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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냄새는 위, 나무 냄새는 간, 지푸라기 냄새는 기와 혈, 나무 타는 냄새는 뇌파를 안정적으로 순환시켜 준다는 게 주인의 설명이다. 편안함의 비결은 자연 재료의 물리적 특성만이 아니다. 토담집에는 직선과 직각이 없다. 나무 기둥도 흙벽도 자연의 선이다. 이 집 부엌 칸에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찜질방이 있다."(26쪽)


한윤정 글·박기호 사진의 <집이 사람이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북한산 털보'로 널리 알려진 환경운동가 차준엽이 지리산 방면을 여행하다 둥지를 튼 충남 논산 대둔산 기슭의 작은 '토담집'에 관한 설명이죠. 100년 전에 지어진 그 한옥에 불 난 흔적이 있지만, 그 뼈대를 살려 직접 흙을 바르고 한지로 도배를 해서 만든 황토집이라고 합니다.

책겉표지 한윤정 글·박기호 사진의 〈집이 사람이다〉
책겉표지한윤정 글·박기호 사진의 〈집이 사람이다〉 ⓒ 인물과사상사

그 황토집에 들어가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입니다. 있을 것은 다 있고 없을 것은 없앤 그 집을 만들기 위해 그는 2년 반 동안이나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하죠. 낯선 동네에 들어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동네 사람들 밭일을 돕거나 배추 절이는 일을 해야 했고, 그 나머지 시간에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그 집을 고쳐나갔다고 하죠.

"이 집의 외관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너와처럼 얇은 나무판으로 집의 전면에 덧대어 만든 테라스다. 널찍한 공간에다 지붕과 창틀, 벽과 문까지 갖추었다. 손으로 켠 나무의 자연스러운 결이 아무렇게나 자란 듯한 마당의 나무, 식물들과 멋지게 어울린다. 제주도에 살려고 집을 보러 다니다가 이 집을 선택한 것은 넓은 마당 때문이었다."(196쪽)


여성 싱어송라이터 장필순의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 집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수 이효리와 뮤지션 이상순 커플이 살면서 유명하진 동네인데, 장필순은 제주도 열풍이 불기 전부터 일찌감치 그 윗동네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죠. 그것도 그의 음악과 인생의 동반자인 뮤지션 조동익과 함께 말이죠.

그런데 그곳으로 이사한 초기에는 집을 손보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하죠. 그럴 때면 가끔씩 술을 마시고 마당에 나가 기타 치고 노래도 불렀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었고, 그때부터 자기 자신이 고집한 음악이 꺾이고 보다 자연스런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고 하죠. 어쩌면 그것이 "바람 그치면 나가라. 그러다가 사람까지 다친다"고 말씀하시는 그 동네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부터 그랬지 않았나 싶죠.

"사재를 털고 조금씩 후원을 받지만 오래가려면 운영비를 아껴야 한다. 가장 비중이 큰 난방비를 줄이기 위해 황토벽돌 두 겹 사이에 숯가루와 보온재를 넣어 벽을 짓고 지열을 끌어올려 사용한다. '나만 위해서는 이렇게 못하지요. 아끼는 이들을 위한 일이니까 뭐든 했습니다.' 그는 서원지기로 여생을 보낼 참이다."(291쪽)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걸은리에 지은 독문학자 전영애의 '여백서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본래부터 서원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게 아니라, 개 집만한 정자에서 출발해 오늘날의 그 멋진 여백서원에 이르렀다고 하죠. 그야말로 뜻하지 않는 길 위의 만남들을 통해 그토록 멋지고 아늑한 여백서원이 탄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서원의 탄생이 그녀의 인생과 닮지 않았나 싶습니다. 화려해 보이는 그녀의 이력과는 달리, 독일 유학과 박사과정도 남자 선배들에게 밀렸고,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과정 중에 유학을 갔지만 그 또한 순탄치 않았죠. 그렇게 10년 세월 동안 홀로 원서에 매달려 번역해 냈을 때 괴테에 관한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큰 상급을 거둔, 입지전적인 교수로 서게 된 것이었죠.

그곳 여백서원은 함께 모여 공부할 큰 방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서재, 왼쪽에는 휴식공간, 그리고 뒤편으로는 작은 데크 무대와 족욕탕도 설치돼 있다고 합니다. 더욱이 다락방에는 20인 분 침구를 준비해 놓고 있다고 하죠. 그래서 그랬을까요? 그만한 서원을 관리하려면 온 힘을 쏟아 부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만큼의 난방비라도 줄여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듯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집들은 그 주인장들과 관련하여 개성 넘치는 집들입니다. 물론 저마다 다 좋은 집들이고요. 좋은 집이란, 이 책을 읽어본 결과, 무엇보다도 사람이 살기에 소박해야 할 것 같고, 그 집에 사람이 살았던 시간도 쌓여 있어야 할 것 같고, 그리고 예술이 태어나는 집이라면 더더욱 좋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집들은 저마다 작업실인 동시에 아름다운 예술이 솟아나고 있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집이 사람이다 - 그 집이 품고 있는 소박하고 아담한 삶

한윤정 지음, 박기호 사진, 인물과사상사(2017)


#편안한 집#한윤정의 집이 사람이다#예술가들의 집#여성 싱어송라이터 장필순#여백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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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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