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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학부생의 신분으로 학술지에 자신의 논문을 투고할 정도의 지성인이다. 하지만 집을 떠나 수도(상트 페트르부르크)에서 생활하는 데에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청년의 이름은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리니코프, 줄여서 '로쟈'라 불리는 인물이다(아래 라스콜리니코프).

<죄와 벌>은 이 청년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작품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4대 장편들 중 가장 먼저 쓰인 작품이자 세계인들에게 제일 널리 읽히고 있는 책이다.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지은 '죄', 그리고 그로 인해 받게 되는 '벌'에 대한 이야기를 기술해 놓았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주변에서 쉽게 보이는 범죄인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빌려,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가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과 사회를 둘러싼 '본질적인 물음'이다. 그가 살아가던 19세기 유럽은 영웅주의와 공리주의가 득세하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선전이 휘몰아치던 시대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흐름에 강한 위기감을 느꼈고, 이를 <죄와 벌>이라는 작품을 통해 그려내어 당대의 러시아 청년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남기고자 했던 것이다. 

'두 개의 살인'과 '두 가지 이유'의 이야기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 문예출판사
라스콜리니코프는 작품의 초입부에서 바로 도끼를 휘두르는 살인을 저지른다. 살인의 대상이 된 인물은 평소 그가 고물을 맡기고 돈을 꾸어가던 전당포 노파 알료냐 이바노브나이다. 그리고 우연찮게 사건을 목격하게 된 그녀의 동생 리자베타 역시 희생양이 된다. 이렇게 라스콜리니코프는 두 노파를 찰나의 순간에 죽이며 '이중살인'의 죄를 저지르게 된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그는 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을까. 처음 독자에게 제시되는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시골에서 상경한 가난한 대학생으로, 당장 하숙비를 낼 돈도 생활에 사용할 돈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그렇기에 부유한 수전노인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여 그녀의 재산을 갈취하려 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며 등장하는 창녀 '소냐'와의 대화 속에서, 경제적 사유 이면의 보다 철학적인 범행 동기가 드러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에게 고백한다. 전당포 노파는 자신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 줄 모르는, 사회에 해만 되는 존재였다고. 그렇기에 그런 '벌레'라면 자신이 죽여도 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아니, 오히려 그런 '이'와 같은 존재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법학부에 재학 중 한 잡지에 투고한 논문의 제목은 <범죄에 관하여>였다. 그는 여기서 영웅에 대한 담론을 펼친다. 나폴레옹과 무함마드는 수 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이고도 처벌받거나 괴로워하기는커녕 역사적 위인으로 추앙받는다.

그것은 그들이 사회에 '필요없는' 존재를 죽이고도 당당할 수 있는 선택받은 인간, 즉 비(非)범인이었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르고 괴로워 한다면 그는 한낱 평범한 인간이지만, 범죄를 자신의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여길 줄 안다면 그는 영웅이라는 것이 라스콜리니코프가 마음 속 깊게 품고 있던 사상이었다.

결국 그가 두 여인을 도끼로 살해한 것은, 겉으로는 돈을 훔치기 위해서 였으나 보다 실질적으로는 과연 자신은 그러한 특별한 존재가 맞는지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범행동기는 마을 사람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다. 오로지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 검사 포르피리만이 우연찮게 라스콜리니코프의 <범죄에 관하여>를 구해 읽은 것을 계기로 그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눈여겨 보기 시작한다.

신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인간에서 신으로

그런데 라스콜리니코프는 범행 이전의 마음가짐과 달리 살인 이후부터 스스로를 압박해오는 심리 상태를 견뎌내지 못한다. 죄책감과 심적 혼란이 뒤섞여 그를 압박해오자 그는 수차례 정신적 착란과 더불어 육체적 무기력증과 현기증까지 경험한다.

이는 라스콜리니코프를 점차 궁지로 몰고가는 원인이 된다. 자신이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임을 인정받고자 범행을 저질렀으나, 비웃던 일반 사람들처럼 그 자신도 살인에서 공포와 혼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는 처음에는 그를 혼란스럽게 하지만, 이후 점차 자신이 선택받은 존재가 아니었음에 대한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죄를 제대로 인식하게 되고, 땅에 키스하며 그 죄를 대로에서 크게 소리친다. 그리고 직접 포르피리에게 모든 것을 자백하고 시베리아에 유형을 떠나는 형벌을 받아들인다.

<죄와 벌>은 이처럼 소수의 선택된 자의 역사적 특권과 의무를 강조하는 헤겔식 '영웅주의'와 이들이 주축이 되어 더 나은 미래사회,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성이 떨어지는 일부 사람들의 희생(죽음)은 당연하다고 믿는 사회주의적 '공리주의'라는 두 사상이 가지고 있는 피폐함을 확연히 드러낸 작품이었다.

19세기는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해 위와 같은 사상이 널리 퍼지던 시대였고, 특히 젊은 러시아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급진주의와 서구주의가 유행하고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런 흐름이 겉으로는 멋지고 올바른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 삶에 적용될 경우 큰 도덕적 붕괴와 사회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혹자는 라스콜리니코프를 '인신(人神)' 사상을 가진 이라고 규정한다. 신을 거부하고 인간을 신의 자리에 두고자 하는 사상을 의미한다. 당시 싹을 틔우고 있던 공산주의와 궤를 같이한다. 인간이 신처럼 공동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개조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보수주의자이자 러시아 정교의 독실한 신자였다. 그렇기에 그는 당대 러시아를 다시 신의 품으로 이끌고 싶었다. 과도하게 인간 중심 사상을 주장하는 것은,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결국 시간이 흘러 오늘날 우리는 그의 우려가 적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간을 신의 영역에 올리려는 시도가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되고 있는 현실 또한 목격할 수 있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 아직까지는 알 수 없겠지만, 그러한 시도와 실패, 그리고 재도전의 역사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한 <죄와 벌>은 러시아를 넘어 전 인류의 영원한 고전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죄와 벌 2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학수 옮김, 문예출판사(2013)


죄와 벌 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학수 옮김, 문예출판사(2013)


#서평#문학#소설#도스토예프스키#죄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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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시민기자. 서울대 로스쿨 졸업. 다양한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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