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물었다."도대체 넌 언제 글쓰니?""둘째 잘 때 안고 써.""대단하다!""억척스럽다는걸 알면서도 이 짓이라도 안 하면 집에만 있는 내가 쭈그러드는 기분이야. 우울해져."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쓴다. 쓴다는 건 나름의 경험으로 처방한 우울의 치료제다. 왁자지껄 건강한 소란으로 가득했던 학교에서 벗어나 적막한 집에 하루종일 있으니 나도, 공간도 낯설었다.
딸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26평 작은 공간에 매일 머무르는 일은 고역이었다. 쭈그러드는 기분으로 살다가 블로그를 시작했다. 블로그를 통해 세상 공기를 마시니 살 것 같았다.
블로그에 포스팅 하는 과정은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와 닮았다.
풀꽃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서평 쓰는 재미에 책을 읽으면 자세히 보게 되었다. 책이 예뻤다. 문장의 의미에 골몰하고 필사를 했다. 글, 책 제목, 표지 디자인, 마케팅 방향 모두가 글감이었다. 삶을 풍요롭게 살아내는 지혜도 절로 굴러왔다. (실천은 늘 어렵지만)
육아 에세이를 쓰려고 아이들을 오래 보았다. 아이들이 사랑스러웠다. 말 한 마디, 작은 몸짓 하나를 놓치기 싫어 메모했다. 사람들에게 떠 먹여 줄 가치있는 영양가 있는 메세지가 있나 생각했다. 실패 투성이던 육아를 소재로 삼으니 비장하게 아이들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더 잘해줄게!
육아맘이 갑갑증을 느껴 시작한 포스팅 덕에, (지극히 주관적 기준으로) 일상의 품격을 높일 수 있었다. 사는 대로 썼던 글이었는데 쓰는 대로 살고자 몸을 움직였다. 큰 아이 잠투정에 화 냈던 밤, 미안한 마음을 글로 토해내니, 다음에는 다정해지려 애썼다.
목표가 내 삶을 압도해버려 스트레스를 받았던 날, '생활비 70만원을 내려놓겠다'며 공언하고 나서야 족쇄를 풀 수 있었다. 글로 쓰려면 더 많이 생각해야 했다. 블로그에 중독될수록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생각을 늘려나갔다. 생각을 실천하려 애쓰니 삶에 '피가 늘고 살이 붙'었다.
입맛대로 '쓰기의 말들'을 골라 먹었다.재밌다고 잘하는 건 아니었다. 뿌듯하게 써놓고 발행까지 했는데 다음 날 보면 글 주제도 흐리고 비문이 가득했다. <작가의 문장수업>의 고가 후미타케 작가는 독자의 가장 큰 무기를 '안 읽는 것'이라 했다. 재미 없고, 의미 없고, 어떤 날은 잘난 척이 도를 넘어 재수 없었다. 나 같아도 읽기 싫을 글들이 수두룩 했다.
쓸 수록 어렵다.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을 폈다. 어떤 책인지도 모르고 은유 작가에 대한 팬심으로 갖고 있던 책이다. 읽고 나니 '역시' 작가의 단어를 세련되게 엮어 핵심을 찌르는 문장에 감탄했다. 그녀처럼 쓰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꼼꼼히 책을 파먹었다.
<쓰기의 말들>은 작가의 보물 창고다. 그녀를 쓰고 싶게 만들었던 104가지의 말들을 모았다. 그 문장들로 어떤 자극을 받았는지 반쪽 정도 에세이로 풀었다.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퇴고가 중요하다, 부사나 접속사를 줄이자, 삶의 면면들에 감응하자, 좋은 일보다 힘든 일 쓰는 용기가 필요하다, 왜 쓰는지 생각해라... 104개의 문장으로 104개의 메세지를 얻는다.
은유 작가의 공든 탑을 이 책 한 권으로 날름 먹었다. 얌체처럼. 104개의 '쓰기의 말들' 원작자들도 대가들인데 그 말들을 은유 작가가 또 한 상 푸짐히 차려 떠먹여준다. 행복했다. 냠냠 열심히 먹었다.
모든 쓰기의 말들이 내게 어울리지는 않았다. 따뜻하고 행복한 일상은 글감으로 부족하다 했을 때, 난 좀 삐졌다. 고단하고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는 그녀가 좋으면서도, 향유의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을 밀어 내는 모양새다.
좋은 글을 쓰려면 슬픔을 들춰야 한다니, 없던 불행도 생길까봐 부담스러웠다. 울면서 고해성사하는 글만 좋은 건 아니라고 '흥!'하며 읽었다. 그래서 약이 올라 꾸준한 글쓰기를 격려하는 것, 간결한 문장과 정확한 단어를 강조하는 것 등등 입맛에 맞는 부분만 쏙 골라 필사했다.
"내 경험이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가. 뻔뻔한 자랑이나 지지한 험담에 머물지는 않는가. 타인의 삶으로 연결되거나 확장시키는 메세지가 있는가. 이리저리 재어 본다. 자기 만족이나 과시를 넘어 타인의 생각에 좋은 영향을 준다면 자기 노출은 더이상 사적이지 않다. 돈 내고 들으려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고만고만한 짜장면 같은 일상을 글로 썼다. 이제 더 욕심을 내 본다.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더 이상 사적이지 않은 자기 노출'을 하고 싶다. 일상에 메세지를 솔솔 뿌려 향긋한 글로 풀고 싶다. 지금은 마음을 먹은 수준이지만, '반복을 통한 느린 신체의 변화(26쪽)'로 글쓴다면 조금씩 나아지리라. 그리고 해내리라. 은유 작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