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이후 해당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던졌던 몇몇 국내 기자들의 태도와 질문 내용을 둘러싼 누리꾼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훈민적(訓民的), 계몽적 위상을 누려온 한국 언론의 위상이 '촛불시대'를 맞이해 그 대중적 기반이 붕괴되고 있는 징후로 해석된다.
이번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은 그 내용과 형식의 측면에서 혁신적이었다. 우리 모두 촛불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케 할 정도로, 전임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달리 기자회견장은 웃음과 활기가 넘쳤다. 대통령이 한 시간 동안 직접 손을 든 기자들을 지명하고, 질문을 주고받는 모습은 외신 기자들의 놀라움을 자아낼 정도였다. 한마디로 촛불시대의 대통령 기자회견이란,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점을 과시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기자회견의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바로 해당 기자회견의 또 다른 주체로 참여한 청와대 기자단 때문이었다. 이날 청와대 기자단은 변화된 기자회견 형식 속에서 전임 정부시기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질문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있었음에도, 정작 시청자들을 만족시켜 줄 만한 질문 내용이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식견·통찰력 돋보이는 질문 찾기 어려워
우선 시청자로서 보기에, 청와대 기자단의 질문 중 예리함이나 식견, 통찰력이 돋보이는 질문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질문 소재의 측면에서 그러했다. 상대적으로 많은 질문 기회가 부여됐고, 국내외적으로 산적한 현안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의 질문 소재는 대체로 '남북관계'와 '개헌', '위안부 합의'에 대한 것이 반복됐다.
물론 이는 기자회견 전날, 대략 2년 만에 남북회담이 이루어지고 이른바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파기된 것과 관련이 깊겠지만, 해당 소재에 대한 유사한 내용의 질문이 반복된 것은 기자들이 평소 현안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남북관계나 북핵문제는 동북아 각국의 국내 사정과 대외정책이 상호 길항하는 복합적 사안인 만큼, 기자들의 식견이 빛날 소재일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한반도 정세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사드 문제로 인해 악화일로로 치닫다 이제 막 관계 회복의 물꼬가 트인 중국에 대한 질문이 전혀 없는 것은 무척 기이한 현상이었다. 이는 한국 기자, 특히 청와대 기자단의 시야 속엔 오로지 미국만 있을 뿐, 중국은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기실 정곡을 찌르는 예리한 질문일수록, 사족 없이 간명한 법이다. 다수의 누리꾼들이 외신기자들의 질문 내용은 예리했던 반면, 국내 기자들의 질문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예컨대 "북핵, 북한에 관련해서 한국은 대북 관여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미국은 최대 압박 제재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어느 단계에서는 이 두 정책이 부딪치는 때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시기가 오면 어떻게 이것을 다루실 겁니까?"라는 영국 BBC 기자의 명료하면서도 간명한 질문내용은, 국내 기자들의 관련 질문과 대비되기에 충분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속칭 '문빠') 때문에 기사쓰기가 두렵다는 <조선비즈> 박정엽 기자의 질문은, 그야말로 기자로서의 기본적 자질을 의심케 하는 질문이었다. 물론 대통령을 향한 기자의 질문 내용은 경계를 넘어 다양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 해당 질문은, 해당 기자가 기자로서의 기본적 직업윤리를 인식조차 하고 있는 것인지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었다. 해당 기자의 이름을 검색해보니 그는 문재인 대통령 방중 당시 이른바 '혼밥 프레임'을 퍼뜨리고, 문 대통령의 영화 1987 관람을 두고 "대통령이 정치색 짙은 영화를 관람했다며" 비난한 당사자였다.
이후 예상대로 해당 기자에 대한 누리꾼들의 성토가 인터넷과 SNS상에서 이어졌다. 아마 이는 말과 글을 '권력'의 수단으로 유지하려는 세력(=언론권력)과 소통의 도구로만 그 역할을 한정하려는 세력(=촛불시민들)의 충돌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해당 장면은 촛불시대의 상징적 장면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민생·복지·빈곤층·노동문제에 대한 질문 거의 없어한편, 그 많은 기자들의 질문 중 민생이나 복지, 빈곤층·노동문제에 대한 질문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거의 대부분의 질문이 정치·안보 분야에 집중되었을 뿐이다. 이 역시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었다.
이번 대통령 기자회견문에 민생 관련 내용이 압도적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상기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이는 사회적 약자나 소외 계층의 경우, 제도 언론 기자들의 평소 관심사에서 제외되어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 세계에서 기자 출신 정치인이 가장 많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 과연 이와 무관한 것일까. 또 현재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적폐청산 현안에 대한 질문 역시 전무했다. 시청자들로선 현재 한국의 제도 언론 기자들이 과연 자신들을 대변하고 있는지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종전과 달리 혁신적인 형식을 보여준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장은, 도리어 국내 주류언론 기자들의 직업 윤리 인식과 학습 수준, 세계관, 현실 인식을 스스로 폭로(?)하는 장이 되었다. 해당 기자회견장의 국내 기자들의 모습에선, 진실을 향한 집요한 의문도, 현안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한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게다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나 감각 역시 전혀 없었다. 고 리영희 선생이 자서전 <대화>에서 1960년대 <조선일보>기자 시절, 도서관을 다니며 공부한 바탕 위에서 정부기관을 취재해 공무원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고 고백한 사실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이명박, 박근혜의 역사상 유례없는 국정농단은 이런 청와대 기자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이런 상태라면 조만간 한국 주류 언론 기자들은 촛불시대에 가장 낙후된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치열한 언론고시 경쟁을 뚫고 합격한 국내 주류언론의 기자들은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강명구 서울대 교수는 2006년에 발표한 한 논문(「언론권력과 훈민적 공론장」,『역사비평』통권 77호, 2006)에서 한국 언론의 뿌리 깊은 훈민적·권위적 태도, 기자 집단의 권력집단화, 언론 스스로의 정치화가 '언론권력'의 출현 배경이라 지적하고,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언론의 권력화 양상을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우선 기자 스스로 정치권력에 진출한 경우가 있었다. 강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1965년부터 1993년까지 171명의 기자가 정치권력으로 진출했던바, 그중 주요 일간지 출신이 77.2%였다고 한다.
이와 함께 집단적 수준에서 기자사회가 기존의 권력 네트워크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흐름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선 지난해 폭로된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내용을 단적인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장충기 차장의 문자메시지 속에는 언론인들과 삼성이 서로 취업청탁을 비롯한 각종 청탁을 지속해온 정황과, 언론이 삼성과 공모해 삼성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사를 써온 '흑역사'가 날 것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해당 사실이 한 매체에 의해 폭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이에 연루된 언론(인)들의 반성과 처벌은커녕, 주류언론들은 아예 해당 사실을 보도조차 하지 않는 식으로 대응한 점이다. 국내 주류언론에 대한 대중적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고, 기자 사회가 집단적 퇴행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강명구 교수는 2006년의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비유를 들어 말하면, 중계석에서 축구 경기를 중계해야 할 기자들이, 선수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경기장 안에 들어가 스스로 경기를 하는 양상이다. 축구선수로 직업을 바꿨다면 문제가 덜할 텐데, 선수로 뛰면서 중계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졌던 것이다. 이것은 보수언론이든 진보언론이든 모두 같은 양상이었다."(위의 글, 77쪽)여기서 강 교수는 기자들이 '선수'로 뛰면서 '중계'도 하는 양상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선수'로 뛰고 있는 기자들이 대중 앞에선 '중계자'로 자처하며 대중을 기만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문제는 언론의 '정치적 속성'이 아니라, 대중을 기만하려 드는 주류 언론인들의 태도와 실체에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주류 언론(인)이 이런 자기 기만에 너무 익숙해져 새 시대에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의 '문화 지체'에 빠져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촛불시대의 대중은, 그동안의 '학습 효과'로 인해 그러한 '기만'을 이제 쉽게 간파해낼 수 있다. <조선비즈> 박정엽 기자의 질문이 '우문(愚問)'으로 조롱받고 있는 현상이 이를 상징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 '다르게 생각하는 글방('http://anarchism-historian.tistory.com/)에 올린 글(<부끄러운 한국 기자들의 수준> )의 내용을 보완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