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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17년 한해도 끝자락에 와 닿았습니다. 광화문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은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까지 이뤄냈습니다. 주변에서는 많은 것이 변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 또한 많습니다. 사측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들, 열심히 살지만 이달의 생계를 고민하는 자영업자들, 몸은 바쁘고 마음은 힘들지만 설 자리를 잃어가는 워킹맘 등 여전히 팍팍한 어제를, 고달픈 오늘을, 벅찬 내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1년, 안녕하셨습니까?" - 기자 말

 대리운전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 오늘도 고객의 귀갓길을 책임지고 있다.
대리운전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 오늘도 고객의 귀갓길을 책임지고 있다. ⓒ pixabay

일을 끝내고 첫 차를 타고 광화문을 지나가면서 동료 대리운전노동자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맞았던 새해가 떠올랐다.

우리 대리운전노동자들에겐 연말이 대목이라 가장 바쁘게 일해야 할 시기였는데, 일거리가 가장 많은 주말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다 보니 주머니 사정이 어려웠다. 하지만 밤새 거리를 헤매며 일을 하는 것도 다 식구들 먹여 살리자고 하는 짓인데 좀 아껴 쓰더라도 얘들의 미래를 위해서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리운전노동자들이 생계를 뒤로하고 촛불을 지켰던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도 있었지만 그만큼 절박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대리운전을 투잡 혹은 부업정도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70% 이상이 가계를 책임지는 전업기사가 하고 있다.

대리운전비는 10여 년째 제자리인 반면에 보험료 등 대리운전노동자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두 배로 늘어나 실제 손님에게 받는 대리운전비의 절반 밖에 남지 않는 실정이다. 더욱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과 폐업으로 거리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대거 대리운전에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해진 데다가 업체들의 횡포는 극에 달하고 있다. 

운행 중 사고에 대비해서 반드시 대리운전보험을 들도록 되어 있는데 과도한 보험료와 이중 보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금융감독원에 찾아 가면 사정은 이해가 되는데 업체와 보험사들이 알아서 하라며 발을 뺀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찾아 가면 대리운전업법 자체가 없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대리운전법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해도 국회는 10년 째 변죽만 울리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해결방안을 마련해보자고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노동부에서는 노동자가 아니라서 인정해 줄 수 없다고 한다.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것이다.

촛불의 염원으로 적폐정권에 대한 탄핵선고가 내려진 순간 우리의 삶도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지난 4월 13일,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대리운전노동자들의 절박한 삶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스스로 단결할 권리를 인정해 달라고 정부와 국회에 요구했다.

이 자리에는 대리운전노동자 뿐만 아니라 덤프, 레미콘, 화물운전노동자와 학습지, 보험모집인 등 소위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모였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들은 이런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앞다투어 발표했다.

그리고 그런 공약을 발표했던 후보 중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뒷걸음치기만 하던 우리 대리운전노동자의 삶에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국가인권위와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를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노조법을 개정하여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과 아울러 최소한 권리인 노조 할 권리마저도 부정해 온 잘못된 행정해석의 적폐가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기다렸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김영주 노동부 장관이 임명되자 지난 8월 28일,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은 과거 정부에서 부정된 우리의 노조 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조직변경 신고를 했다.

이미 대구지역의 대리운전노동조합이 설립필증을 교부받아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정부는 다른 지역의 노동조합 설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은 법외노조로 어렵게 활동을 하고 있었다. 대구지역의 조직을 전국으로 변경하는 신고를 한 것이다. 간절한 소망을 담아 서울노동청에서 청와대까지 3보 1배 행진을 하였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대리운전노동자들은 서울지방노동청 앞 길거리에서 밤을 새우며 신고필증이 교부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늦어도 3일이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던 예상과는 달리 노동부는 서류보완 요구를 반복하여 두 달이 다 되도록 시간을 끌었다. 급기야 양주석 위원장이 필증교부와 노조법 2조 개정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노숙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그런데 단식농성 11일째, 두 달을 넘게 끌어 온 노동부는 변경신고 사항이 아니라는 궁색한 이유를 들어 필증교부를 거부하였다. 이에 단식농성을 벌이던 양주석 위원장이 병원에 실려 가고서도 노숙농성은 계속됐다.

국회 앞 차가운 강바람이 매섭다

 11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2교 인근 광고탑에서 건설근로자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고공시위를 벌인 건설노동자들이 119구조대 등의 도움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다.
11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2교 인근 광고탑에서 건설근로자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고공시위를 벌인 건설노동자들이 119구조대 등의 도움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 앞 텅 빈 곳으로 달려드는 차가운 강바람은 촛불집회에서 맞은 겨울바람보다 더욱 매서웠다. 그리고 지난 11월 12일, 그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의장인 이영철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과 정양욱 건설노조 광주전남검설기계지부장이 노조법 2조와 건설근로자법 개정을 요구하고 국회 앞 광고탑 위에서 고공농성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국회는 노조법 개정은 고사하고 10년을 넘게 일해도 천만 원이 안 되는 퇴직금의 현실화조차 건설기계노동자는 특수고용노동자라는 것을 이유로 무산시켰다.

시민들이 모아낸 촛불의 힘은 적폐정부를 몰아내고 한국사회에 희망을 불러왔다. 그러나 그 희망은 우리 대리운전노동자들을 포함한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진다. 전국에는 15만 명이 넘는 대리운전노동자들이 야간노동을 하며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밤길을 달리고 있다. 노동기본권은 물론이고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서 생존권의 위기에 내몰려 있는 260만 특수고용노동자들은 희망에서마저 배제돼야 하는가.

대리운전노동자들이 최소한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40만 대리운전노동자 가족의 생존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하여서도 소중한 과제이다. 고객들의 안전한 귀갓길을 위해서라도 대리운전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해줘야 한다.

우리가 촛불의 힘으로 과거 적폐정부를 청산하였듯이 과거 적폐 관행을 청산하고 그 자리에 희망을 채워 나가야 한다. 시민들의 안전한 귀갓길을 책임지는 대리운전노동자들의 노동이 절망을 향한 질주가 아닌, 희망을 일구어 가는 소중한 일이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주환씨는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정책실장입니다.



#대리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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