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기억하시는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 말미. 까만 양복에 기름 발라 올백으로 머리를 넘긴 분들이 새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몸을 비비 꼬며 불렀던 그 노래. 서울 올림픽 공식주제가인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다. 가사의 절반이 영어라 당시 논란이 있었으나 독일과 일본을 비롯해 무려 17개국에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동서로 갈려 두 번의 올림픽을 반쪽 짜리로 치른 세계인에게 다 함께 손을 잡고 냉전의 벽을 넘자는 메시지가 큰 위로로 다가왔으리라.
그날 잠실벌에서 울려 퍼지던 노래 때문인지 인류는 벽을 넘고 또 넘다 이듬해 마침내 벽을 무너뜨린다. 1989년 동독 시민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뜨리고 냉전 시대를 마무리했다. 손에 손을 맞잡고 벽을 허물고 다다른 곳은 과연 어디일까? 차가운 이념의 갈등과 반목이 사라진 따뜻한 봄날 같은 세상? 천만의 말씀! 냉전이 끝나고 곧바로 인류가 돌진한 시대는 자본의 욕망이 활활 불타오르는 신자유주의 시대였다. 냉전에 얼어붙었던 올림픽은 시장논리에 충실한 메가 이벤트로 본격적인 변모를 시작한다.
마침 당시 IOC 위원장이은 유명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가난한 IOC를 국제 졸부로 승격시킨 장본인이다. 프로 선수들에게 올림픽을 개방해 시청률을 확보한 후 방송 중계권료를 챙겨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올림픽이 처음 전 세계로 중계된 1960년 로마 올림픽의 중계권료는 117만8000달러였다. 2012년 런던 올림픽과 비교하면 반세기 동안 자그마치 1600배가 치솟았다. 거기에 라이센싱 사업과 스폰서십까지 더하면 IOC에 올림픽이란 4년에 한 번씩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지속가능한 올림픽 위한 고육지책 '아젠다2020'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냉전시대 긴장의 최고조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꼭 30년이 지나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은 신자유주의 시대 욕망이 올림픽에 발현되는 마지막 행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올림픽 개혁안으로 불리는 '아젠다2020' 때문이다.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드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5억600만 달러로 사상 최고액을 기록한 소치 올림픽을 선두로 올림픽을 유치하고 나서 나라 재정이 휘청거렸던 아테네 올림픽을 기억한다. 오죽하면 IOC조차 개혁안을 만들어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의 부담을 줄이려고 했을까?
2014년 12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올림픽 유치비용을 줄이고 분산 개최를 허용하는 '아젠다2020'을 발표한다. 여기서 '2020'은 2020년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혁안 전체가 총 40개의 제안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발표 당시 이 개혁안은 2020년부터 적용돼 분산 개최가 불가능하다는 루머도 돌았다. '아젠다2020'의 출현으로 평창을 포함한 미래의 올림픽 개최국들에게는 다양한 방법으로 올림픽 유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아젠다2020'은 2022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겠다고 뛰어들었던 유럽의 여러 나라가 주민들의 반대로 유치 포기를 선언하자 지속가능한 황금알을 얻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IOC가 내놓은 개혁안이다.
'아젠다2020'을 발표한 IOC의 속내를 잘 들여다보면 앞으로 올림픽 장사를 계속하고 싶다는 걸 알 수 있다. 겉으로는 올림픽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세련된 언어로 포장했지만 결국 개최를 할 때마다 생기는 이익을 오래오래 챙기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인 것이다. 이상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평창 다음 올림픽 개최도시인 도쿄와 베이징은 이 제안을 충실히 받아들여 비용을 차곡차곡 절감하고 있는데 유독 평창은 원래의 계획대로 꼭 지어야겠다는 몽니를 부렸다.
끝나지 않은 올림픽 재앙
곧 닥칠 올림픽 재앙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지난 3년 간 분산 개최를 진지하게 논의하자는 시민사회의 요구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는 시민들의 노력을 무시한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는 개최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손에 손 잡고 벽을 향해서' 돌진 중이다.
그동안 가리왕산 중봉에 스키 활강장을 짓는다고 500년 동안 보존돼온 원시림이 사라졌고 사업 타당도가 기준 미달이라 정상적으로는 인가가 나지 않을 고속철이 개통을 앞두고 있다. 경기장 건설에 투입된 노동자들의 임금을 주지 못해 국제노동기구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초 계획에 없던 개폐회식장은 사각형에서 오각형으로 설계가 변경되는 바람에 팠던 땅을 다시 메우는 해프닝도 겪었다. 사후 활용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채 경기장들이 들어서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천문학적인 비용은 대부분 국민의 혈세로 충당될 것이다.
1998년 동계 올림픽을 치룬 일본의 나가노현은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여전히 올림픽 후유증으로 허덕이고 있다. 당시 준비된 동계올림픽 개최지라고 칭송받던 나가노는 이제 퇴물이 된 시설과 함께 주저앉았고 회복의 길은 요원하다. 평창의 무분별한 경기장 건설과 자연 파괴를 경고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나가노의 한 시민단체 회원은 지금까지 겪은 그들의 경험을 "추운 겨울에 비를 맞으며 밖에 서 있는 상태"라고 표현했다. 바로 그 고통스러운 자리에 앞으로 꽤 오랫동안 우리가 서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음울하고 비극적인 미래상으로 글을 맺으려고 하니 왠지 찜찜하다. 정녕 근대 올림픽의 미래는 없단 말인가? 혹시 우리가 아직 상상해 보지 못한 대안이 있지 않을까? 확실한 건 현재와 같은 질주를 멈추지 않는 한 올림픽은 막다른 절벽을 향해가는 파국열차가 될 것이란 점이다.
이제 올림픽을 개최하느라 천문학적인 지출을 감행할 나라는 대폭 줄어들 것이다. 원래 지어놓은 경기장을 재활용하거나 아예 올림픽을 같은 곳에서 개최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시점이다. 무엇보다 국가간 유치한 경쟁보다는 인류가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 모여 어우러지는 축제의 올림픽이 되면 좋겠다. 모든 인류가 참여할 수 있는 스포츠 축제, 올인픽(All-人-pic)을 상상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용철님은 서강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1-2월 합본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