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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을 두 번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쉰이 넘도록 두 번 이상 읽은 책은 5권을 넘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내 인생의 책이라고 할 수 있는 <숨어 사는 외톨박이>와 소설 <나스타샤>도 한 번만 읽었을까. 그 내용을 머릿속으로만 음미하고 기억할 뿐, 가끔 책장에서 꺼내어 먼지를 닦아주고 어루만져줄 뿐 다시 읽지는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집> 겉표지
<세상에서 가장 큰 집> 겉표지 ⓒ 한겨레출판

건축 전문기자였던 고(故) 구본준 선생의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은 내게 각별한 책이 되었다. 이역만리에서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헤어지기 싫어서 다 읽고도 책장에 꽂지 않았고 심지어 마지막 쪽을 넘기자마자 첫 쪽을 다시 펴게 된 책이다. 한 권의 책을 완독했다는 정복심을 만끽하고자 읽은 책을 흐뭇하게 책꽂이에 꼽는 개선식을 하지 않았고, 책상에 앉으면 편안하게 닿을 수 있는 곁에 모셨다.

'뉘 집에 가든지 좋은 벽면을 가진 방처럼 탐나는 것은 없다. 넓고 멀찍하고 광선이 간접으로 어리는, 물속처럼 고요한 벽면, 그런 벽면에 낡은 그림 한 폭 걸어놓고 혼자 바라보고 앉아 있는 맛, 더러는 좋은 친구와 함께 바라보며 화제 없는 이야기로 날 어두운 줄 모르는 맛, 그리고 가끔 다른 그림으로 갈아 걸어보는 맛, 좋은 벽은 얼마나 생활이, 인생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일까!' -이태준의 무서록 중에서
탐나는 벽을 보게 되면 이태준을 떠올리게 되듯이 앞으로는 장중함과 숭고함이 드러나는 기둥을 보게 되면 구본준 기자를 생각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건축 전문기자의 길을 걸으면서 경험하고 습득하고 느끼고 공부한 동서고금의 건축물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묶은 책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은 그저 건축이라는 종합예술의 엑스트라라고 여겨왔던 '기둥'으로 시작한다.

기둥이란 그저 주연배우인 상층부가 무너지지 않게 받쳐주는 부속물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기둥이야말로 건축물의 주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집트에 있는 하트셉수트의 장제전,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산 피에트로 광장, 로열 크레센트 등이 기둥으로 멋을 낸 우아한 건축물로 소개되고 있다. 그 가운데 정작 내가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우리나라 국회의사당 건물에 관한 비화였다.

공모를 통해 당선된 설계는 원래 수평성을 강조하는 디자인이었다고 한다. 건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국회의원들이 이 디자인은 '폼이 나지 않는다'며 '돔'을 올려달라고 요구했단다.

원래는 수평성을 강조하여 민주주의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뽑아낸 디자인은 권위의식이 반영된 기둥이 줄지어 선 모양으로 바뀌고 만다. 기둥은 최고의 디자인이기도 하지만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설계가 엉망으로 바뀌게 된 것에 대해서 분노한 건축가들은 자신들의 작품 목록에서 국회의사당을 제외했다는 씁쓸한 뒷이야기다.

건축 전문기자로서 세계 각국의 유명한 건축물을 많이 답사했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은 우리나라 건축물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구본준 선생의 종묘와 궁궐을 비롯한 한국의 건축물에 대한 애정은 깊다. 그렇다고 해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중국의 자금성에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그것은 초라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왜 하필이면 그렇게 대단한 건축물에 비교하느냐?'는 식의 억지 설명도 하지 않는다.

백성을 그저 일하는 노예로 취급한 중국과 달리 우리의 왕조는 백성을 귀하게 여겨서 만리장성과 같은 백성들의 피해가 엄청날 것이 분명한 대규모 공사를 시도하지도 않았다고 차분히 사실을 기초로 설명한다. 또 경복궁이 원래는 현재보다 훨씬 더 큰 규모였는데 일제에 의해서 상당 부분 훼손되어 오늘에 이른 것 뿐이라고 말한다. 건물들만 오밀조밀 모여 있는 자금성과는 달리 우리의 궁전은 숲과 연못 나무와 함께 어우러지는 자랑스러운 건축양식이라는 사실도 알려준다.

1930년대 말 세계정복을 꿈꾸던 히틀러가 위압적인 건축물 하나로 한 나라를 집어삼킨 이야기도 흥미롭다. 히틀러가 미친 짓 즉 전쟁을 일으킬 것이 거의 확실해지면서 독일의 이웃 나라인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 에밀 하샤는 최후의 수단으로 히틀러와 담판을 짓기로 한다. 에밀 하샤 대통령은 히틀러의 관저를 찾았는데 그 규모가 하도 압도적이고 권위적이어서 실제로 기절하고 말았단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히틀러의 집무실에 발을 디디기 위해서는 길이 137m 천장 높이만 9m인 대리석 홀을 지나서 높이 5m인 문 5개를 통과해야 했다. 뿐인가. 집무실은 넓이가 무려 100평이 넘고 방문자가 문을 열고 히틀러의 책상까지 가는 데에만 거의 1분 가까이 걸리는 규모였다고 한다.

압도적인 분위기에 기가 완전히 죽은 에밀 하샤 대통령은 히틀러의 협박 몇 마디에 나라를 넘겨주겠다는 조약에 서명한 다음 다시 한번 기절했다. 에밀 하샤가 느꼈던 공포는 우리나라의 군사 정권 시절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온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며 실제로 히틀러의 집무실과 남영동 대공분실은 방문자와 수인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었다.

어쨌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내가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을 늘 곁에 두고 싶은 이유는 단 한 줄이라도 그냥 지나치거나 대충 읽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구본준 선생의 글은 따뜻하고, 자상하며, 사실에 기초한다. 그 어떤 건축 관련 책보다 쉽게 읽힌다. 메시지는 명확하며 문체는 간결하다. 문제는 진중하지만 유쾌하다. 새삼 그의 묘비명을 허투루 짓지 않았다는 것을 알겠다.

 '세상이 궁금했던 유쾌한 글쟁이, 여기에 집 짓다' 


나는 1968년생 그는 1969년생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나는 그가 지은 따뜻하고 유쾌한 글 집에 놀러 가 그의 글을 맛보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유달리 그의 이른 소천이 아쉽고 또 아쉽다.


세상에서 가장 큰 집 - 종묘, 경복궁, 자금성, 파르테논 신전 새롭게 보기

구본준 지음, 한겨레출판(2016)


#궁궐#구본준#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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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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