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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를 다시 한번 들썩이게 만들었던 파라다이스 페이퍼(Paradise Paper)와 베를린의 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주거난. 두 내용은 얼핏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만 같아 보인다. (파라다이스 페이퍼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버뮤다의 로펌 애플비 등에서 입수한 조세도피처 관련 파일을 분석해 2017년 11월 공개한 자료다)

하지만 이 두가지 내용의 조합은 독일의 얼론 쥬드도이체짜이퉁(Süddeutsche Zeitung)이 이번 파라다이스 페이퍼 탐사 보도의 초기 소식으로 꺼내든 내용이었다. 현재 독일과 베를린이 직면한 주된 문제 중 하나인 젠트리피케이션과 주거난의 원인 중 하나가 파라다이스 페이퍼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파나마 페이퍼 탐사보도가 당시 수많은 문제를 밝혀냈음에도 대중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끌지 못했던 것과 다르게 이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파라다이스 페이퍼 문건 유출로 알려진 사실들

파라다이스 페이퍼 문건 유출에서 밝혀진 기업 중 하나인 피닉스 스프리 독일VII 유한책임회사(Phoenix Spree Deutschland VII Limited)는 베를린에만 약 1700채의 주택을 그리고 독일 전역에 걸쳐 약 2800채의 주택과 240채의 상가를 소유한 부동산 투자 기업이다. 이 회사는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위치한 대표적인 세금 도피처 중 하나인 저지 섬(Jersey  Island)에 등록되어있다.

2006년 런던 은행가 출신의 세 사람이 피엠엠파트너(PMM Partners)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한다. 이들은 당시 안전한 투자처로 각광받기 시작한 독일의 주택을 사들이기 위해 부동산 회사인 피닉스 스프리 독일(Phoenix Spree Deutschland)과 피닉스 스프리 부동산 펀드(Phoenix Spree Property Fund)를 설립하여 전세계 투자자들의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2015년 합병을 통해 피닉스 스프리 독일VII 유한책임회사가 된 이 두 회사가 투자 사업을 위해 이용했던 유령회사들이 지난 파라다이스 페이퍼의 문건이 유출된 버뮤다의 법률회사 애플비가 담당하던 회사였다.

 공유 거래(Share Deals) 방식을 설명하는쥐드 도이체 짜이퉁(Suddeutsche Zeitung)의 동영상 스크린샷.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 지분을 모두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 95%만 매입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공유 거래(Share Deals) 방식을 설명하는쥐드 도이체 짜이퉁(Suddeutsche Zeitung)의 동영상 스크린샷.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 지분을 모두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 95%만 매입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 SZ/Laura Terberl

피닉스 스프리 독일은 공유 거래(Share Deals)라는 방식을 통해 베를린 지방정부에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은채 주택을 매입해왔다. 이는 주택을 직접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유령)회사의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편법이다.

공유 거래 방식을 통해 지분을 100% 모두 매입하면 그에 상응하는 토지취득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95%의 지분만 매입하게 되면, 그 어떤 세금도 내지 않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5%는 안전을 위해 관련인 두명이 따로 매입하고, 그 금액은 피닉스 스프리 독일에서 대출을 받도록 하여, 구조적으로 100%의 지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연금관리공단이 2010년에 매입했다 곧 매각을 앞둔 베를린의 포츠다머 플라츠의 소니센터 건물도 역시 이 공유 거래 방식을 통해 매각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 방식으로 인해 베를린에서만 매년 약 1억 유로의  토지취득세(베를린의 토지 취득세는 6%)가 걷히지 못했다고 베를린 주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피닉스 스프리 독일 부동산 회사와 다른 (유령)회사들의 관계도 중 일부
피닉스 스프리 독일 부동산 회사와 다른 (유령)회사들의 관계도 중 일부 ⓒ NDR

이 편법만이 끝이 아니다. 그렇게 매입한 주택과 상가의 임대료 수익에 대한 세금을 베를린 정부가 제대로 걷지 못하도록하는 편법이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이번 파라다이스 페이퍼에서 밝혀진 세금 속임수의 대표적인 방식이다.

독일 내에서 피닉스 스프리 독일 부동산 회사가  임대업을 하며 최종 흑자에 해당하는 금액에만 세금이 부여되는 법을 이용한 것이다. 즉, 이 부동산 회사의 각종 지출을 늘려 최종 흑자는 낮게 만드는 것이다.

주택 수리 비용을 위한 대출 그리고 관리비 등을 더 높게 청구하는 것이다.(이렇게 세금을 덜 내는 방식에 관해서는 뉴스타파의 동영상 자료 <성공을 위한 레시피 – 비밀 소스를 숨겨 거액을 챙기는 법>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비밀 소스를 숨기는 방식을 통해 1600만 유로의 임대수익에서 1200만 유로 가량이 관리비용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었고, 피닉스 스프리 독일 부동산 회사는 수익이 거의 없는 기업이 된다. 하지만 관리비용 등으로 청구된 내용은 대부분 실질적인 사업 주체인 피엠엠파트너(PMM Partners)의 손에 고스란히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공유 거래의 허점들

공교롭게도 공유 거래라는 이름이 붙은 이 거래 방식은 최근의 공유 경제 플랫폼이 작동하는 원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기존에 이미 존재하던 거래 혹은 교환 방식을 효율적으로 이용한다는 목적하에, 기존의 법이나 의무사항만을 교묘히 피하는 것이다.

이러한 회사들의 문제점은 자명하다. 이들은 부동산 거래의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인 세금조차 대부분 내지 않는다. 더불어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신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저렴한 주택을 사들여 고급주택으로 전환시켜 시장에 다시 내놓는다. 부동산 투자가 늘어날 수록 점점 더 지불가능한 수준의 주택(Bezahlbare Wohnung)이 줄어들어 주거난은 가속화되는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베를린에서 끊임없이 임대료 상승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과 주거난이 발생했음에도 주정부는 그 원인이 되는 곳에서 세금조차 제대로 걷지 못한 채 방관해왔다는 사실이 이번 파라다이스 페이퍼 보도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베를린 주정부는 파라다이스 페이퍼 보도 이후 뒤늦게나마 이 문제를 주요 과제로 놓고 해결하기 위해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독일#베를린#파라다이스 페이퍼#주거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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