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28일)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가 열린다. 에너지전환정책을 천명한 문재인 정부의 첫번째 법적 계획이라 주목받고 있다. 보수 언론은 탈원전, 탈석탄 정책에 맹공을 퍼붓고 있지만 실상, 에너지 전환 계획이라고 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계획이다. 심지어 신규 석탄발전소 9기 중 7기를 그대로 건설하는 계획으로 규탄받고 있다. 나아가 이 계획대로 된다면 문재인 정부가 역대 가장 많은 원전과 석탄발전설비를 가진 정부가 될 것이라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여전히 전력수요전망은 과잉이고 발전설비는 너무 많아서 재생에너지는 하나마나한 발전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비록, 박근혜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석탄 발전과 원전을 늘리는 에너지기본계획의 하위계획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에너지 전환의 길을 가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첫 법정계획이다. 탈핵, 탈석탄을 통한 안전하고 건강한 에너지 수급의 정향을 적시해야 마땅하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가?
경제 성장과 전력소비 탈동조화는 입증된 역사
우리나라는 화석연료가 거의 없어서 1차 에너지의 95퍼센트 가량을 수입한다. 100조 원이 넘는 비용이 든다. 에너지정책의 첫 번째 단추는 수요 효율을 높여 수요를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위험하고 더러운 에너지원 사용을 줄이고 깨끗한 에너지원인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려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에너지와 전력수요가 경제 성장에 비례해 증가할 거라는 시각은 과거의 것이다. 기술, 특히 에너지 효율 기술의 발달로 에너지와 전력소비는 오히려 줄어든다. 과거 우리나라 전력소비 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을 웃돌았다. 요금체계가 왜곡돼 있던 탓이 크다. 1차 에너지보다 더 싼 2차 에너지인 전기요금 체계, 즉 상대가격 문제 때문에 2차 에너지인 전기요금, 특히 산업용 전기요금이 저렴해서 불필요한 전기소비까지 급증했던 것이다. 2016년 기준, 산업부문 사용 전력량이 55퍼센트였다. 그 중 제조업이 94퍼센트이고 이 중 공정용 히터와 건조기, 오븐 등 전기의 열소비가 45퍼센트 정도다. 전체 전기소비량 중 20퍼센트 정도는 줄일 잠재력이 있는 셈이다.
현실화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빅데이터 이용 증가 등 전기소비 증가요인도 있지만 IT기술과 효율기술 발달로 필요한 때만 전기가 공급할 수 있어 전체적으로는 전기소비를 줄일 수 있다. 전기차 또한 충전 시간대를 조절하고, 운행 정지 시에는 오히려 전기를 공급하는 배터리로도 활용할 수 있어 최대전력소비가 늘어나지 않도록 전력소비를 분산시킬 수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싼 전기요금에도 원전 4개 분량에 해당하는 4.3기가와트 가량의 수요자원이 있어서 최대전력수요를 낮출 수 있다(2017년 6월 기준). 문제는 이런 수요관리자원을 2016년에는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2016년 전력사용량 증가율은 2.8퍼센트지만 평균전력 증가율은 -0.1퍼센트, 최대전력 증가율은 8.1퍼센트를 기록했다. 정부가 최대전력수요 발생 시에 관리를 하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다. 폭염은 7월 말 8월 중순까지인데 2016년 전력감축 급전지시는 이때가 지난 8월 22일에 한 번 있었을 뿐이다. 산업부가 사실상 최대전력수요관리를 하지 않아 급증하도록 방치한 셈이다.
2017년 12월 12일, 한파로 인한 전기난방소비가 급증했다. 그 때도, 산업부는 수요자원을 가동하지 않았고 결국 최대전력소비가 갱신되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여름 폭염에 냉방전력소비가 급증할 때 수요자원을 가동해서 최대전력소비를 낮춘 바 있었지만 겨울에는 수요자원을 가동하는 기준 자체를 높게 잡아 수요자원이 발동할 여지를 줄였다. 최대전력소비를 끌어올리려고 한 것이 아닌지 의심을 받는 대목이다.
* 수요자원제도전국 2000여 업체들이 연 단위로 전력감축을 계약하고 계약량 이내에서 전기 사용량을 줄이는 제도다. 정부에서 전력감축 급전지시를 내리면 계약 업체들이 전력소비를 줄이는 방식이다. 2014년 1월 1일부터 수요자원을 발전자원과 동등하게 취급해서 전력거래소는 계약을 맺은 수요관리사업자에게 의무감축용량에 대해서 기본정산금을 지급하고 있다. 발전소의 가동여부와 상관없이 발전사업자에게 용량요금을 지급하는 것과 같이 계약만 해도 기본정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2014년 11월 시장 개시 이후로 2017년 상반기까지 약 3천억 원 가량의 기본정산금을 지급했다. 그리고 급전지시에 따라 전기소비를 줄이면 킬로와트시당 전력시장 가격으로 줄인 만큼 추가로 요금을 지급한다. 이런 수요자원이 2017년 6월 기준으로 4.3기가와트가 존재한다. 우리나라 발전설비는 109.5기가와트가 아닌 114기가와트인 셈이다.최근 공개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에 전력소비전망은 경제성장률에 기반한 과거의 포캐스팅(forecasting)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준수요를 전망하는 것은 도달하지 않을 가상의 미래를 전망하는 것으로 발전소 건설을 정당화시키는 데 이용되어 왔다. 기준수요에서 수요관리를 통한 목표수요 조차도 실적치와 한참 괴리가 있었는데 그 방법을 여전히 고수한다는 것은 에너지전환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닌지 의심케하는 대목이다.
수요전망은 우리가 어떤 길을 갈 것인지 목표를 정하고 다양한 정책 수단을 통해 목표에 맞춰가는 백캐스팅(Backcasting) 방법을 써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력수요 정점, 즉 피크 시기를 정해놓고 그 이후에는 전력수요가 감소하도록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정책수단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계획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선진국들은 경제성장에도 기술발전에 따른 효율 증가로 전력소비가 줄어드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세계 선진국들은 경제성장에도 2000년대부터 전력소비가 정체되어왔고 최근에는 줄어들고 있다. 특히, 에너지를 해외에 의존해서 순수입량이 많은 일본, 독일의 수요 감소는 두드러진다. 95퍼센트의 에너지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에너지전환의 첫 번째 방향은 에너지수요 감소에 있다.
수요 정점을 제시하는 계획을 짜라
8차 계획이 에너지전환 계획이 되기 위해서는 전력수요 정점을 제시하고 감소 계획을 내야 한다. 정부가 이번에 이런 계획을 내놓지 못한 것은 기존의 틀린 수요전망 모델을 계속 사용하고 있고 복수의 전문기관의 수요전망 논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 전력수요 정점을 두고 서서히 감소하는 수요전망 시나리오를 제시해야 한다. 에너지전환의 시작은 전력수요를 줄이는 데 있다. 선진국은 이미 수요 정점을 지났는데 우리나라는 20년가량 뒤늦게 쫓아가는 셈이다.
수요조절 감안, 원전과 석탄발전 비중 50퍼센트 이하로!한편 기존 발전 설비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줄이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현재의 비정상적인 발전설비 구조는 이명박 정부 당시 9.15정전이 계기가 되었다. 녹색성장을 내 건 이명박 정부는 수요관리와 전력망 관리를 제대로 못해 발생한 915 정전사태에 대한 교훈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당장에 발전설비만 늘리는 계획을 세웠다. 더러운 에너지인 석탄발전 20기와 위험한 에너지인 원전 11기 신규 계획을 확정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전력수요가 예상대로 늘어나지 않는 가운데 발전설비는 과잉이 되었고, 석탄발전과 원전만으로도 대부분의 전기 공급이 이루어져 가스발전 가동률이 40퍼센트 가량으로 낮아지고 정부 계획대로 가스발전에 투자한 민간기업들의 가스발전사업은 적자상태가 되어 버렸다. 상황이 이렇지만, 이번 8차 계획 역시 여전히 과잉설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수요전망은 여전히 과잉이고 에너지전환 기조가 무색하게 석탄발전과 원전을 계속 늘리는 계획이다. 탈석탄과 탈원전을 내세운 정부가 임기 내 석탄발전과 원전이 더 늘어나는 모순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업무지시 3호로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응급대책으로 30년 이상 된 노후 석탄발전소에 대한 '일시 가동 중단(셧다운)'을 지시했다. 하지만 2017년 올해 신규가동에 들어간 석탄발전은 12월 예정인 태안석탄발전까지 포함해 6기(5.2기가와트)가 신규로 가동에 들어갔다. 노후석탄 10기 용량은 3.3기가와트에 불과하다. 게다가 전면재검토 공약이었던 9기 신규 석탄발전 중에 7기를 그대로 반영시켰다.
2017년 10월 현재 총 발전설비는 115.9기가와트이다. 이 중 석탄발전이 36.8기가와트, 원전이 22.5기가와트로 총 59.3기가와트이다. 그런데 이들 발전원이 전체 발전량의 70~80퍼센트를 차지한다. 원전과 석탄발전이 전기를 생산하면 경제급전 원칙에 따라 우선 구매하기 때문이다. 가스발전이 37기가와트로 용량이 더 많지만 가동률이 떨어져 발전량 비중은 17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올해 초 전기사업법이 개정되면서 전력거래 우선기준이 바뀌었다. 기존에는 '경제성'만이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안전성'과 '환경성'도 우선기준이 되었다. 원전과 석탄발전을 굳이 모두 가동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총설비량을 줄이는 것이 첫 번째 목표가 되어야 하고 과잉설비 시에는 전력거래 우선 기준을 적용해서 원전과 석탄발전량을 줄이는 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경우 자연스럽게 전력구매 비용이 증가하면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할 수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탈원전 정책에 대한 보수언론의 공격을 무마하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발표했지만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정책을 위해서는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독일처럼 전기요금에서 세금을 40퍼센트까지 차지할 정도로 에너지전환 비용이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의 추정에 따르면 13년간 20~25퍼센트 인상을 예상한다. 물가상승률만 반영해도 이 정도 수준의 인상 요인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싼 전기요금 정책이 문제가 되면서 박근혜 정부에서는 산업용 전기요금만 39퍼센트 가량 인상했다. 그렇다고 산업계가 반발한 적은 없다.
에너지전환의 모범사례를 보이고 있는 독일은 현재 발전설비 202기가와트 중에서 화석연료와 원전 설비는 91기가와트밖에 되지 않는다. 원전 발전 비중이 30퍼센트였던 2002년 독일의 화석연료와 원전설비는 96.6기가와트였고 15년 동안 이들 설비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대신에 18.9기가와트였던 독일의 재생에너지 설비는 112.25기가와트로 늘어났다.
우리나라의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는 발전설비 과잉이 더 심화될 것이다. 과잉설비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는 하면 좋은 거고 안 해도 별 문제 안 되는 과거의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화석연료와 원전설비는 지금보다 더 줄어들어야 한다. 혹여 늘어나는 전기 소비는 석탄발전과 원전이 아니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대체 발전원이 확보되는 대로 더럽고 위험한 발전원인 석탄발전과 원전을 줄여나가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현 정부가 에너지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최소한 원전과 석탄발전의 총량이 줄어드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원전과 화석연료 발전설비는 현재수준 또는 축소로 방향을 잡으면 100기가와트 정도가 될 것이고 재생에너지는 계획대로 50기가와트 가량 늘린다면 최대전력소비는 85~100기가와트로 정체될 것이므로 전력수급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에는 환경급전을 반영해서 발전량 비중이 제시되었지만 한참 부족한 수준이다. 원전과 석탄발전량 비중이 60퍼센트가 아니라 50퍼센트 이하로 낮추는 계획이 제시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함께사는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