 국회가 그런 거 봤슈? 형님도 이제는 우리 마을 지키기 위해 해병대 정신으로 나서주셔유.""농민헌법? 별 거 아니유. 농민들이 생산비 보장을 받아야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농산물 최저가격제란 걸 우선적으로 보장하라, 마을과 환경을 지키는 공익적 가치를 직불금으로 보장하라, 국민의 생명줄인 식량주권과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라, 헛농사꾼인 우리 남정네들보다 차별받는 진짜 농사꾼인 우리 어머니들과 애엄마들 권리, 즉 여성 농민의 권리를 보장하라. 이 네 가지유. 어떠유?""구구절절 옳은 말이여. 한결 아배가 앞장 서서 하는 거 우리 마을 사람들 다 알지. 우리가 다 응원하고 있어. 지난번 대회도 엄청 잘 되었다며? 앞장 서주니 고맙지."해병대 형님이 내 손을 꼭 잡는다.
"자, 그래서 말인데유. 이게 머시냐? 형님들이 제가 한결이 동생 안만들어준다고 머라 하셨쥬? 제가 지난 1월에 둘째 낳았슈. 이거 보슈. 돌잔치 초대장이유. 전농 단양군농민회 첫돌 잔치에 꼭들 오셔유. 첫애인 한결이 낳을 때보다 훨씬 힘들었슈."
전국농민회총연맹 단양군농민회는 지난 2년 동안 백남기 농민 투쟁 등을 통해 '촛불혁명'에 앞장선 열매다. 그 길고 긴 사연을 산골마을 형님들께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농사일 작폐하다시피 하고 바깥으로 돌아친 한결아배가 이제서야 농민헌법운동을 통해 이유를 최대한 쉽게 설명한다.
"그려 그려. 우리 마을에서 농민회장이 배출되었으니 꼭 가봐야지. 이장 형님, 마을에 방송 때려유, 다들 농민회 돌잔치 가자구유." 덧붙이는 글 | 유문철 시민기자는 단양군 적성면 하리에서 십년째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현재 전농 단양군농민회장과, 대가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 충북 학부모기자단으로 활동하며 농민운동, 마을과 시골학교 살리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